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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아픔 잊지않을게' 목포신항 노란물결에 새긴 다짐

입력 2017-04-0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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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아픔 잊지않을게' 목포신항 노란물결에 새긴 다짐


'그날의 아픔 잊지않을게' 목포신항 노란물결에 새긴 다짐


'잊지 않겠습니다, 4.16 그날의 아픔을'

세월호가 목포신항으로 들어온 뒤 첫 주말인 1일 오후. 국가보안시설인 목포신항 주변 철제 울타리에는 개나리가 아닌 노란 리본이 피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노란 리본 사이사이로 세월호를 보기 위한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와 백발의 노인까지, 울타리 넘어로 '그날'의 상처를 드러내고 있는 세월호를 눈과 가슴 속에 담았다.

노란 리본에는 '진실이 밝혀지고 끝까지 책임을 물을 때까지 함께하겠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과 '진실을 인양하라'는 바람의 글이 새겨졌다.

'통곡의 항구' 진도 팽목항의 눈물은 목포신항까지 마르지 않았다.

딸과 함께 함평에서 온 정해순(60·여)씨는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정씨는 "가슴이 뛰어 못 보겠다. 자식을 둔 어느 부모가 눈물을 참을 수 있겠나"라며 "한 두명도 아니고 수백 명이…"라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본 정씨는 "다들 예쁘고 잘 생겼다"며 "그런 자식, 남편을 저 배 안에서 잃고 만나지 못한 가족들 심정이 오죽 할까 싶다"고 말했다.

자식을 둔 부모들의 심정은 같았을까. 목포신항에는 어느새 한숨과 분노, 눈물로 가득 찼다.

전남 신안군 압해면에서 온 이구심(71·여)씨는 "TV로만 보던 세월호를 직접 보기 위해 왔다"며 "마음이 너무 아프다. 자식 잃은 부모들의 심정은 더 할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고사리 같은 딸의 손을 잡고 울타리 주변을 걷던 김상진(39)씨는 "저 큰 배가 가라앉을 동안 선원들과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데 화가 치민다"며 "진실이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진실을 알고 있다면 '내 자식이 그 배에 있었더라면' 하는 심정으로 양심 고백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른여덟 살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철제 울타리를 붙잡고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며 애원하는 유가족들을 보면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아 아이가 없다. 사실 TV로만 볼 때는 안타깝다는 생각만 들었다"며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의 일이 아닐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부모였다면, 내 형제였다면 나는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정부가 이들의 아픔을 덜어줘야 한다. 미수습자 9명이 부디 가족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3시부터 현장수습본부 출입문 앞에서는 416가족협의회, 4.16연대, 박근혜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 세월호상주모임, 박근혜정권퇴진 전남본부 세월호 특위 등이 주최한 '미수습자 온전한 수습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문화제가 진행됐다.

100여명의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은 '미수습자 온전한 수습', '철저한 선체조사', '선체훼손 중지', '선체조사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 참여' 등을 외쳤다.

박래군 4.16연대 공동대표는 "시민들이 세월호를 멀리서 볼 수밖에 없다"며 "감추는 자가 범인다. 무엇을 더 감추려는 건지 모르겠다. 시민들에게 세월호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박 대표는 이어 "세월호 수습과 조사에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을 참여시키고 선체를 온전히 보존하라"며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자"고 덧붙였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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