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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⑮ '투잡' 뛰는 브라질 경찰

입력 2014-06-2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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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⑮ '투잡' 뛰는 브라질 경찰


'투잡' 캅스.

'투캅스'도 아니고 '투잡' 캅스가 뭐냐고요. '투잡' Two Job 즉 직업이 두 개라는 뜻이죠. 바로 브라질 경찰 이야기입니다.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에서 한 경찰을 만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누에오. 그날은 그의 비번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쉬는 날 쉬지 않았습니다. 슈퍼마켓에서 경비일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경찰 봉급만 갖고는 가족들을 먹여살릴 수가 없어요. 이렇게 투잡을 뛰어야 먹고 살수 있어요."

상파울루 경찰 월급은 우리 돈 130만원 정도. 위험수당까지 포함한 액수입니다. 상파울루에서 한동안 지내보니 물가가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찰 월급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렵다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됐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직업도 아니고 시민을 지키는 경찰이 투잡을 뛴다니요.

"위에서도 다 묵인해줘요. 어쩌겠어요. 먹고 살아야할 것 아니예요. 여기 상파울루 경찰 대부분이 투잡을 뛰어요."

마누에오는 그저 그런 평범한 경찰이 아닙니다. 브라질에서 강력 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상파울루를 지키는 경찰입니다.

"3년 전이었죠. 여기 상파울루에서 그 해에만 경찰 69명이 살해됐어요. 그런데 더 황당한 게 뭔지 아세요. 그들 가운데 경찰 업무 시간이 아닐 때 살해된 경찰이 55명이나 된다는 점입니다."

마누에오처럼 쉬는 날 일하다 살해된 경찰이 대부분이었던 겁니다. 이달 7일이니까 얼마 전인데요,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에도 상파울루 인근에서 경찰 한 명이 숨졌습니다.

경찰 지휘관이었던 46살의 아우메이다는 복면을 쓴 3명의 괴한에게 총격을 당했습니다. 경찰 근무 중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쉬는 날 돈을 더 벌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경호원 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경찰 마누에오처럼 말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건요. 경찰들이 돈을 많이 못받으니까 좋은 동네에서 살지 못해요. 그래서 강도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자리를 잡죠. 경찰과 강도가 함께 사는 참으로 희한한 광경이 펼쳐지는 거예요. 그런데 강도들은 경찰을 만나면 꼭 죽여요. 그래서 경찰들은 제복을 빨아도 집 밖에 절대 걸면 안 되요. 저도 냉장고 뒤에 숨겨서 제복을 말려요. 동네에서 제가 경찰인 건 비밀로 하고 살죠."

마누에오와 헤어진 뒤 호텔 방으로 돌아와 TV를 켰습니다. 브라질 3대 방송사 중 하나인 헤코르지(Record)의 대표적인 뉴스 프로그램 '도시의 긴급상황'이 방송 중이었습니다.

한 여성이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입니다. 동네에서 아이 하나가 없어졌는데, 이 여성이 납치한 것으로 오해한 동네 사람들이 집단폭행을 했다고 합니다.

이 뉴스 프로그램은 두 시간 동안 강력사건들만 내보냅니다. 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오직 마약, 살인, 강도, 폭행 등의 내용 만으로 두 시간을 채웁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말입니다.

다른 방송사 '반데이란치'에도 '브라질 긴급상황'이라는 두 시간짜리 뉴스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오직 강력사건 뉴스만 내보냅니다. 두 프로그램 모두 브라질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⑮ '투잡' 뛰는 브라질 경찰


얼마나 강력범죄가 많이 일어나길래 두 시간 동안, 그것도 매일매일 뉴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걸까요. 브라질 연방 보건부가 지난달 '2014 폭력지도'를 발표했는데요. 이 지도를 보면 2012년 한 해에만 브라질 전체 피살자 수가 5만 6천 명을 넘었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총기사고 사망자 수가 19명, 압도적인 세계 1위입니다.

이 모든 강력사건 현장에 브라질 경찰들이 있습니다.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생활비를 댈 수도 없는 월급을 받고, 그래서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고 있습니다.

월드컵 개막을 앞둔 지난달, 브라질 경찰들은 대대적인 파업에 나섰습니다. 수천 명의 경찰들이 임금을 올려달라고 외쳤습니다. 월드컵 반대 시위에다, 관광객 상대 강도 때문에 마음이 급했던 브라질 정부가 임금 16% 인상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월급 만으로 살아가기엔 한참 부족한 수준입니다.

총탄이 날아다니는 상파울루에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목숨 걸고 일하는 경찰 마누에오. 그는 쉬는 날인 오늘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골목길 슈퍼마켓을 지키고 있습니다.

-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JTBC 스포츠문화부 김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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