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박상욱의 기후 1.5] 한국형 뉴딜, 초록빛일까, 잿빛일까

입력 2020-05-04 10:17 수정 2020-06-05 10:58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4)

"정부는 고용 창출 효과가 큰 대규모 국가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단지 일자리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을 준비해 나갈 것입니다. 관계 부처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로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추진할 기획단을 신속히 준비해 주기 바랍니다. 정부가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나서 주기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아직까지 이 '한국판 뉴딜'이 무엇일지, 어떤 내용들이 중점적으로 담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기엔 세계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그린 뉴딜'도 담길 가능성이 큽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한국형 뉴딜, 초록빛일까, 잿빛일까 2020년 4월 22일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 (사진: 청와대)


여기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반년동안 기후변화에 관한 연재 글을 이어오고 있는 기자 개인의 바람을 담은 '희망사항'에 그치지 않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한국형 뉴딜, 한국의 그린 뉴딜에 대한 이야기는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한국형 뉴딜, 초록빛일까, 잿빛일까


그린 뉴딜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린 뉴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무엇인지, 앞선 취재설명서를 통해 자세히 알아본 바 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토대로 말이죠. 이른바 '녹색 전환'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도 생기지만, 새롭게 생기는 일자리는 그보다 더 많아 144만여개의 일자리가 '순증'한다는 내용, 또 지금이라도 이 '녹색 전환'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잃는지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지난달 말, 제11차 피터스버그 기후각료회의가 열렸습니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각국 각료들이 한 데 모이진 못했습니다. 각자가 위치한 장소에서 화상회의를 가졌는데요, 여기엔 우리나라의 조명래 환경부 장관도 참석했습니다.

먼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기술의 발달은 우리 편에 서있다"며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6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첫째, 코로나19 사태의 복구를 위해 우리는 수십조의 돈을 투입하고 있고, 투입할 예정입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깨끗하고, 환경 친화적이며 공정한 전환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와 일거리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 투자는 반드시 우리 경제의 모든 분야에 있어 탄소 저감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First: As we spend trillions to recover from Covid-19, we must deliver new jobs and businesses through a clean, green and just transition. Investments must accelerate the decarbonization of all aspects of our economy.

둘째,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납세자들의 돈이 필요한 곳엔 반드시 녹색 일자리가 마련되어야 하며 이는 지속가능하고 포괄적인 성장을 불러와야 합니다. 이미 유통기한이 다 된 낡은, 지구를 더럽히는, 탄소 집약적인 산업을 구제하는 데에 쓰여선 안 됩니다.
Second: where taxpayers' money is needed to rescue businesses, it must be creating green jobs and sustainable and inclusive growth. It must not be bailing out outdated, polluting, carbon-intensive industries.

셋째, 구제금융은 반드시 우리 경제를 회색 경제에서 녹색 경제로 바꿔야만 합니다. 사회 전반과 시민 개개인이 모두에게 공정하고, 그 누구도 뒤처지는 사람 하나 없는 전환을 통해 회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Third: Fiscal firepower must shift economies from grey to green, making societies and people more resilient through a transition that is fair to all and leaves no one behind.

넷째, 앞으로도 공공자금은 미래를 바라보고 투자되어야 합니다. 환경과 기후에 도움을 주는 지속가능한 분야와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말입니다. 화석 연료에 대한 보조금 따위는 사라져야 합니다. 탄소는 반드시 값이 매겨져 배출자들로 하여금 환경을 해치는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야 합니다.
Fourth: Looking forward, public funds should invest in the future, by flowing to sustainable sectors and projects that help the environment and climate. Fossil fuel subsidies must end, and carbon must have a price and polluters must pay for their pollution.

다섯째, 국제금용 시스템도 정책이나 인프라를 조성할 때에 반드시 기후에 위기가 될지 도움이 될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투자자들도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성장으로 지구가 치르게 되는 가치를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Fifth: The global financial system, when it shapes policy and infrastructure, must take risks and opportunities related to climate into account. Investors cannot continue to ignore the price our planet pays for unsustainable growth.

여섯째, 코로나19와 온실가스 저감이라는 두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국제사회 차원에서 함께 공조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고립은 하나의 덫입니다. 그 어느 나라도 홀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Sixth: To resolve both emergencies, we must work together as an international community. Like the coronavirus, greenhouse gases respect no boundaries. Isolation is a trap. No country can succeed alone.

이와 함께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G20 국가들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80%를 차지하는 만큼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각별히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현재 피터스버그 기후각료회의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독일과 영국도 여기에 화답하듯 코로나19 회복 정책을 기후친화적인 사회와 경제로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노르웨이와 칠레는 각각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당초보다 상향 조정한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하기도 했고요.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계획들을 현재까지 만들었는지에 대해선 14번째 연재글 <[취재설명서]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 정부 대책 살펴보니…웃다 울다>를 통해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NDC 조정은 없지만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금융지원 정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일본의 주요 금융기관들의 석탄화력발전 투자 중단 결정을 호평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최대 은행으로 꼽히는 미쓰비시 UJF 파이낸셜 그룹이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신규 투자를 안 한다고 선언한 데에 이어 일본 3대 금융그룹으로 꼽히는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이 지난달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미즈호FG의 경우, 이미 석탄화력발전소들에 빌려준 돈도 2050년까지 모두 회수할 계획까지 내놨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는 대신 2030년까지 약 12조엔(우리 돈 약 137조원)을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입하기로 했죠.

우리는 어땠을까요. 우선 가장 다행스러운 건, 우리 정부도 그린 뉴딜의 중요성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날 우리 정부는 한국형 뉴딜 추진 계획을 소개하면서 여기엔 녹색 전환에 관한 내용이 담길 거라고 밝혔습니다. NDC 수립을 계기로 녹색 전환과 탄소 중립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를 촉진한다는 계획도 함께 말이죠.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공개된 모두발언엔 담기지 않았습니다만, 이날 우리 정부의 노력에 대해서 '모범 사례'라고 호평했다는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와 기후변화라는 두 가지 문제에 어떻게 조화롭게 대응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한국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꼭 반가운 소식만 전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호평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뉴딜이 자칫 '녹색 전환'이 아닌 '잿빛 전환'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겁니다.

유럽환경재단(MAVA Foundation)의 생물다양성을 위한 금융(F4B, Finance 4 Biodiversity)는 영국의 환경·경제 전문 컨설팅 업체인 비비드이코노믹스에 한 가지 연구를 의뢰했습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주요 나라들의 계획을 평가해달라는 것입니다. 연구 대상엔 미국과 이탈리아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 등 총 11개 나라가 들어갔습니다.

11개국의 경기부양 예산 규모는 2조 2천억 달러의 미국부터 270억 달러의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단순히 비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예산이 쓰이게 될 분야를 따져서 재정의 친환경성을 평가했습니다. 단순히 많은 돈을 쓴다고, 혹은 적은 돈을 쓴다고 친환경이냐를 판가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한국형 뉴딜, 초록빛일까, 잿빛일까 11개국의 예산규모(왼쪽)와 해당 예산의 친환경지수(오른쪽) (자료: 비비드이코노믹스, GSCC)


우리의 경우, 예산 규모 면에선 조사 대상인 11개 나라 가운데 10위로 적은 편에 속했습니다. 이 항목이야 기뻐하거나 안타까워 할 필요가 없겠지만 문제는 GSI(녹색자극지수, Green Stimulus Index)라고 명명된 '친환경지수'였습니다. 쓰는 돈은 11개국 중 최하위권인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따졌더니 세 번째로 '반 환경적'이라는 겁니다. 요즘 흔히들 '가성비'라는 표현을 씁니다만,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가성비가 나쁜 거죠.

비비드이코노믹스는 보고서에서 "한국과 일본, 캐나다, 호주는 최근 들어 급격히 갈색(녹색의 반대)로 향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 이전의 기존 정책이나 환경적인 성과들은 미국이나 중국보다 뛰어났지만 최근 각종 자금이 기존 갈색 산업으로 향하고 있다"며 "녹색으로의 전환에 대한 결정적인 움직임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당장 예산의 정확한 용처와 각 용처별 규모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같이 단정적으로 평가하긴 어렵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입니다. 이 우려가 잘못된 '기우'에 그칠지, 반대로 이보다 더 심각할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곧 구체적인 계획이 나올 테니까요. 그때까진 우려와 관찰을 지속하는 것이 시민사회와 언론의 역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여전히 '탈석탄' 시점을 명확히 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면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최근, 한 목소리로 정부의 '2055년 탈석탄' 계획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발표를 앞둔 9차 에너지 기본계획에 석탄발전소의 완전 폐쇄 시점이 담기는데, 너무 늦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아직 확정되어 발표된 내용이 아닌 만큼, 변동의 여지는 있습니다만, 이들이 '유력해 보인다'며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데엔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기후솔루션은 "2055년을 시점으로 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현재 건설 중인 신규 석탄화력발전소가 본격 가동을 시작하는 게 2024년인 만큼, 이는 자연스럽게 종료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가 탈석탄을 위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30년의 기본 수명을 다 하겠다는 것이 과연 '탈석탄'이라고 할 만한 일이냐는 겁니다.

지구의 기온 증가폭을 섭씨 1.5도 이내로 묶으려면 늦어도 2040년, OECD 국가의 경우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전면 퇴출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내놓은 분석 결과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석탄발전 사업에 대한 모든 금융 지원을 중단하라"며 "2030년 전면 중단을 위한 '석탄발전 퇴출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석탈 발전에 대한 금융 지원 중단은 앞서 피터스버그 회의에서 구테흐스 사무총장도 강조한 부분입니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도 "목표는 석탄 퇴출을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라며 "2030년을 탈석탄 목표로 하고 재생에너지로 적극 전환하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추경 등 경기부양책이 '녹색'이 아닌 '잿빛'이라는 지적에도, 탈석탄 시점이 늦어도 너무 늦다는 지적에도 정부의 반응은 일관됩니다.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잘못된 내용이다", "녹색 전환을 계획 중이다", "탈석탄 시점은 2055년보다 이르다"와 같은 전면적인 반박은 없었습니다.

다음 주 취재설명서(5월 11일)를 쓰기 하루 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연설과 함께 '한국형 뉴딜'에 대한 비전도 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디 다음 주에 "이러한 우려가 기우였다"고 적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관련기사

[취재설명서] 기후변화 (23) 코로나가 휩쓴 사이 [취재설명서] 기후변화 (22) 민주주의서 찾아보는 기후변화 해법 [취재설명서] 기후변화 (21) 봄날은 갔다 [취재설명서] "다음엔 맥주 한 잔해"…베트남 현지에서 느낀 사과와 용서의 의미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