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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열망 짓밟고 집권…내란·반란죄 무기징역까지

입력 2021-11-23 19:55 수정 2021-11-2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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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곳 광주엔 오전부터 계속 비가 내리다 그쳤다를 반복했습니다. 기온도 많이 내려갔습니다. 전두환 씨 사망 소식 이후에 광주 시민에겐 '차분함'과 동시에 '분노'도 느껴졌습니다. 전두환 씨는 1980년 5월 이곳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피로 진압해 권력을 차지했습니다. 퇴임 이후에 내란, 군사반란죄 등으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죠. 그러나 전 씨는 당시 선고받은 추징금 중 상당액을 내지 않았습니다. 사과나 반성도 없이 생을 마감했습니다.

최규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전두환 씨는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스무살에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졸업 후 사조직 '하나회'를 만들어 입지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1979년 12월 12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두 번째 군사 정권, '신군부' 시대가 열렸습니다.

[전두환 씨 (1980년 9월 1일 / 제11대 대통령 취임식) : 선서. 나는 국권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전 씨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해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군부 독재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결국 전씨는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습니다.

문민정부 들어 사법적 단죄가 시작되자 골목 성명을 발표하고 백담사에 머물렀습니다.

[전두환 씨 (1995년 12월 2일) : (만일 제가) 국가의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이러한 내란 세력과 야합해온 김(영삼) 대통령 자신도 (범죄자입니다.)]

1996년 후임자와 함께 내란 및 군사반란 혐의로 법정에 섰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 (1996년 8월 26일 / 1심 선고 공판) : 피고인 전두환, 피고인 노태우.]

대법원의 결정은 무기징역에 추징금 2205억원.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국민대통합을 이유로 그를 사면했습니다.

전 씨는 추징금 일부만 자진 납부하고 나머지는 납부를 거부했습니다.

[전두환 씨 (2008년 4월 9일 / YTN 인터뷰) : 카메라들 보면 내 사진은 꼭 삐뚤어지게, 인상 나쁘게 (찍어.)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대해서는 아직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아놓고…]

전 씨는 끝까지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전두환 씨 (2012년 3월 14일 / JTBC '육성 회고') : 내가 그 대통령을 7년 했습니다. 내가 이제 7년을 딱 하고 시범을 보이고 모범적으로 한번 하고, 그다음에 후임 대통령들은 5년씩만 해라 이랬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그분들에게도 7년을 하도록 해줬어야 하는데, 5년으로 한 것이 내가 지금 와서는 상당히 후회가 됩니다.]

(화면출처 : KBS·K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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