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항공기 회항 사태는 기본적으로 그릇된 갑을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항공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객들의 횡포와 감정노동자인 승무원의 고충을 이호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기내 소동을 그린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승객이 나옵니다.
[제가 지금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요. 출발하기 전에 미리 좀 식사를 할 수 없을까요?]
[아 어쩌죠. 아직 저녁식사가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간식으로 땅콩은 준비돼 있습니다.]
[보통 다른 항공사에서는 미리 준비가 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어떻게 준비된 거 아무거라도 좀 맛볼 수 없을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현실은 영화보다 심각했습니다.
취재진은 어렵게 국내 항공사 전현직 승무원 6명을 만났습니다.
힘들게 말문을 연 승무원은 모 대학 의대 교수에 대해 털어 놓았습니다.
승무원은 기내에 탄 교수에게 "선생님, 무엇이 필요하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무안할 만큼 큰 소리로 화를 냈다고 합니다.
교수인데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승무원 : 내가 교수인데 이런 것도 신경 안 쓰고, 선생님이라고 했다고. 사무장 오라고 해.]
잠시 뒤 기내에서 환자가 발생해 한 승객을 비즈니스석으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이 교수는 승무원들이 이코노미석 승객을 비즈니스석에 옮겼다며 비행기에서 내려 민원까지 넣었습니다.
[승무원 : 내가 넘어질 수 있는 상황을 다 걸고 넘어지는 거예요. 네다섯 가지를. 나는 이 사람이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걸까.]
대기업 임원들의 행동은 어떨까.
모 기업 임원은 라면을 끓여오라고 요구하면서, 서류를 둘둘 말아 들이대고 "이거 안 보이냐"고 겁을 줬다고 합니다.
지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라면 상무' 사태 이후 조심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일을 꺼내 횡포를 부리는 겁니다.
[승무원 : 라면을 끓여다 드리면 맛있다, 잘 먹었다가 아니라 이렇게 맛있게 끓였으면 안 맞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한 기업 임원은 탑승할 때 항공권을 보여달라하자, "어디다 대고 해라 마라냐"며 얼굴에 침까지 뱉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항공사 측은 억울하면 개인적으로 고소하라고만 했습니다.
[승무원 : 그거를 좀 더 정중하게, 좀 더 잘했으면 그 손님이 그렇게 화를 냈겠냐, 이런 식의 대답을 듣는 거예요.]
국회의원들에 대한 지적도 많았습니다.
승무원들은 선거 전에는 더할 나위 없이 매너가 좋던 국회의원들이 선거 후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비즈니스석이라도 이른바 '상석'에 자기 당 의원이 앉지 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는 겁니다.
[승무원 (음성대역) : 평소에는 굉장히 막 불친절하죠. 그들도. 선거 기간에는 굉장히 착해지세요. 선거 기간에 국회의원 태우면 굉장히 편한데.]
항공사들은 말썽이 잦은 상위 고객들에 대한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면 돌아오는 건 승무원들에 대한 타박과 조사 뿐입니다.
[승무원 : 블랙리스트라 함은 정말 (민원이) 심해서, 굉장히 (지위가) 높으신 분들, 그런 분들 주의 차원에서 주는 거지.]
[승무원 : 했어. 안 했어. 여기가 무슨 대공분실인지 뭔지. 무슨 형사, 잡혀간 거 같아.]
이런 얘기를 해봐야 뭐가 개선되겠냐는 승무원들의 자포자기는 이들의 횡포와 항공사들의 책임 떠넘기기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또 한번 되돌아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