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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④ 스털링과 발렌시아 그리고 제라드

입력 2014-06-0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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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④ 스털링과 발렌시아 그리고 제라드


한국시간으로 5일, 홍명보팀은 미국 마이애미 전지훈련 중 처음으로 훈련없이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간 쉼 없이 달려왔던 태극전사들, 꿀맛 같은 망중한을 보냈겠죠.

대표팀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웠던 기자들도 그 덕분에 휴가를 얻었습니다. 물론 대표팀이 휴식을 취한다고 기사를 안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훈련 현장에서는 잠시 거리를 둘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때마침 마이애미에서는 잉글랜드와 에콰도르의 친선 평가전이 열렸고, 대표팀을 취재 중인 한국 기자 대부분이 그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

경기는 2대2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굳이 이 결과를 두고 상대적인 평가를 해보자면, 잉글랜드가 좀 씁쓸하겠죠. 명색이 '축구 종가'인데, 번번이 성적도 못내면서 월드컵만 되면 한껏 자부심을 드러내는 잉글랜드인지라...

제3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이 경기로부터 뭔가 얻을 수 있는 건 오히려 우리 축구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강렬한 모티브를 준 장면은 화려했던 골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에콰도르 발렌시아의 헤딩선취골, 부활의 신호탄을 쏜 잉글랜드 루니의 동점골, 또 후반 터진 잉글랜드 램버트의 통렬한 역전골, 에콰도르 아로요의 중거리 동점골 등 모든 골이 경기의 클래스를 입증하는 명장면이었지만...)

취재수첩에서 말하려 하는 문제의 장면은 후반 34분 일어난 잉글랜드 스털링의 태클, 그리고 이후 일어난 에콰도르 발렌시아의 과한 리액션, 그리고 심판의 '공평한' 두 선수 퇴장 건입니다. 연속된 이 장면에선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게 정말 많이 튀어 나왔습니다.

잉글랜드의 19세 샛별 스털링의 과격한 태클부터 말하는 게 순서상 맞겠죠. 당시 잉글랜드는 에콰도르의 아로요에게 동점골을 얻어맞은 뒤, 뭔가 승부를 뒤집을 돌파구가 절실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경험이 적은 스털링은 '과하게' 패기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터치라인 부근에서 발렌시아가 공을 잡자 스털링은 미끄러지며 공을 향해 두 발을 뻗었습니다.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니 스털링은 발렌시아의 공을 향해 도전적인 태클을 했던 게 분명했습니다. 악의는 없어 보였지만, 발렌시아가 이 태클에 상당한 위협을 느꼈던 건 확실해 보였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인 발렌시아는 이미 4년 전 유럽 챔피언스리그 글래스고전에서 브로드풋의 태클로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연히 그 당시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을테고, 스털링의 과격한 태클에 역시 과격하게 대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욱했던 발렌시아는 스털링의 목을 손으로 누르는 비신사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무모한 태클의 스털링과 냉정함을 잃은 발렌시아. 이 상황은 곧 개막하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나올 수 있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우리도 분명히 경계해야 할 사례입니다. 그런데 더 주목한 건 이후입니다.

레드카드를 받고 터벅터벅 라커룸으로 향하던 두 선수. 그런데 어린데다 불의의 퇴장으로 어안이 벙벙했던 스털링과 함께 걸어간 사람이 눈에 띈 것입니다. 바로 이 날 경기에는 뛰지 않았던 잉글랜드 주장 제라드였습니다. 제라드는 어런 스털링이 퇴장당하자 곧바로 벤치에서 나와 함께 라커룸으로 향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스털링과 걸으며 한동안 뭔가를 듣고, 뭔가를 얘기했습니다.

라커룸까지 같이 동행했던 제라드가 한참 후 혼자서 다시 벤치로 걸어왔습니다. 그러자 관중석에 있던 잉글랜드 팬들은 제라드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팀과 어린 동료를 챙긴 주장에게 보내는 감사의 박수로 들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린 선수들을 주축으로 이번 월드컵에 나갑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위기를 관리하고 동료들의 힘을 북돋는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우리도 제라드같은 선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잉글랜드-에콰도르전은 기자가 아니라, 월드컵을 앞둔 우리 태극전사들이 봤으면 더 좋았을 경기가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미국 마이애미에서

JTBC 스포츠부 오광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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