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신화가 된 그들'…응답하라 1994, 전설의 연대 농구부

입력 2014-12-11 22:13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앵커]

1990년대 저를 비롯한 여학생들은 겨울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농구대잔치와 오빠들을 보기 위해서였죠, 특히 20년 전인 94년엔 연세대가 기라성 같은 실업팀 선배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농구대잔치의 추억 속으로 온누리 기자가 안내합니다.

[기자]

"람보 슈터 문경은"
"컴퓨터 가드 이상민"
"공룡 센터 서장훈"
"코트의 황태자 우지원"
"스마일 가이 김훈"
"식스맨 석주일"
"'응답하라 1994', 전설의 연대 농구부"

아무리 잘한다 한들 허재 강동희 김유택, '허동택 트리오'만 할까 싶었는데, 송곳 같은 이상민의 패스와 백발백중 문경은의 3점슛, 제공권을 장악한 서장훈까지.

그들은 선배들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코트의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허재/KCCC 감독, 당시 기아자동차 선수 : 연대 후배들이 서장훈, 이상민, 문경은 활약이 대단했기 때문에]

1980~90년대를 돌아보면 중앙대 독주시대가 있었고, 연세대와 고려대도 중앙대 못지 않은 강호였지만, 그래도 대학농구는 대학농구였습니다.

그런데 1994년 연세대가 한국 농구의 판도를 뒤바꾼 겁니다.

[전희철/SK 코치, 당시 고려대 선수 : 솔직히 배 아프죠. 아쉬움이 남으면서 아아 배 아프다.]

그 시절 연세대가 이기는 건 너무 흔한 뉴스. 그렇게 잘 나간 비결, 바로 이겁니다.

높이가 절대적인 농구에서 2m 7cm의 서장훈은 존재 자체가 위력이었습니다.

[서장훈, 고공 농구의 진수입니다.]

높이만 있는 농구였다면 실업팀 형님까진 제압하진 못했을 겁니다.

가드 이상민의 현란한 볼배급 아래, 문경은 우지원 김훈의 가공할 외곽포. 상대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개성을 탄탄한 팀워크로 엮어낸 뿔테안경의 최희암 감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학팀 첫 농구대잔치 우승, 어찌 보면 기적이라기보다 필연일지 모릅니다.

[석주일/당시 연대 선수 : 꿈도 못 꾸던 걸 진짜로 해냈던 거죠.]

[김훈/당시 연대 선수 : 분업 농구라고 해서 각자 맡은 일. 포워드는 포워드, 가드는 가드 이렇게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거죠.]

1994년 연세대 농구에는 성적 이상의 사회문화적 의미도 있습니다.

실력뿐 아니라 출중한 외모와 X세대의 개성까지, 선수들은 소녀팬들 가슴을 흔들며 '오빠부대 신드롬'을 낳았습니다.

그 시절 농구장에는 오빠를 부르는 소녀들의 찬란한 환호성이 가득했습니다.

[농구 팬들은 연세대학교 신드롬이에요.]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주인공 성나정처럼 소녀팬들은 연세대 숙소 앞을 점령했습니다.

[문경은/SK 감독, 당시 연대 선수 : (팬들이) 낯선 여자랑만 있어도 여자친구 아닌데도 여자랑 얘기만 해도 소리지르고 떨어지라고 했던 추억들이 생각나네요.]

열기는 농구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만화 '슬램덩크' 등 문화계로도 옮겨붙었는데, 팬들은 최고센터 채치수엔 서장훈, 3점슛 천재 정대만엔 문경은 등 슬램덩크 주인공을 연세대 선수들에 대입하기도 했습니다.

[문경은/SK 감독, 당시 연대 선수 : 정대만이 훨씬 잘생겼고, 만화지만 제가 슛 성공률은 더 높지 않았을까.]

20년이 흘러 대부분 현역을 떠났어도, 1994년은 그 시절 연세대 멤버들은 여전히 전설입니다.

[김선형/SK : 농구대잔치 게임을 해주면 가끔씩 봐요. 정말 한 골 넣을 때마다 환호성이 지금과 다르더라고요. 많이 부럽기도 했어요.]

사그라드는 인기의 끝자락을 잡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2014년 프로농구.

1994년 연세대 농구는 흘려버릴 한자락의 추억이 아닌 꼼꼼히 돌아봐야 할 소중한 역사입니다.

관련기사

'찰나의 전쟁' 1초 때문에 울고 웃고…농구에서 무슨 일이 '스포츠의 성지' 장충체육관 새 단장…새 드라마 쓴다 '최고의 공격은 수비'…예술이 된 명품 수비 '동부산성' 'SK 돌풍'의 중심 김선형…'묘기 농구'로 기선 제압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