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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16) - 브라질 사람들에게 한국 축구를 물어보니

입력 2014-06-2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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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16) - 브라질 사람들에게 한국 축구를 물어보니

아픈 기억을 계속 곱씹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다시 알제리전으로 돌아갑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알제리전 이후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오늘 베이스캠프인 이구아수를 떠나 벨기에와 마지막 결전을 펼칠 상파울루에 들어왔습니다. 대표팀은 내일 들어오니까 취재진 일부가 하루 먼저 도착한 셈이지요.

취재진끼리는 서로 "이구아수가 고향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주고 받았는데, 정말 떠날 때 아쉬웠습니다. 어디든, 누구든 몸을 맡기고 마음을 주면 그리워진다는 것. 단순히 옮겨가는 것인데 떠나는 것으로 느껴졌으니, 마음이 움직이면 그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구나 느꼈습니다.

브라질 사람들, 정감이 있습니다. 우리 대표팀 베이스캠프 주위를 지켜준 경찰과 군인들, 무서운 표정으로 한 곳만 노려다가 "사진 찍자"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면 흔쾌히 어깨동무를 해줍니다. 우리나라 경기가 있는 날엔, 한국팀을 브라질팀인양 응원해준 주민들, 이구아수 공항에 '대한민국 파이팅'이란 한글 응원문구를 걸어놓기도 했습니다.

경기장을 내려다보는 영상을 찍으려고 쿠이아바, 포르투 알레그리의 경기장 인근 아파트 문을 노크할 때마다 흔쾌히 안방까지 내준 할아버지, 아주머니 역시 이방인을 따뜻하게 대해준 고마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한국 축구에 대한 느낌과 정서를 공유하려는 노력도 많았고, 또 한국 축구의 이미지에 대해 분명한 생각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한국 축구를 규정하는 이미지에 대해 브라질 사람들 사이에선 공통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브라질 월드컵 때문에 왔다는 얘기를 하면, 이 곳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뭐였을까요. 놀랍게도(아니면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박지성도 이번 월드컵에 왔냐"는 것입니다.

이구아수 폭포의 브라질 쪽 관광 안내원도, 아르헨티나 쪽 관광 안내원도 대한민국하면 박지성이 떠오르는지 그에 관한 이야기만 계속 물어봤습니다.

"박지성이 대표팀에 함께 하지 못했다."

"왜 함께 하지 못했나."

"무릎이 아파서 선수에서 은퇴했다."

"무릎이 얼마나 안 좋길래 벌써 은퇴하나."

러시아전 장소인 쿠이아바에서 만난 브라질팬들도 박지성 안부부터 물었습니다. 그들은 박지성이 당연히 대표팀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지 "그라운드에서 박지성 자리가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대표팀에 박지성은 없다"고 대답하면 "그렇게 경험 많고, 잘 뛰는 선수가 월드컵에 안 나오면 어떻게 팀을 꾸리냐""박지성이 대표팀에 함께 하지 못한 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라운드 안의 리더 부재, 우리는 그렇다고 해야 그런가보다 '머리'로 생각했던 포인트인데, '축구의 나라' 브라질 사람들은 그런 게 가슴으로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그 대목에선 지난해 초 인터뷰에서 이영표 KBS 해설위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박지성은 안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바깥에서 보면서 평가하는 게 훨씬 높아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박지성을 최고라고 얘기하는데, 우리만 아니라고 해요."

박지성 얘기만 하는 걸 보면서 '한국 축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하듯 과감하게 말하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 더 물었습니다.

"한국 축구하면 떠오르는 게 뭔가요."

질문에 돌아온 대답,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취재수첩] 유브라질월드컵기(16) - 브라질 사람들에게 한국 축구를 물어보니



빠른 축구를 설명하려는 듯 "스피드"란 단어도 꺼냈고, "미드필드까지는 잘 가지만 골은 잘 못 넣는다"며 문전처리 미숙도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 축구의 이미지와 묘하게도 비슷했습니다. 우리가 박지성을 아쉬워하듯, 그들도 이번 월드컵에서 '박지성 없는 대한민국 대표팀'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어 "빠른 축구라고 생각했던 한국 축구인데, 왜 이번 대회에선 스피드가 사라졌나""한국 축구가 골은 잘 못넣는 것 같다" 등 이번 월드컵에서 드러난 한국 축구의 '생얼'을 정확하게 짚어냈습니다.

한국 축구의 이미지, 아니 현실은 그런 겁니다. 빠른 것처럼 보이고, 열심히 뛰기는 하지만, 좀처럼 골은 못넣는 축구. 언제나 세계축구의 변방에서 기적을 꿈꾸는 축구. 은퇴를 했어도 '박지성'으로만 기억되는 축구.

그래서 벨기에전은 더 절실해졌고 간절해졌습니다. 16강에 가면 좋겠지만 그건 우리 힘으로만 될 수 있는 아니고, 적어도 벨기에전이 끝난 뒤 브라질 사람들한테 이런 말을 듣고 싶습니다.

"박지성 없어도 한국 축구, 참 잘하네."

- 브라질 이구아수/상파울루에서
JTBC 스포츠문화부 오광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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