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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5·18 질문에 "뉴욕서 무기 들고 난동 벌여도 민주인사냐"

입력 2024-03-29 10:59 수정 2024-03-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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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씨가 2019년 3월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기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두환 씨가 2019년 3월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기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두환 씨가 대통령 퇴임 뒤 1988년 미국을 방문해 가진 연설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무장 세력의 난동인 것처럼 왜곡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29일) 외교부가 공개한 비밀해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전씨는 1988년 3월 22일부터 4월 10일까지 약 3주간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4월 7일 뉴욕에서 열린 미국외교협회 행사에서 "광주사태에 대해 노태우 대통령처럼 사과할 생각이 있는지", "언론을 탄압하고 경찰국가를 운영한 이유가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전씨는 "광주사태는 근세사를 통틀어 보더라도 대단히 유감스러운 사건"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많은 외국 언론이 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광주사태를 일으킨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오해"라며 "나로서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 그 사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해왔다"고 했습니다.

이어 "(우리나라를) 경찰국가라고 했지만 만일 뉴욕에서 무기와 수류탄을 가진 사람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난동을 벌일 때 미국 경찰은 그런 사람을 민주인사로 볼 것인가, 또는 질서를 파괴한 범법자로 볼 것인가 묻고 싶다"고 했습니다.
 
1988년 전두환 방미 외교협회 강연 발언 자료. 〈사진=외교부·연합뉴스〉

1988년 전두환 방미 외교협회 강연 발언 자료. 〈사진=외교부·연합뉴스〉

또 전씨는 "미국의 시각에서는 우리나라를 경찰국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는 "각 나라의 민주정치 발전은 그 나라의 역사적 배경, 문화적 전통, 정치, 안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나는 재임기간 중 우리의 특수한 안보 상황과 사회적인 상황 하에서도 모든 면에서 자율과 개방 및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의 확대를 꾸준히 추진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국가라는 시각에 대해 나는 견해를 달리한다"고 말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의 권력 찬탈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한 사건입니다.

5·18 기념재단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 사이 광주에선 최소 150명 이상의 민간인이 계엄군의 총·칼에 숨졌고 80명 이상이 실종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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