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전후 일본에서 일왕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던 프로레슬러 역도산은 이름이 두개였습니다. 모모타 미쓰히로라는 일본 이름 외에도 김신락이라는 한국 이름도 있었죠. 51년 전 오늘, 세상을 떠난 그는 남한과 북한, 일본까지 삼국의 사이에 끼여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송지영 기자가 역도산의 인생을 돌아봤습니다.
[기자]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식량난과 절망에 빠져있던 일본.
[고두현/'불꽃 같은 삶 역도산' 저자 : 일본은 패전국민으로서 아주 심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나이가 사각의 링에 나타나 서양의 거한들을 거침없이 때려눕힙니다.
[고두현/'불꽃 같은 삶 역도산' 저자 : 리키(리키도잔, 역도산의 일본식 발음) 가라데촙! 하고 체육관이 뒤집혔을 때 휘두르듯이 가라데촙을 날려서 역전시켜서 이기니까…]
넘어설 수 없는 벽, 미국에 대한 일본인의 콤플렉스를 날려버린 전설의 파이터, 역도산입니다.
[고두현/'불꽃 같은 삶 역도산' 저자 : 백인 쓰러뜨리는 걸 보기 위해서, 만세 부르고 난리가 난 거죠.]
일본 열도는 역도산 경기를 TV로 지켜보면서, 자존심을 세우고 용기를 내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김남훈/'역도산이 왔다' 저자·프로레슬러 : 시청률 98% 정도, 역대 일본 TV프로그램 시청률 톱5를 보면 역도산 경기가 3개 정도 있어요.]
일왕 다음 역도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역도산/일본 방송 인터뷰 : 프로레슬러는 몸이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괜찮지만, (어린이들이) 절대로 이걸 흉내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그의 핏줄엔 일본인들이 멸시해왔던 조선인의 피가 흘렀습니다.
[고두현/'불꽃 같은 삶 역도산' 저자 : 우리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데 말은 하나도 안 하고… '바보야, 도라지야.' 그게 김일이 역도산에게 들은 유일한 우리말이에요.]
역도산은 원래 함경도 출신의 씨름선수 김신락입니다.
[김영숙/역도산의 북한 딸 : 아버지가 힘이 세고 씨름 잘하니까, 일본이 '데려가야 되겠다'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일본에 살면서 한국을 오간 역도산,
[김남훈/'역도산이 왔다' 저자·프로레슬러 : 역도산은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항상 자신의 인생이 사지선다로 있었던 거예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찢긴 운명의 주인공이면서도 남북한과 일본 모두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았습니다.
[조선중앙TV : 조선사람 역도산은 체육인의 명예를 온 세상에 떨치며…]
역도산은 스스로를 단순한 프로레슬러로 묶어두지 않았습니다.
반칙을 일삼는 외국선수에 당하다가 끝내 이기고마는 역도산이라는 프로레슬링의 흥행패턴을 만들어냈고,
[고두현/'불꽃같은 삶 역도산' 저자 : 하나의 드라마를 가지고 만든 천재죠.]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으로 사업가로서도 성공을 거뒀습니다.
[김남훈/'역도산이 왔다' 저자·프로레슬러 : 대중문화콘텐츠로 프로레슬링의 장르를 완벽하게 정립시켰고요.]
남북한과 일본을 오가며 삼국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을 즈음, 39살 젊은 나이에 폭력배의 칼에 찔려 1963년 오늘, 허망하게 인생을 마쳤습니다.
51년이 흘렀지만 영웅이 잠든 그 곳엔 추모행렬이 이어집니다.
[역도산은 프로레슬링의 기둥이나 마찬가지였죠. 영웅이었지.]
[동네 부잣집 앞에서 줄서서 기다려서 티비를 봤었지.]
전후 일본을 하나로 묶었고, 분단된 남북을 모두 오갔던 역도산, 세상을 떠난지 벌써 반세기지만 반도에서도, 열도에서도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두현/'불꽃 같은 삶 역도산' 저자 : 일본 어린이들의 영웅…한국인임을 감췄지만 재일동포들에게 굉장한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줬던건 사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