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핵주먹, 핵이빨. 복서 마이크 타이슨에겐 공포스러운 수식어 '핵'이 붙습니다. 37전무패의 타이슨은 25년 전인 1990년 오늘, 처음 무너지는데요. 그 후로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오광춘 기자가 타이슨의 복싱 인생을 돌아봤습니다.
[기자]
8회 타이슨의 오른손 어퍼컷이 터졌습니다.
심판의 카운트는 유난히 느려 보였고, 힘겹게 일어선 더글라스는 때맞춰 울린 공 덕분에 살아났습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친 타이슨. 위기를 넘긴 더글라스가 9회 거세졌습니다. 도쿄돔은 술렁였고 타이슨은 불안했습니다.
[중계 캐스터 : 이렇게 승부가 끝날까요. 공이 울리면서 8회가 끝이 납니다.]
맷집의 상징이던 두꺼운 목도 소용없었습니다.
10회, 어퍼컷에 이은 더글러스의 원투 펀치. 쓰러진 타이슨은 마우스피스를 주워 일어서려 했습니다.
서둘러 카운트를 마무리한 심판이 야속할 뿐입니다.
[중계 캐스터 : 믿을 수 없습니다. 복싱 역사상 최고의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타이슨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1986년 20살의 나이에 오른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 37전 무패. 타이슨의 주먹에 쓰러졌던 그 많은 복서들. 챔피언은 영원할 거라 생각했지만 4년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헤비급 선수로는 너무 작은 178cm의 키와 짧은 팔. 그런데 주먹은 공포의 핵주먹이었습니다.
[홍수환/전 WBA 밴텀급 챔피언 : 타이슨의 주먹이 얼마나 세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8톤 트럭에 치인 기분 같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날아오는 잽을 머리를 흔들어 피하며 거침없이 파고들었고 헤비급 선수에게선 볼 수 없던 스피드로 거구들을 눕혔습니다.
하지만 너무 빠른 성공. 몰락도 그만큼이나 빨랐습니다.
링 밖에선 성폭행범의 낙인이 찍혔고, 링 위에선 상대선수 귀를 물어뜯어 지탄을 받았습니다.
[중계 캐스터 : 타이슨이 홀리필드 귀를 물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때론 야수처럼, 때론 탕아처럼. 타이슨은 20세기의 검투사였습니다.
[김홍식 교수/한국체대·체육철학 전공 : 짜릿한 경험과 쾌감을 제공하는 하나의 기계였잖아요.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고 충족시킴으로써 존재 이유를 찾는 것, (타이슨이 그랬죠.)]
1980년대와 1990년대, 돈과 스포츠가 결합한 쇼비즈니스의 정점에. 타이슨이 있습니다.
[홍수환/전 WBA 밴텀급 챔피언 : 타이슨이 좀 불쌍하죠. 사생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 게 팬들입니다. 타이슨을 욕하지 마세요. 헤비급 챔피언 중에선 가장 인기가 높았습니다.]
'주먹 하나면 잭팟을 터뜨릴 수 있다'는, 프로모터 돈 킹이 만들어낸 왜곡된 신화. 그리고 그 판타지에 갇혀 살았던 불완전한 존재.
타이슨은 2005년 6월, 맥브라이드와 마지막 경기를 치릅니다.
상대 팔까지 꺾는 반칙을 하고 결국 TKO패.
[김홍식 교수/한국체대·체육철학 전공 : 정점으로 오는 과정에선 자본의 뒷받침으로 버텨왔지만 그것이 의미를 상실한 이후엔 스스로의 삶을 이끌어야 하는데 그런 준비가 안 돼 있었죠.]
비뚤어진 욕망에 사로잡혔던 타이슨, 그의 성공과 몰락은 욕망의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매서운 교훈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