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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성수대교' 그리고 '통증'…멈춰버린 안전 시계

입력 2014-10-21 21:31 수정 2014-10-2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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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1일) 앵커브리핑은 서울 성수대교에서 시작합니다.

오늘 뉴스룸이 주목한 단어는 '통증'입니다.

'몸이 아프다'고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기도 하지요.

매년 10월이 되면 잊었던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내가 억지로 머릿속에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는 것도 아니고 안 지워집니다. 그대로 생생하게 나죠. 그 순간 비명소리부터 해서 여기서 살려달라 저기서 살려달라…구조대가 빨리 와서 한 명이라도 더 살렸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1994년 10월 21일. 저는 아침 뉴스의 앵커였습니다.

처음에 급보가 전해졌을 때만 해도, 그저 성수대교의 난간 정도가 무너졌으리라 여겼을 정도로 대형 다리의 붕괴는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들어온 상황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등교하던 8명의 여학생들을 포함해 32명이 황망하게 목숨을 잃었고 거짓말처럼 잘려나간 상판과 물에 젖은 책가방의 모습들.

종일 속보를 전하던 저의 기억에도 성수대교는 20년째 여전히 '선명한 통증'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재였습니다.

사고 전 일부 시민이 다리에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신고했지만, 관계자가 이를 묵살했던 사실이 알려졌고 구조단 역시 한두 시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보다 2년 전엔 신행주대교가 공사 중에 통째로 내려앉았는데도 오래된 다리에 대한 경각심은 없었습니다.

사실 94년의 이 성수대교의 붕괴는 우리 한국 사회에 각별한 의미를 남겼습니다.

88올림픽을 치렀고, 오랜 군부정치를 청산한 뒤에 문민정부가 출범한 뒤였죠.

그런 상황에서 서울 한복판의 한강다리가 끊어진 것은 우리의 자존감 붕괴와 같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수대교의 붕괴는 그 이후에 이어진 대형 참사의 서막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건물이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진 삼풍백화점 사고와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고, 20년이 지난 올해만 해도 대학생들이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체육관이 무너졌고 그 배, 세월호가 가라앉았습니다. 또 지난 주말엔 공연을 보던 사람들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하늘과 땅, 강과 바다에서 대형사고와 무고한 죽음이 마치 데자뷰 현상처럼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요.

큰 재해가 오기 전에는 작은 재해가 29건. 사소한 재해가 300건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 '하인리히 법칙'. 즉 '어느 날 갑자기' 식의 우연한 재난은 결코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는 '밤'이 있다. 이 밤의 역사는 불행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밤의 한복판에 서 있는 당신은 잠들지 말아야 한다."

신영복 교수의 말입니다.

1994년의 오늘, 20년 전 그날 아침 7시 40분.

안전에 관한 한 우리의 시계는 바로 거기서 멈춰서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우리는 밤의 한복판에서 잠들어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20년 전의 성수대교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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