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⑬ 그는 왜 '브라질 1호 한인 거지'가 됐나

입력 2014-06-22 14:25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봉헤찌로'.

브라질 최대도시 상파울루에 있는 한인타운입니다. 오후 5시만 되면 이곳에선 특이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수많은 브라질 현지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데, 이들은 바로 우리 교민들이 고용한 직원들입니다.

브라질에 사는 우리 교민들은 부자로 인식됩니다. 옷장사를 해서 큰 돈을 벌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했던 한 교민 말에 따르면 하루에 1억원을 번 사람이 있을 정도라네요. 그렇다보니 '브라질에서 한국인들이 옷을 점령했다'는 말까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사는 한인사회에 거지가 등장했답니다. 바로 '브라질 1호 한인거지'입니다. 그가 누군지, 무슨 사연인지 궁금했습니다. 교민들에게 수소문했습니다.

"50살 정도 됐다죠, 아마?"
"20년 전에 브라질에 왔다고 하던데, 여기서 사업하면서 돈도 꽤 벌었다더라고요."

그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들을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그를 알고 있는 한 교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⑬ 그는 왜 '브라질 1호 한인 거지'가 됐나


"마약이었어요."
"네?"
"마약이라고요. A씨를 거지로 만든 건 마약이었어요."

그는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잘 나갔죠. 그러다 마약에 빠졌어요. 마약을 거래하다가 감옥에도 갔대요. 사람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더라고요."

A씨는 그렇게 '브라질 1호 한인거지'가 됐습니다. 교포들에게 구걸해 돈만 생기면 마약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도와주려고 무던히 애썼어요. 그래도 소용없어요. 돈만 있으면 마약하러 달려가는걸요. 우리 교민들도 이제 손을 놨어요. A씨에게 노모가 한 분 계신데 연을 끊었나보더라고요. 포기한거죠."

어쩌다 A씨는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을까.

"마약을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나요? 브라질에서 불법 아닌가요?"
"쉽다 마다요. 상파울루 도심 한복판에서 수백 명이 마약을 대놓고 하는 걸요. 한번 가보시겠어요?"

상파울루는 치안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그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브라질 1호 한인거지'를 낳은 곳을 말입니다.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⑬ 그는 왜 '브라질 1호 한인 거지'가 됐나


교민과 함께 차를 타고 그곳을 찾았습니다. 족히 100명은 돼 보이는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습니다. 마약 중독자들입니다.

동공은 풀려 있고 저마다 손에는 크랙이 들려 있습니다. 크랙은 코카인을 소다수, 암모니아 또는 물에 용해시켜 가열한 후 건조시켜 만든 백색결정체로 마치 작은 돌같이 생겼다고 해서 마약사용자들은 '돌'이라고 부릅니다. 상대적으로 값이 싸고 매우 효능이 강해 치명적입니다.

그런데 도심 한복판에서 100여명의 사람들이 대놓고 크랙을 하고 있다니요. 심지어 그들 주위엔 경찰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습니다. 불법인 마약을 거리에서 보란 듯이 하고 있는데 경찰들이 지켜주는 참으로 희한한 광경이었습니다. 이곳은 '끄라꼴란지아'라 불립니다. 영어로는 크랙랜드(crackland), 우리말로는 '마약촌'쯤 됩니다.

지난 1990년대부터 상파울루 시내 한복판에서 크랙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마약 중독자들이 거리에서 구걸을 한 뒤, 그 돈으로 대놓고 크랙을 했습니다. 약 400명 정도가 이곳 '크랙랜드'에 살고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일 이곳을 찾는답니다.

크랙은 가격이 매우 쌉니다. 그리고 구하기도 쉽죠. 큰 크랙 하나가 우리 돈으로 4천원 정도라고 합니다. 단 몇 분 만에 빠르게 환각 상태에 빠져든다고 하는군요.

브라질 정부는 꾸준히 '크랙랜드'를 없애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경찰들이 고무총과 최루탄을 쏘며 해산시켰죠. 하지만 아무 소용 없었습니다. 조금만 지나면 다시 이곳으로 마약 중독자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월드컵을 앞두고 이곳 '크랙랜드'를 그냥 둘 순 없었습니다.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⑬ 그는 왜 '브라질 1호 한인 거지'가 됐나


'도심 한복판에서 대놓고 마약을?'

전세계 관광객들을 이해시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브라질 정부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습니다. 바로 이곳 '크랙랜드'에 있는 마약 중독자들에게 호텔을 제공하고, 밥도 주고, 일거리도 주는 독특한 계획이었습니다. 거리청소를 하면 하루에 7천원 쯤 돈도 줬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 공짜 호텔과 공짜 밥, 일거리를 주는데 다시 '크랙랜드'를 찾게 되는 걸까. 거리에 있는 마약 중독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우리에게 크랙을 권하던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요. 거리에서 자도 우리는 죽지 않거든요. 호텔? 필요없어요. 오늘 금요일이죠? 거리청소 대가로 돈이 들어오는 날이네요. 오늘은 크랙랜드에서 파티가 열릴거예요. 신난다."

브라질에 마약 안전지대는 없습니다. 우리 축구대표팀의 베이스캠프가 있는 유명한 관광도시 이구아수도 예외가 아닙니다.

외교부의 해외여행 안전코너에 올라와 있는 경고문입니다.

[이구아수]
- 이 지역은 이구아수 폭포로 유명한 관광명소이자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개국 접경도시로서 비교적 국경통과가 쉬워 마약, 총기 등 밀매가 성행하고 있고, 관광객에게 일반 물건으로 위장한 마약 운반을 부탁할 수 있으므로 모르는 사람의 물건은 절대 대신 운반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합니다.

취재차 직접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 국경을 넘어갔다 왔는데 브라질 쪽에선 단 한번도 출입국 심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마약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겁니다.

'브라질 1호 한인거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약에 손을 댄 사람의 잘못이 클까요 아니면 도심 한복판 거리에서 손쉽게 마약을 접할 수 있도록 방치한 쪽의 잘못이 더 클까.'

물론 둘 다 잘못이겠지만 말이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관련기사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⑫ 재미는 없지만 알아야 할 이야기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⑪ '월급 23억 원' 브라질의 스포츠 앵커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⑩ 홍명보 감독은 왜 억울하다 했을까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⑨ 드넓은 브라질…쿠이아바 찾아 삼만리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⑧ 전 재산 털어 월드컵 보러온 한국 청년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