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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울고 웃게 만든 장충체육관, 50년만에 새 단장

입력 2014-12-0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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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장충체육관이 새단장을 하고 재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장충체육관은 우리 스포츠의 역사를 담고 있는 현장입니다.

박진규 기자가 장충체육관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봤습니다.

[기자]

'박치기왕' 김일
'한국 최초 챔피언' 김기수
'오빠 부대' 농구대잔치

육군체육관을 개보수해 1963년 문을 연 장충체육관.

당시로는 파격적인 돔구장으로 최첨단 시설을 자랑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실내 체육관엔 우리 스포츠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프로레슬링 김일의 박치기에 전국이 들썩였고,

[김일 선수는 장기인 박치기와 당수로 칼슨 선수를 완전히 제압, 2대0으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도 장충체육관에서 탄생했습니다.

김기수는 1966년 이탈리아 나노 벤베누티를 꺾고 챔피언 벨트를 차지합니다.

날짜는 우연찮게도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이었습니다.

[이기현 회장/고 김기수 기념사업회 : 6월 25일에 그런 빅게임에서 이기면 국민적인 희열감, 기쁨은 배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본인이 이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대요. 선생님께서는.]

1980년대 들어 장충체육관은 농구대잔치로 또 한 번 들썩거립니다.

이충희와 김현준이 벌였던 전설적인 슈터 대결, 농구대통령 허재의 탄생이 모두 장충체육관에서 이뤄졌습니다.

[박수교 농구 해설위원/당시 현대전자 소속 : 여성팬들이 현대와 삼성 같은 게임에는 전날 장충체육관 앞에 텐트를 칠 정도로 인기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또 배구와 씨름까지, 장충체육관은 그야말로 만능이었습니다.

장충체육관은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도 한 페이지를 장식합니다.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 간접선거, 일명 체육관 선거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했던 역사도 시대의 흐름을 피해가진 못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건물 노후화로 외면받던 장충체육관은 이제 새단장을 준비중입니다.

2년 넘게 진행된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 지하에 한 층을 더 증축하면서 보조경기장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한창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인데요.

내년 1월이면 이곳에 다시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지게 될 겁니다.

좌석이 소폭 줄어들면서 보다 편안한 경기 관람도 가능해졌습니다.

장충체육관이 동대문야구장처럼 철거되는 운명을 맞이하지 않은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제는 과거의 역사 위에 새로운 스토리를 쌓아 나가야 합니다.

[이대택 국민대 교수/스포츠문화연구소장 : (스포츠 역사에서) 소프트웨어도 중요하지만 하드웨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언제, 무엇이 열렸던 운동장, 체육관, 광장. 그런 의미에서 가능하면 1년 내내 쓰여지고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문화재적인 가치로 존속해야 합니다.]

개관 50년째, 전국민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장충체육관. 앞으로의 50년은 또 어떤 감동의 순간을 우리에게 선사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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