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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항쟁의 현장…'그 날의 흔적' 여전한 광주 금남로

입력 2019-05-18 21:11 수정 2019-05-1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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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80년 5월 민주화운동의 흔적은 광주 금남로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지금 현장에 유선의 기자가 나가 있습니다. 유 기자, 지금 서 있는 곳이 옛 전남도청 건물인 것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80년 5월 27일 당시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당시 시민들은 약 200여 명이 이 안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군 문건으로 확인된 바로는 당시 5월 27일 새벽에만 최소 17명의 시민이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이곳에서 숨졌습니다.

오늘(18일) 5·18 39주기를 맞아서 이 내부가 오늘 특별하게 개방이 돼 있는데 그 내부의 모습을 잠깐 보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시민들도 오늘은 자유롭게 이곳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 곳이 있지만 오늘 저희가 보여드릴 곳은 5·18 그 당시에 시민들이 상황실로 이용했던 곳입니다.

원래 전남도청에서는 서무과로 이용됐던 곳인데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서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가를 작전을 짜고 상의를 했던 곳입니다.

이 내부에 보면 아직 불이 켜져 있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방송시설이 있어서 옥상에 있는 스피커를 이용해서 우리의 상황을 알리는 곳이었던 곳으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복도를 따라서 나가 보면 지난 이틀 전에 저희가 보도로 전해 드렸던 곳입니다.

전남도청의 민원실 건물이 보입니다.

[앵커]

전남도청 민원실이라고 하면 계엄군이 시민들을 상대로 신무기 성능을 시험한 정황이 드러났던 바로 그곳 아닙니까?

[기자]

맞습니다. 민원실 지하에 계엄군이 스턴 수류탄, 당시로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스턴 수류탄을 사용한 사실이 군 문건으로 확인됐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직접 보도를 하기 전에 군 문건을 확인해 봤는데 당시에 계엄군은 수류탄 사용을 전면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군이 아닌 경찰이 작성한 군 문건으로 사용 정황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특히 계엄군이 책임장교의 검찰 진술 조서, 1995년에 작성된 진술 조서를 보면 "처음에 사용하는 무기니까 일단 사용을 하고 그 결과를 보고해 달라", 이런 군 문건 내용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 시민들을 상대로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무기를 사용한 정황이 군 문건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저희가 당시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이 있던 옛 전남도청의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더 보여드릴 곳이 많습니다.

사실 이 전남도청 본관 안층 2층, 3층 그리고 또 옥상에도 당시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내부 공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 모습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바깥 쪽을 좀 보면 오늘 '5월에서 통일로 평화실현을 하겠다' 이렇게 적힌 곳이 바로 전일빌딩입니다.

[앵커]

전일빌딩이라고 하면 계엄군의 헬기사격 탄흔이 나온 곳 아닙니까? 옛 전남도청만큼이나 중요한 곳인데 지금 공사 중이라고 하죠?

[기자]

그렇습니다. 건물이 너무 오래돼서 전반적인 공사를 하고 있지만 이제 헬기사격의 증거로 채택이 되고 있는 탄흔 190여 개가 나온 10층은 보존이 그대로 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저 건물 10층에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봤는데 위에서 아래로, 그러니까 대각선으로 내리꽂힌 탄흔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0층 천장에 수평으로 스친 탄흔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탄흔들을 근거로 해서 국과수가 이것은 헬기 사격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탄흔이다 이렇게 결론낸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곳의 탄흔은 광주시의 협조만 구하면 지금도 들어가서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지금 유 기자가 마지막으로 서있는 곳, 지금 저곳이 역사적인 현장 중의 한 곳이라고 할 수 있는 분수대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80년 5월에도 이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그대로 이 자리에 있는 분수대입니다.

5월 21일에 처음으로 집단 조준사격이 있었는데 그때 시민들을 상대로 발포가 이루어졌던 장소도 바로 이곳입니다.

저희가 지난 4월에 새로운 사실 한 가지를 전해드렸었는데, 당시에 계엄군 11공수의 한 대대장이 이 분수대를 돌아 나가는 시민의 버스에 '저건 죽여도 좋다'라고 지시를 하고 또 실제 사격을 해서 사실상 직결심판 정황이 군 문건으로 드러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정황들이 3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드러나고 있는데, 하지만 진상규명위원회 출범은 벌써 8개월째 미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언제 출범할지도 기약이 없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오늘 이 광장 한켠에 이렇게 시민들이 이런 구조물을 세울 수밖에 없었고, 또 이곳 앞에서 그날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앵커]

기억하시는 시청자 분들도 계시겠지만 유선의 기자는 다른 어떤 기자들보다도 5·18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가장 많은 취재를 했던 기자 중 한 명입니다.

오늘도 수고 많았습니다. 광주 금남로에서 유선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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