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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샤또는 없나?" 이런 의원님들 출장에 아파트 한 채 값

입력 2024-05-08 05:00 수정 2024-05-08 06:36

올해 상반기 서울 구의원 200여 명 출국
"눈으로 보는 것도 벤치마킹" 관광성 일정 빼곡
섭외도 공문 발송도 여행사가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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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서울 구의원 200여 명 출국
"눈으로 보는 것도 벤치마킹" 관광성 일정 빼곡
섭외도 공문 발송도 여행사가 전담

 
〈사진=JTBC〉

〈사진=JTBC〉

“여기까지 가서도 순두부찌개 드시는데, 그 나라의 음식을 드실 방법이 없나...(중략) 프랑스 파리는 워낙 와인이 잘 돼 있지 않습니까. 샤또라고 하는. 물론 여기 공식적인 서류에는 그런 게 없겠지만......"

“우리 구의원님들이 구민들 생각해서 비즈니스 타고 가기는 좀 그러신 것 같아 이코노미를 하신 것 같은데, 비즈니스는 못 타고 가시더라도 비상구 좌석에 앉게 해서......”

여행사와 고객 사이의 대화 같지만, 아닙니다. 지난 3월 서울 마포구의회 회의에서 나온 말입니다. 구의원들의 해외 출장 계획서를 검토한 뒤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모인 심사위원들의 발언입니다.
 
〈사진=서울 마포구의회 홈페이지〉

〈사진=서울 마포구의회 홈페이지〉


국외 출장이 외유가 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라고 앉혀놓은 심사위원들이 되려 '즐기라'고 독려하는 듯합니다. 위원들은 관광성 일정 일색인 출장 계획서를 그대로 통과시켰고, 마포구의원 9명은 지난달 21일 영국ㆍ프랑스에 6박 8일 다녀왔습니다.
 

상반기 서울 구의원 해외 출장에 8억 2000만 원


기초의원들의 외유성 출장,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계획 단계부터 막을 수는 없을까요

JTBC가 서울 25개 자치구의원의 올해 해외 출장 계획서와 심사회의록을 살펴봤습니다. 16곳이 출장을 다녀왔거나 다녀올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의원 198명이 해외에 나가는데 총 8억 2000만원이 듭니다.

의원들을 수행하기 위해 따라가는 구의회 직원들의 경비까지 포함하면 예산이 더 커집니다. 아직 출장 계획서를 내지 않은 곳들도 "하반기에는 출장 계획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목적과 관련 없는 관광성 일정을 넣었습니다. 계획서는 구체성이 떨어집니다. 관악구의원 14명은 지난달 12일 9600만원을 들여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출장 동기를 보면 기후 위기, 벤처 창업, 마약 문제 등 주제가 중구난방입니다.

오는 12일 호주로 떠나는 중구 의원들은 '100세 시대에 대비해 선진 복지 국가의 정책을 비교·분석하겠다'라고 썼습니다. 곧이어 '선진 관광 국가인 호주를 방문해 비교 시찰한 뒤 관광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한다'라고 합니다. 뭐가 진짜 목적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서울시 중구의회 공무국외연수 일정 중 일부. 시드니 동물원과 블루마운틴을 가는 경로는 여행사 패키지 필수 관광 코스다. 블루마운틴에 가서 남산 한옥마을 관광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설명도 이해하기 어렵다.〈사진=서울 중구의회 홈페이지〉

서울시 중구의회 공무국외연수 일정 중 일부. 시드니 동물원과 블루마운틴을 가는 경로는 여행사 패키지 필수 관광 코스다. 블루마운틴에 가서 남산 한옥마을 관광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설명도 이해하기 어렵다.〈사진=서울 중구의회 홈페이지〉


광진구의원 8명은 오는 13일부터 스페인ㆍ포르투갈을 돌아봅니다. 계획서엔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몬세라트 수도원 등 유명 관광지가 빼곡합니다. 공공 기관에 공식 방문하는 일정은 전체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광진구 의원들이 오는 14일 방문할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대표적인 관광 명소다. 〈사진=스페인 관광청〉

광진구 의원들이 오는 14일 방문할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대표적인 관광 명소다. 〈사진=스페인 관광청〉


일단 가겠다고 마음먹고, 계획서는 어떻게든 끼워 맞추는 겁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식, 코에 걸면 코걸이식' 출장 목적. 계획서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서울 광진구의회 의원들의 공무국외출장 계획서 중 일부. 〈사진=서울 광진구의회 홈페이지〉

서울 광진구의회 의원들의 공무국외출장 계획서 중 일부. 〈사진=서울 광진구의회 홈페이지〉

 

"믿고 승인해주자" 하나 마나 한 심사


이런 계획을 막기 위한 견제 장치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의회마다 공무국외 출장 규칙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사가 엉터리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출장 계획을 심의하는 심사위원회 위원들은 주로 의장이 위촉하게 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갈 출장 심사위원을 본인이 정하는 격입니다.
 
〈사진=JTBC 보도 캡처〉

〈사진=JTBC 보도 캡처〉


외부 전문가나 시민단체 관계자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외부 인사를 앉힌다 해도 객관성이 떨어집니다. 지역 유지, 전 구의원, 고위직 공무원 등을 위촉합니다. 일부 구의회는 여행사 대표를 심사위원으로 앉히기도 합니다. 아는 사람끼리 알음알음, 제대로 된 심사가 될 리 없습니다.

광진구의 사례를 볼까요. 지난달 11월 열린 심사위원회 회의록입니다. 한 위원이 “이렇게 관광지가 많은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라고 지적을 합니다. 무려 '심사위원장'이 이렇게 답합니다.
 
가는 분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관광이 될 수도, 현장 시찰을 통한 많은 배움의 터전이 될 수도 있고요. 우리 의원님들을 믿고 한 번 승인을 해 드리고......

지적을 한 위원은 어이가 없습니다. “위원장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당황스럽다”라고 항변합니다. 그러자 위원장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은 다음 해에 참여를 시켜드렸어요. 막상 내가 참여를 하게 되면 그 부분이 이해되고......

결국 찬성 4표, 반대 1표로 광진구의 출장 계획안은 무사 통과됐습니다. 자정이 전혀 안 되는 겁니다.

행정안전부가 만들어 둔 '공무국외 출장 심의기준표'가 있긴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이걸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는 깜깜이입니다.
 

여행사 대표 불러 "호텔이 몇 급?"


의회는 일정도 직접 짜지 않습니다. 여행사에 위탁합니다. 여행사가 사실상 모든 기획을 전담합니다. 요새는 외유성으로 비치지 않도록 관광성 일정에 공식 기관 방문을 자연스레 섞어 넣는 작업을 잘하는 여행사가 인기 있답니다.
 
〈사진=JTBC 보도 캡처〉

〈사진=JTBC 보도 캡처〉


출장 심사 회의에 여행사 대표가 함께 자리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행사 대표가 직접 심사위원들 앞에서 일정을 프리젠테이션합니다. 이렇게 하면 심사에 도움이 된다는 게 의회 설명인데, 정말 그럴까요. 광진구의회 회의록을 계속 보시겠습니다. 오타도 그대로 옮겼습니다.

심사위원 : 들릴 데가 너무 많습니다. 다 가야 되겠죠. 아브라함(알람브라) 궁전도 가는 걸로 돼 있는데, 물론 다 봐야겠죠. 잘 짠 것 같습니다. 호텔은 우리나라로 하면 몇 급이나 됩니까?

여행사 대표 : 4성급이라고 보시면...

심사위원은 이 출장이 정말 필요한지, 반드시 현지에 가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인지, 방문하는 기관들은 목적에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출장 경비가 과도하게 집행되지 않았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이걸 제대로 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의원들의 여행을 살뜰히 챙기는듯한 대화가 자주 오고 갔습니다.

이런 여행사들은 직원이 몇 안 되는 영세한 곳이 대부분입니다. 업체를 선정하는 기준은 따로 없습니다.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주변 의원들끼리 식사하다가 '여기가 좋다'고 하면 맡기고, 그런 식이다. 전문 여행업체가 아닌 곳도 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3월 22일 열린 서울 성동구의회 의원 공무국외출장 심사위원회 회의록. 〈사진=서울 성동구의회 홈페이지〉

지난 3월 22일 열린 서울 성동구의회 의원 공무국외출장 심사위원회 회의록. 〈사진=서울 성동구의회 홈페이지〉


최근 서울 모 구의회의 의뢰를 받아 출장 계획표를 직접 짠 여행사 대표를 만나봤습니다. 여행사 직원들이 정부기관 섭외부터 면담자까지 직접 정한다고 했습니다. 인터뷰 질문지를 번역하고 공문을 보내는 일까지 여행사 몫입니다. 행정 전문성이 부족한 여행사엔 벅찬 일입니다. 해외 공공·정부기관에서 이런 공문을 쉽게 받아줄 리 없습니다. 관계자 면담 없이, 대충 시설만 둘러보고 오는 일정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행사는 의원들의 불평까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는 “예산에 맞게 겨우 일정을 짰는데 출발 3일 전 추가 일정을 요구하거나, 현지에 도착한 뒤 호텔이나 음식에 대한 불평을 전화로 해오는 일도 있었다. 시차 때문에 새벽에 전화를 받는 등 너무 힘들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사진=JTBC 보도 캡처〉

〈사진=JTBC 보도 캡처〉


이 문제를 오래 조사해 온 이재호 부산참여연대 간사는 “여행사들이 그럴듯하게 계획서를 꾸며내는 노하우가 생겼다. 진짜 문제는 여행사가 아니라, 편하게 여행처럼 출장을 다녀오겠다는 의원들의 마음가짐이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지역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전조사를 철저히 해서 출장지를 정하는 의원들은 사실상 없다시피 한 실정입니다.

기초의회 무용론이 불거진 지는 오래입니다.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지방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의정 활동비는 해마다 오르고, 의원들은 매년 '세금으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합니다. 의원들의 염치에 기대기엔 너무 멀리 왔습니다. 제대로 감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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