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 JTBC 정관용 라이브 (11:40-12:55)
■진행 : 정관용 교수
■출연진 : 이지은 기자
◇정관용-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방 안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현장에서는 70만 원이 든 봉투와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가 발견됐다는데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이지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이지은-방 두 칸, 화장실 하나가 딸린 비좁은 지하 1층. 창문은 청테이프로 막혀 있습니다. 바닥에 놓인 그릇에는 번개탄을 피운 재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지난 26일 밤 9시 반쯤 서울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에서 박 모 씨와 30대 두 딸이 숨져 있는 것을 집주인 임 모 씨가 발견했습니다.
[이웃주민 : 문을 두들겼는데 문을 안 열어줬대요. TV가 켜져있어 (불빛이) 반짝거리는데 문을 안 열어줘 경찰에 신고했대요.]
시신 옆에는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와 집 주인 앞으로 "밀린 공과금입니다. 죄송했습니다"라고 쓴 글이 있었습니다.
[임 모 씨/집주인 : 10원 하나 안밀렸어요. 전기세와 수도세, 가스비와 방세 50만 원까지 총 70만 원인데 이번 달 것을 미리 낸 것이지.]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생활고로 추정됩니다. 10여 년 전 방광암으로 숨진 아버지 김 모 씨가 거액의 빚을 남겼고, 죽기 전 딸들의 이름으로 만든 신용카드 탓에 두 딸은 신용불량자가 됐고 지병으로 몸까지 불편해진 겁니다. 두 딸을 보살펴 온 박 씨는 식당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오다 한 달 전 몸을 다친 뒤 이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정관용-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방 안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현장에서는 70만 원이 든 봉투와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가 발견됐다는데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이지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인데요. 이 사건 취재한 이지은 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현장에 다녀왔죠?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이지은-일단 제가 어제 간 곳은 서울 석촌동에 있는 한 단독주택이었습니다. 지하 1층에 있는 곳인데요. 반지하인 이 집은 33제곱미터, 그러니까 한 10평 남짓한 곳이었습니다. 앞서 보신 대로 창문과 문틈 사이에는 테이프로 막은 흔적이 있었고요. 침대 옆에는 번개탄을 피운 재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는 종이박스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세 모녀가 키웠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죽은 채 있었습니다. 집에서 발견된 영수증도 좀 있었는데요. 거기에는 600원짜리 번개탄 2개와 1500짜리 숯, 20원짜리 편지봉투를 산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방 한쪽 벽에 걸린 액자 속에는 두 딸이 초등학생 정도 됐을 때 찍은 사진으로 보이는 액자가 있었는데 굉장히 화목한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진과는 달리 세 모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이 된 겁니다.
◇정관용-무엇보다 70만 원 든 돈 봉투가 더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이지은-네, 그렇습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 하얀 봉투에는 5만 원짜리 14장, 그러니까 70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봉투 겉면에는 주인아주머니께 보내는 글이었는데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70만 원은 뭐냐 하면 보증금 500만 원의 방에 월세가 50만 원입니다. 거기에 전기세, 가스비 등이 더해진 것인데요. 원래는 이달 말 그러니까 오늘이죠. 오늘 70만 원을 집주인에게 주는 날이었는데 미리 남기고 생을 마감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좀 아픈 부분인데요. 한 번도 집주인은 박 씨가 한 번도 월세를 미루거나 그런 적이 없고 꼬박꼬박 지불을 잘 했다고 합니다. 그럴 정도로 굉장히 성실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관용-마지막 가는 길에도 누구한테도 피해를 주지 않겠다, 그런 모습인데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기에 이런 선택까지 했을까요?
◆이지은-박 씨의 남편이자 두 딸의 아버지인 김 모 씨는 10여 년 전에 방광암으로 숨졌습니다. 당시에 경찰 조사에 따르면 당시 굉장히 큰 빚을 지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암 투병 중이라서 병원치료비 때문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김 씨는 죽기 전에 두 딸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발급을 받아서 사용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두 딸들이 지금까지 신용불량자가 됐었던 겁니다.
◆정관용-아버지 의료비 때문에 딸이 신용불량.
◇이지은-여러 가지 채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연히 신용불량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박 씨의 큰 딸은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병원비도 제대로 없다 보니까 제대로 치료도 못 받았고 또 병이 좀 악화가 돼서 바깥외출은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작은딸은 만화가를 꿈꾸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했는데 형편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까 일에 대한 의욕이 없어지고 또 그러다 보니까 계속 집에만 머물렀다 합니다.
◆정관용-어머니 박 씨가 계속 생계를 책임졌던 겁니까?
◇이지은-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는데 박 씨는 식당에 나가면서 생계를 근근이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 씨가 지난달에 팔을 다쳐서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하는데요. 박 씨의 집에 가보니 석고붕대 팔걸이가 걸려 있었습니다. 아마 팔에 깁스를 하고 나서 식당일을 못하지 않았나? 이렇게 보입니다. 결국, 생활고에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이런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 건데요.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마지막 가는 길에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떠날 만큼 평소 박 씨는 이웃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차상위 계층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구청에 수급신청을 한 기록도 없다고 구청 직원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제 이 세 모녀의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도 찾아가 봤는데요. 박 씨의 외가 측은 별도로 분향소를 마련하지 않고 오늘 바로 발인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정관용-참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하네요. 의료비 문제, 우리 사회 안전망 문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어쨌든 구청이라도 동사무소라도 찾아가 보셨으면 하는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군요. 이지은 기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