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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⑦ 리더가 23명? 진정 대표팀엔 리더가 있는가

입력 2014-06-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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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⑦ 리더가 23명? 진정 대표팀엔 리더가 있는가


리더 부재의 시대입니다. 맞습니까.

한가할 땐 리더라고 하더니 필요할 땐 리더 구실을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이 말에 수긍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 질문을 우리 축구대표팀을 향해 던져봅니다. 그런데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축구대표팀에 진정 리더는 있는 걸까요.

누군가는 리더의 존재 여부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박주영도 말했습니다.

"23명 모두가 리더가 돼야 한다."

이 말을 들으면서 이번 브라질 월드컵 축구대표팀이 지닌 특별함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브라질 이과수까지, 대표팀의 전지훈련을 내내 지켜보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상대는 오랜 기간, 여러 대표팀과 동고동락했던 대한축구협회 직원입니다. 그에게 이번 대표팀을 규정하는 키워드를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나 절묘했습니다.

"역대 축구대표팀 중에서 이번 대표팀은 뭔가 다르다. 그동안의 월드컵이 위에서 아래로, 즉 감독이 선수들에게 '시키는 월드컵'이었다면, 이번 월드컵은 비슷한 또래들이 홍명보 감독과 함께 어우러지며 '즐기는 월드컵'이 됐다."

대표팀이 타고 다니는 버스에 새겨진 슬로건이 '인조이 잇, 레즈'(Enjoy it, Reds)란 걸 떠올리니, 축구협회 관계자 설명이 더 선명하게 머릿 속에 들어옵니다.

수평적인 구조, 다원적인 구성. 이번 대표팀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보니, 23명이 모두 리더라는 박주영 말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말은 그럴싸 하지만, 수평적이고 다원적인 조직으로 맞이하는 월드컵은 혼란과 불안이 공존합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대표팀 조직이기에 그렇습니다.

실제로 '23명이 모두 리더'라는 이론은 얼마나 어려운가요. 다들 리더처럼 생각하며 팀을 위해 앞장서고, 궂은 일을 한다는 의미겠죠. 하지만 돌려보면 리더가 없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리더가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수평적 관계속에서 서로를 보듬는 이상적인 조직,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는 구조가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조직이 흔들리면 '다원적 리더론'이란 건 모래성처럼 무너집니다. 실제로 대표팀은 튀니지전과 가나전에서 실점 이후 경기 내용이 더 좋지 않았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실점 후 따라붙지 못하는 대표팀에 대해 "정신력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자 "그것과 정신력은 무관"하다고 일갈했습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경기 당시엔 정말 정신력이라도 발휘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대표팀이 무기력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가 만나는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는 분명히 강팀입니다. 훈련 때마다 우리 스스로는 수비를 강조하며 먼저 실점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경기에서 막상 선취점을 내준다면 그 이후 어떻게 경기를 풀어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럴 때, 바로 팀이 어렵고 힘들 때 진정한 리더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월드컵 도전사를 보면, 언제나 23명 중에 리더가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기억 속에 자리잡은 2010 남아공월드컵에선 '영원한 캡틴' 박지성이 그 몫을 했습니다. 박지성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리더가 지녔던 전형적인 이미지를 깨뜨렸습니다. 대신 솔선수범으로 동료들의 존경을 받는 '권위를 기반한 리더십'을 보여줬고, 덕분에 대표팀은 상승작용을 일으켰습니다.

감독은 선수단을 챙기는 리더이고, 이와 별도로 선수단 내에도 리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대표팀에선 선수단 내 리더가 누군지 못박아 얘기하기 힘듭니다. 주장 구자철도, 부주장 이청용도, 선참자인 박주영도, 최연장자 곽태휘도. 누구하나 똑부러지게 리더라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23명 모두가 리더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실험적인 대표팀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이번 월드컵에서 흥미로운 작업을 하나 진행 중입니다. 지난 8차례의 월드컵 도전과정에선 체계적으로 정리된 기록이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월드컵 백서를 제작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예선 탈락이냐''4강 신화냐'처럼 성적으로만 남아있던 우리의 월드컵이, 준비부터 결과까지 번듯한 기록물로 남게 됩니다.

그 기록 속에 리더가 없는 이번 대표팀은 어떻게 기록될까요.

- 브라질 이구아수에서
JTBC 스포츠문화부 오광춘 기자
사진=중앙일보 포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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