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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전 오늘, 알리가 무너졌다…다시 본 '세기의 대결'

입력 2015-03-09 22:27 수정 2015-03-0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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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4년 전 오늘, 31연승의 무하마드 알리가 처음 무너졌습니다. 알리의 상대는 조 프레이저, 복싱 역사상 처음으로 '세기의 대결'이란 말이 사용된 이 경기는 알리가 져서 더 유명해진 명승부인데요.

오광춘 기자입니다.

[기자]

알리가 왼손 훅을 맞고도 고개를 흔듭니다.

펀치가 약하다고 빈정댄 겁니다.

프레이저는 알리 흉내를 내며 놀립니다.

[중계 캐스터 : 프레이저가 알리를 비웃습니다. (가드를 내리고 펀치를 피하는) 저런 플레이 방식은 알리가 상대와 싸우는 스타일인데요.]

알리는 프레이저 머리를 만지며 또 조롱합니다.

그렇던 승부는 11라운드에서 달라집니다.

장난은 없습니다.

불길한 전조였던 알리의 슬립다운.

알리는 왼손 훅을 맞고 다리가 꼬입니다.

위기인데도 태연한 척, 로프를 등진 채 공격하라고 손짓하는 알리.

프레이저의 분노가 주먹에 실립니다.

[중계 캐스터 : 무하마드 알리, 정말 위기입니다.]

다운 직전까지 몰린 알리는 노련하게 꽁무니를 빼 11라운드는 넘겼습니다.

마지막 15라운드. 알리는 숱하게 허용했던 프레이저의 왼손 훅에 결국 걸려듭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섰지만 우리가 알던 무적의 알리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홍수환/전 WBA 밴텀급·주니어페더급 챔피언 : 솔직히 위험한 복싱을 한 알리입니다. 턱은 들고, 아무 가드도 없이 쭉쭉 뻗기만 하고 때리면 이렇게 피하고, 조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거든요.]

프로 데뷔 후 31연승을 달린 알리.

1967년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해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 박탈. 소송까지 거쳐 3년 5개월 만에 다시 링에 올랐지만, 프로 데뷔 후 첫 패배를 당했습니다.

헤비급의 절대강자는 이렇게 사라졌습니다.

알리를 이긴 프레이저, 2년 뒤 프레이저를 무너뜨린 조지 포먼, 다시 1년 뒤 알리는 그런 포먼을 꺾었습니다.

알리, 프레이저, 포먼, 다시 알리로 이어진 헤비급 챔피언의 순환.

[이대택 교수/국민대·스포츠문화연구소장 : 이전까지 알리의 스토리는 크지 않았어요. 결국 프레이저와 포먼에 의해 다시 명성을 찾을 수 있는 계기와 발판이 됐죠. 주연이 있으면 조연이 있어야죠.]

1975년 알리와 프레이저는 다시 만납니다.

1년 전 두 번째 대결에서 알리가 이겨 두 사람의 상대전적은 1승1패, 진정한 승자를 가리기 위한 끝판대결이 펼쳐졌습니다.

1라운드부터 쉬어가는 게 없었습니다.

맞아도 맞아도 전진하는 프레이저.

성난 황소한테 칼을 꽂는 투우사처럼 매서운 펀치를 날리는 알리.

14라운드까지 맞고 때리면서 둘은 지쳤습니다.

승자와 패자를 가리기 힘든 승부는 마지막 15라운드 시작을 앞두고 멈춰섰습니다.

백내장을 앓아 왼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프레이저는 오른쪽 눈마저 부어올라 경기를 더 할 수 없었습니다.

기권 소식을 듣자 KO승리 때보다 더 기뻐한 알리. 알리는 링 위에 드러눕습니다.

[무하마드 알리/헤비급 챔피언(1975년) : 프레이저는 위대합니다. 예상보다 그는 강했습니다. 오늘 밤 프레이저를 이길 선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쓰러질지언정 지지 않는다."

[이대택 교수/국민대·스포츠문화연구소장 : 절대 후회하는 게임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정말 한판 붙어본 거죠. 최근에 들어 많은 스포츠에서 그런 (열정적인) 모습이 보이는가라는 질문을 해요.]

두 인간이 마주한 채 상대를 때려눕혀야 살아남는 사각의 링.

야만성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복싱, 알리와 프레이저의 승부를 세기의 대결이라 부르는 건 그 야만성을 넘어선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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