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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17) - 월드컵 경기장 옆 '공포의 아파트'

입력 2014-06-26 18:38 수정 2014-06-2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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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17) - 월드컵 경기장 옆 '공포의 아파트'


"높은 곳을 찾아라."

현장취재를 나가는 방송기자들이 항상 하는 말입니다. 좋은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선 높은 곳에 올라가는게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벨기에전이 열리는 상파울루 코린치앙스 경기장을 둘러보러 갔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높은 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중 눈길이 멈춘 곳, 한 허름한 아파트였습니다. 경기장 바로 옆에 위치해 내려다보며 찍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저 아파트 옥상으로 가주세요."

취재차량을 몰던 현지 가이드에게 부탁했습니다.

"음..."

웬일인지 가이드가 망설입니다. 한 번도 안된다고 한 적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

"음...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저 아파트에 들어가는 건 자유지만 나오는 건 장담 못한다고요."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여기에 월드컵 경기장이 있어서 괜찮은 곳처럼 보이죠? 사실 이곳은 상파울루에서 가장 치안이 안 좋은 지역 가운데 하나예요. 특히 저런 아파트에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갔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요."

가이드 말을 듣고 보니 그 아파트가 달리 보입니다. 아파트 벽면에 알아볼 수 없는 낙서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 낙서들은 뭐예요? 어떤 의미예요?"

가이드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듭니다.

"저 낙서엔 아무런 뜻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냥 범죄집단의 상징이죠. 그들은 위험한 곳에 자신들의 상징을 낙서로 남겨요. 여기 상파울루 도심을 지나오면서 새로 짓는 건물 위에 낙서돼 있는거 보셨죠? 아무도 몰래 안전장치도 없는 위험한 곳에 가서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는 겁니다. 예전에 상파울루 범죄집단이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에 낙서를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죠. 리우데자네이루의 범죄집단은 그 복수의 의미로 상파울루 독립기념관에 낙서를 남겼어요. 브라질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됐었죠. 저 아파트에 써있는 낙서들도 그런 종류일 거예요."

'이따께라'.

상파울루에 들어선 월드컵 경기장 이름이자 이 지역 이름이기도 합니다. 이따께라는 상파울루 북동쪽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지하철 마지막 역이 있는 곳입니다. 월드컵 경기장이 지어지기 전엔 지하철도 없었습니다. 완전히 버려진 지역이었죠.

현지 가이드가 저희 취재진을 태우고 월드컵 경기장으로 가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제가 상파울루에 40년을 살았거든요. 그런데 저도 차 타고 이 지역엔 처음 와봐요. 강도를 당할까봐 엄두를 못냈죠."

상파울루의 한 교민은 이따께라 지역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따께라 지역이요? 엄청 위험한 곳이죠. 좀 과장해서 '저 이따께라 지역에서 왔어요' 라는 말은 '저 강도예요'라는 말과 같은 말이라는 우스개소리까지 있을 정도죠."

또 다른 교민도 월드컵 경기장이 생겼지만 지금도 이따께라 지역엔 가기 꺼려진다고 말했습니다.

"제 딸이 월드컵 자원봉사 요원으로 뽑혔거든요. 16살이에요.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봉사활동 관련해서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거예요.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날엔 봉사활동 갈 수 있어요. 경찰이 쫙 깔리거든요. 하지만 교육 받으러 가는 날엔 경찰이 그만큼 보호해주지 않아요. 결국 딸아이를 교육에 보내지 않았어요. 언제 또 열릴지 모르는 월드컵에서 봉사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지만 딸 아이를 위험한 곳에 보낼 순 없었어요."

화려한 월드컵 경기장의 조명에 가려진 이따께라 지역의 실제 모습입니다. 월드컵 경기장이 생기면서 주변에 경찰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경기장 주변 뿐입니다. 실제로 촬영을 위해 경기장을 조금만 벗어나도 경찰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위험 지역에 들어가진 못하고 경기장 바로 근처의 고가도로에서 촬영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처음에 올라가려다 포기했던 공포의 아파트, 들어가는 건 자유지만 나오는 건 장담 못한다던 그 아파트 쪽에서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슬금슬금 내려왔습니다.

돌멩이를 하나씩 집어들고 우리쪽으로 다가와 바짝 긴장했습니다. 우리가 경계를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아이들은 발길을 돌려 경기장 쪽으로 돌멩이를 집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아이들은 다시 그 공포의 아파트로 뛰어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 (17) - 월드컵 경기장 옆 '공포의 아파트'


차를 조금 몰고 나가자 곧 무너질 듯한 벽돌집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곳에서 연날리기를 하고 있는 어린 친구들과 마주쳤습니다. 10살 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어린 친구들이라 경계를 풀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중 한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아저씨들은 왜 이상한 말을 해요?"

그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인과 대화를 나눠봤다 했습니다. 자기가 쓰는 말과 다른 말을 처음 들어본 겁니다. 현지 가이드가 한국말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그 아이는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현지 가이드는 혀를 차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저런 아이들이 커서 강도가 됩니다. 교육과는 거리가 멀죠. 이 지역은 버려진 곳이에요.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월드컵 경기장 공사를 하던 노동자가 근처에 있는 여자아이를 성폭행했어요. 그리고 임신을 시켰죠. 그 사실이 드러나자 성폭행남은 여자아이를 책임지겠다며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했죠. 그런데 황당한 게 뭔지 아세요? 그 여자아이 아버지가 별 반응없이 그러라고 했다는 겁니다. 입이 하나 줄었다는 거죠. 여자아이가 경찰에 그렇게 진술했다고 신문에 났습니다.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

화려한 불빛이 월드컵 경기장을 밝힐수록 이따께라 지역은 더 어두워집니다. 월드컵 경기장 바로 옆,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살고 있는 한 중년여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월드컵 경기장이 바로 옆에 있어도 우리는 경기를 TV로 봐야해요. 표를 살 돈이 없거든요. 월드컵 경기장이 생겼다고 달라진 건 없어요. 월드컵이 끝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거예요. 어둠속으로 말이죠."

착잡한 마음으로 근처 찻집을 찾았습니다. 목을 축이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가게를 나왔는데 짐을 놓고 나온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서둘러 가게로 돌아가면서 든 생각,

'강도가 많은 지역인데 당연히 없어졌겠지?'

거의 포기 상태로 가게 점원에서 짐을 봤냐고 물었습니다. 역시 대답은 '노'였습니다. 실망하고 돌아서려는데 점원이 미소를 띠며 숨겨둔 짐을 보여줍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터진 그 어느 골보다도 아름다운 미소였습니다.

모두가 포기한 이따께라 지역에도 이런 '반전'의 미소가 피어날 날이 올까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JTBC 스포츠문화부 김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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