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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1.5℃ 마지노선 임박…기후변화와 지구행복지수

입력 2024-05-06 08:01 수정 2024-05-06 08:1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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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34)

2023년, 지구의 평균기온은 14.98℃를 기록했습니다. 역대 가장 높은 기온으로, 기존 역대 최고 기록이던 2016년보다 0.17℃ 높을뿐더러 '1.5℃ 이내'라는 기후 대응 목표의 기준점인 산업화 이전 평균(1850~1900년 평균) 대비 1.45℃의 높습니다. 195개국의 정부 관계자와 과학자들이 만장일치로 확인한, 되돌리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마지노선에 다다르기 일보 직전인 것입니다.

WMO(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세계기상기구)는 이러한 기후변화로 지난해 총 17개의 유엔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 지속가능발전목표) 가운데 ② 기아 종결, ⑪ 지속가능한 도시와 사회, ⑭ 수중 생물 및 ⑮ 육상 생물 등 생태계 전반이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심각한 식량안보 문제를 겪었던 인구수가 1억 3,500만명이었던 것에 비해 지난해엔 그 규모가 3억 3,300만명으로 배를 넘었습니다. “지금의 글로벌 식량 위기는 현대 사회들어 가장 심각해진 상태”라는 게 WMO의 설명입니다.

남수단에선 최악의 홍수로 전체 인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776만 8천여명이 지난해 4~7월 사이 심각한 식량 부족에 시달렸고, 아프가니스탄에선 강수 등 물 부족으로 작황이 급격히 나빠짐에 따라 지난해 5~10월에만도 1,530만명이 식량 부족 문제를 겪었습니다. 예멘에선 식량과 연료 가격의 고공행진과 더불어 내전의 영향까지 겹쳐 인구의 53%가 식량위기 인구로 분류됐습니다. 폭풍 '다니엘'의 여파는 지중해와 인접한 MENA(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도 미쳐 리비아에서만 4만 3천명가량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수단 등지에서 온 수백여 이민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북미 지역의 경우, 캐나다의 산불로 2만여 시민들에 대피 명령이 내려졌고, 미국에선 폭풍으로 인한 홍수에 8만 8천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또, 하와이에선 산불로 7,500명이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심각한 엘니뇨 문제로 직격타를 맞은 중남미 지역에선 옥수수를 비롯한 각종 작물 재배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에콰도르에서만도 1억 3,600만 달러 규모의 홍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오세아니아 지역에선 강수량의 감소로 전년 대비 곡물 생산량이 31.1% 줄어들었고요. 인도네시아에선 최악의 가뭄으로 쌀 생산량이 64.5만톤 감소했습니다.

유럽에서도 대규모 피해가 잇따랐습니다. 2023년 4월, 이탈리아 북부 지방인 에밀리아 로마냐의 전례 없는 홍수로 3만 9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평온한 날씨를 자랑하는 지중해 지역조차 기후변화의 영향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폭풍으로 그리스의 면화 경작지 282㎢ 등, 총 820㎢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었고, 2만여 마리 넘는 양과 염소가 폐사했습니다. 스페인에선 반대로 심각한 가뭄으로 국토의 30%가량에 가뭄 경보가 내려졌고, 밀과 보리의 생산량은 40%가량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1.5℃ 마지노선 임박…기후변화와 지구행복지수
역대급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메탄 농도 등 높은 온실가스 농도와 더불어 아시아 지역도 뜨겁게 달궈졌습니다. 지난해 아시아 지역의 평균기온은 과거 30년(1991~2020년) 평균보다 0.91℃ 높아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뜨거운 해로 기록됐죠. 그로 인한 피해 또한 컸습니다. 지난 5월, 사이클론 '모카'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한 미얀마에선 340만명이 여전히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상황입니다. 7월엔 수퍼 태풍 '독수리'로 인해 필리핀에서만 31만 3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대만과 중국에선 35만 4천명이 긴급 대피했습니다. 반면, 인도에선 역대급 가뭄으로 수자원이 고갈돼 농업은 물론 전력 생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3년은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습니다. 기상청이 지난달 29일 공개한 〈2023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과 대전, 전주,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일최고기온 극값이 경신됐습니다. 전국 최고기온의 이상고온 발생일수만도 1월 5.7일, 2월 2.6일, 3월 11.9일, 4월 4.0일, 5월 2.3일, 6월 3.3일, 7월 2.8일, 8월 3.2일, 9월 4.8일, 10월 3.5일, 11월 7.0일, 12월 6.7일에 달했고, 최저기온의 이상고온 발생일수도 1월 2.5일, 2월 2.8일, 3월 7.8일, 4월 5.8일, 5월 6.7일, 6월 5.1일, 7월 3.5일, 8월 5.8일, 9월 12.5일, 10월 1.6일, 11월 5.3일, 12월 8.3일을 기록했습니다.

피해도 상당했습니다. 지난해 건조한 봄 날씨로 남부지방에선 2022년에 이어 가뭄이 지속돼 제한급수, 운반급수 등의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또한 5ha 규모 이상의 산불 발생 건수는 35건으로 지난 10년 평균(11건)의 3배를 넘었으며, 대형산불 또한 10년 평균(2.5건)의 3배 이상인 8건이나 발생했습니다. 봄에는 쩍쩍 갈라진 논과 저수지 바닥으로 피해를 입은 와중에 6~7월엔 역대급 폭우를 부른 장마 기간, 전국에서 52명이 목숨을 잃었고, 재산 피해 규모는 7,513억원에 달했습니다. 당시 6만 8,367ha에 달하는 면적의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고, 이어 8월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2,849ha에서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심각한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 수는 2,818명에 달해 2018년(4,526명)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2022년의 기록(1,564명)을 크게 넘어섰을 뿐더러, 2011년 온열질환 감시체계 운영 이래 평균 수(1,625명)보다도 많았습니다.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만도 80만 8천 마리에 달하고, 바닷물도 달궈져 양식장에서의 대규모 폐사 피해 등 438억원의 피해액이 집계됐습니다. 이는 2022년의 피해액인 17억원과는 비교조차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1.5℃ 마지노선 임박…기후변화와 지구행복지수
피해 양상에서도 나타나듯, 아시아는 기후변화의 무풍지대가 아닌 취약지대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1901년 이래 30년 단위로 대륙별 기온 변화폭을 비교해 나타낸 것입니다. 20세기 이후 아시아는 1931~1960년을 제외하고는 전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보다 더 큰 폭으로 기온이 올랐습니다. 특히, 최근 30여년(1991~2023년)의 경우, 직전 30년(1961~1990년) 상승폭의 배를 기록할 만큼, 온난화는 악화일로를 걷는 중입니다.

바닷물의 온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해수온 상승이 거듭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인근 북서태평양의 경우, 최근 40여년(1982~2023년)간 0.27℃/10년의 속도로 달궈졌습니다. 인도양(0.21℃/10년), 아시아 대륙과 인접한 북극해(0.17℃/10년)의 상승 속도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날로 뜨거워지는 대기와 바닷물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도 심각합니다. 1993년부터 2023년 5월까지 전지구 해수면은 연평균 3.4mm씩 높아졌는데, 아시아 지역의 해수면은 더욱 빠른 속도로 높아졌습니다. 북서태평양은 연평균 3.92mm, 북동인도양은 연평균 4.44mm, 동남아 인근의 열대 서태평양은 무려 연평균 4.53mm씩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변화 끝에 불가역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피하고자, 국제사회는 다시금 뜻을 모았습니다. UNDP(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유엔개발계획)가 지난 4월 23일 뉴욕에서 '기후 약속(Climate Promise) 2025'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킨 것입니다. 여기엔 128개 나라가 동참했습니다. 선진국들과 유엔의 지원을 활용해 개도국의 보다 더 나은 NDC 수립을 돕겠다는 취지입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는 각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중대한 수단이나 복잡하고 기술적인 문서이기도 하다”며 “개발도상국들은 이러한 자국의 NDC를 최대한 야심차고, 포용적이며, 종합적으로 만들기 위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이 '기후 약속'은 이들의 요청에 대한 유엔의 답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1.5℃ 마지노선 임박…기후변화와 지구행복지수
이 약속이 결실을 맺기 위해선 결국 탈탄소의 가속화와 확산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이미 현실이 된 기후변화는 우리의 생활 곳곳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탄소가 우리 삶의 행복에 직결되는 것이죠. 지난 5월 2일, 독일의 공익 싱크탱크인 핫 오어 쿨 인스티튜트(Hot or Cool Institute)는 이를 숫자로 나타낸 지구행복지수(Happy Planet Index)를 공개했습니다.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과 기대수명과 더불어 1인당 탄소 배출량을 반영해 지수화한 것입니다. 이러한 행복 지수를 y축으로, 1인당 연간 탄소 발자국을 x축으로 놓고 세계 각국을 표시한 결과가 바로 위의 표입니다.

대체로 탄소 발자국이 클수록 행복 지수 또한 높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는 오랜 기간 이어진 화석연료기반체제 하에서 에너지가 곧 복지와 경제력, 국력 등을 의미해왔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단순 에너지원을 넘어 플라스틱과 기타 석유화학제품, 아스팔트와 식품 첨가제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용처를 통해 화석연료의 사용량은 곧 문명화의 척도가 됐기 때문입니다. 에너지의 사용량이 문명화의 척도인 것은 탈탄소 시대에서도 여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화석연료가 품은 탄화수소로 우리는 일을 할 수 있었음과 동시에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지구를 위험에 빠뜨렸기에 '탄소 발자국'은 우리의 행복 지표에서 빠져서는 안 될 요소가 됐죠.

위의 표로 국가별 상황을 알아보기 힘들다면, 다음의 표를 통해 쉽게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1.5℃ 마지노선 임박…기후변화와 지구행복지수
개인의 기대 수명과 주관적 행복도(Self-reported wellbeing)를 곱한 값을 국가의 1인당 평균 탄소 발자국(배출량)으로 나누는 이 식에서 높은 지수를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분자(기대 수명 또는 행복도)를 키우거나, 분모(배출량)를 줄이거나.

위의 표에서 상위 30위권 이내의 국가에서도 서로 다른 경우가 존재합니다. 전체 조사 대상 147개국 가운데 1위에 오른 바누아투의 경우, 70.4세라는 그리 높지 않은 기대 수명에도 불구하고 7.1이라는 높은 행복 지수(10점 만점)와 1인당 2.62tCO2eq.(이산화탄소 상당톤, 이하 t로 표기) 밖에 되지 않는 적은 배출량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반면, 2위 스웨덴의 경우 83세라는 높은 기대수명과 7.4라는 높은 행복 지수에도 불구하고 1인당 8.7t에 달하는 탄소 발자국으로 바누아투보다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합점수 38점인 우리나라보다 0.3점 높은 점수로 세계 75위를 기록한 에스토니아의 경우, 우리보다 6.6세 적은 기대 수명에도 불구하고 0.5점 높은 행복 지수와 1.8t 적은 1인당 탄소 발자국 덕분에 상대적 우위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대 수명 83.7세에 행복도 6.1점으로 스페인(기대수명 83세, 행복도 6.5점)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으나 1인당 14.39t에 달하는 높은 탄소 배출량(스페인 1인당 7.12t)으로 한국은 세계 76위, 스페인은 7위라는 극과 극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구진은 한국 상황에 대해 “2006~2021년 사이 한국의 1인당 평균 탄소 배출량은 13.04~15.32t을 오갔다”며 “우리가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하다는 기준점으로 삼은 1인당 공정 상한선(3.17t)보다 훨씬 많다”고 평가했습니다.

결국,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조금이나마 억제하려면, 경제적 손실을 그나마 줄여보려면, 행복지수 1위가 아니라 하위권이라도 면해보려면, 그런 와중에 탄화수소와의 결별로 귀결되는 에너지전환에서 패권이나 주도권은 쥐기 어렵더라도 최소한 탄화수소 시대 때처럼 끌려다니는 입장이라도 면하려면, 최소한 석탄과의 이별만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 셈입니다. 파리협정 이듬해인 2016년, G7 국가가 석탄발전의 단계적 중단을 이야기하고, 2024년엔 완전한 폐지를 합의한 이유일 것입니다. G7 국가가 합의한 탈석탄 데드라인은 2035년. 지난주 연재의 제목 〈[박상욱의 기후 1.5] 탈석탄 골든타임은? 남은 시간은 10년뿐〉과 마찬가지의 시점입니다. 지금도 새 석탄화력발전의 가동을 앞둔 우리의 입장에선 언감생심인 시점일 뿐이지만요.

우리에게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는, 만년 기후변화 대응지수 최하위권이라는 오명에 이제는 낮은 지구행복지수의 성적표까지 더해질 일만 남은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는 '서구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규탄한다!'며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전지구적 포지션이 어디에 해당하는 지에 대해선 다음 주 연재를 통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1.5℃ 마지노선 임박…기후변화와 지구행복지수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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