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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다시 한 번 참으로 민망한 민주공화국"

입력 2017-01-10 22:12 수정 2017-01-11 08:50

"선조들의 철학도 '과한 사치'가 돼버린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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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철학도 '과한 사치'가 돼버린 지금…"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왕조 국가인 조선시대에도 왕은 일거수일투족이 기록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는 임금이 하루 동안 어디서 무얼 했는지, 누굴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지방에서 어떤 상소문이 올라왔는지 등 모든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얼마나 꼼꼼하게 적어놨던지 '승정원일기'란 이 기록물은 그 양이 막대해서 조선왕조실록의 5배에 달하고, 중국에서 가장 방대한 역사기록물이란 '명실록'보다도 많습니다.

한 역사학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조선은 승정원 승지와 사관의 배석 없는 국왕의 독대가 엄격히 금지되었다. 하늘을 대신하는 정치는 당당한 것이어서 숨길 이유가 없다는 철학이었다"

오늘(10일) 세월호 참사 1000일이 지나 당일 7시간 행적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해명이 나왔습니다.

기존 입장에 꿰맞춘 듯한 알맹이 없는 자료, 남 탓, 언론 탓에, 전직 대통령까지 끌어들였고, 심지어는 해명자료 내에서도 서로 부딪히는 모순까지….

그것은 비록 직무가 정지됐다지만 일국의 대통령을 대변하고 표현할 수 있는 문장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엄습하는 참담함. 정치는 당당한 것이어서 숨길 이유가 없다는 선조들의 철학이 상상도 못 할 과한 사치가 돼 버린 지금은 참으로 민망한 민주공화국.

지난 2015년 12월. 바람 부는 팽목항 앞에 선 권석천 당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미안함'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한 놈만 미안하다고 해라. 한 놈만. 변명하지 마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 청문회 방청석에서 생존 화물기사 김동수 씨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를 바다 앞에 서게 한 건 나도 그중 한 놈이었다는 죄책감이었다.

시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국가가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그 의무를 방기했는데 왜 시민들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시대가 되었는가….

대통령이 나서서, 아니 그 주변의 누구든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나서서 "미안하다. 내 책임이다" 했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래서 다시 한번 참으로 민망한 민주공화국.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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