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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18) - 축구대표팀, 이젠 '원팀'의 멍에를 벗자

입력 2014-06-27 16:29 수정 2014-10-2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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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18) - 축구대표팀, 이젠 '원팀'의 멍에를 벗자


4년마다 월드컵을 결산하는 기사는 비슷합니다. 기대에 한참 동떨어진 결과, 동일한 아쉬움, 비슷한 총평, 또 반복되는 문제점 지적이 이어집니다.

참 희한하죠. 우리 축구의 월드컵 도전사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우리는 월드컵을 통해 세계 축구계에선 여전히 변방이라는 현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지구촌 축구 강자와 약자의 자리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매번 실감합니다. 그게 축구의 매력이겠죠. 머리와 가장 멀리 있는 발을 쓰는, 그래서 맘처럼 잘 안되는 축구 본연의 깊이를 느끼게 됩니다.

브라질 월드컵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또 세계 축구계의 언더독(약자)일 뿐이었습니다. 벨기에전 0대1 패배. 조별리그 성적은 1무2패. H조 순위는 최하위.

원정 8강을 얘기하던 그 기개는 어디 갔을까요. 사실 지금에서야 하는 얘기지만, 우리나라의 8강 목표는 누가 정해놨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것이었습니다. 4년 전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 16강을 이뤘기에 다음 목표는 당연히 8강이라고 누군가 제시해놓은 것일 뿐이었습니다.

홍명보 감독 입에서 원정 8강이란 말이 나온 적이 없고, 홍 감독은 단 한 번도 성적을 목표로 내세운 적은 없습니다. 그의 목표라면 "후회하지 않는 월드컵"이었는데, 벨기에전 직후 기자회견에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개인적으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후회하지 않을까요.

오늘 벨기에전을 관전한 한 우리 교민이 전해준 얘기입니다. 옆자리에 브라질 현지인이 앉았는데, 처음엔 "코리아"를 외치며 열렬히 한국을 응원하더니, 나중엔 한국 축구를 욕하기 시작했고, 경기 후엔 축구 입장권 값을 물어내라고 따졌다고 합니다. 왜 입장료까지 물어내라고 했는지 물었더니 "결과도 그렇지만 재미도 없었다"고 대답했답니다.

이 브라질 팬의 한마디가 우리 축구대표팀에는 깨우침을 전하는 죽비소리처럼 들립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요.

홍명보팀의 도전은 '원팀(One Team)'으로 시작됐고, 실패 역시 '원팀'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선수들 사이에선 묘한 뻣뻣함이 느껴졌습니다. 러시아와 1대1로 비긴 뒤 그 느낌이 사라지고 활기찬 분위기로 바뀌었기에, 알제리전에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뻣뻣함, 다름이 아니라 팀을 가장 우선시 하면서 찾아온 선수들의 부자연스러움이었습니다.

팀에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 물론 오랜 기간 월드컵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온 선수들이지만, 그게 너무 강조되면 선수들은 생기를 잃고 기계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슬로건인 '원팀'은 선수들의 플레이도 단순화, 규정화했습니다. 팀을 위한 플레이가 최우선이다보니,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며 상상력이 깃든 플레이는 이번 월드컵 내내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스피드와 돌파력, 그리고 정확한 슛까지 지닌 손흥민조차도 팀을 위한 플레이가 부족하다는 지적 속에서 더 많은 수비, 더 많은 패스를 요구 받았으니까요.

모든 것의 중심에 '팀'이 있다보니, 혹시 뺏길까 싶어 안전한 패스만 하게 되고, 위협적인 플레이는 기피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점유율에선 상대를 앞섰지만, 내용이나 결과에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한 이유. 바로 '고약'한 팀 플레이 탓이라고 봅니다.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18) - 축구대표팀, 이젠 '원팀'의 멍에를 벗자


이 '원팀'이 홍명보식 '이너서클' 문화를 더 강고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월드컵 엔트리 발표 때부터 불거진 홍명보 감독의 '의리'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원팀'이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기제로 작용했을 수 있지만, 뒤집어 보면 '이너서클' 외부에 대한 배제의 논리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홍명보 감독은 그동안 런던 올림픽의 성공을 기반으로 한, 작은 세계의 영웅이었습니다. 올림픽 성공의 방법론이 지도 방식으로 굳어지면서 그 것이 정답인양 월드컵을 준비했습니다.

상대팀 정보 분석은 홍 감독이 데려온 안툰 코치에게 전적으로 의존했고, 선수들의 체력은 이케다 코치가 모든 것을 책임졌습니다. 권한과 정보가 일부에게 한정되고, 또 홍 감독은 그걸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오는 부작용도 있었을 겁니다.

알제리전은 분명 잘못된 정보 분석에서 출발했고, 결국 참패로 이어졌습니다. 러시아전에서도, 알제리전에서도, 우리가 상대보다 더 많이 뛰지 않았는데도 후반부엔 체력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체력 관리 역시 이전 월드컵보다 좋았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홍명보 감독 역시 월드컵의 트렌드, 세계적인 축구 흐름을 읽는 전략가적 면모를 보여주는 대신,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하나로 모으는 팀 스피리트에 의존했습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감독의 아우라에 선수들 기가 죽으면서 개성이 표출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능력과 장기를 지닌 선수들을 두루 등용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이제 한국 축구는 브라질 월드컵을 '실패'라고 말하기보다 '부족'했다고 말하고 다시 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갓 1년이 된, '한국 축구의 자산' 홍명보 감독 거취 문제부터 거론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한국 축구가 가야할 길은 '빠른 길'이 아니라 '바른 길'입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 실패가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의 값진 성공으로 가는 밑거름이 되길 기대합니다.

여전히 한국축구를 응원하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JTBC 스포츠문화부 오광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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