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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의 흥망성쇠…'잘나가던' 그는 왜 타깃이 됐을까

입력 2016-07-22 16:40

"과도한 엘리트주의에 적(敵) 많아…보수정권 연장에 걸림돌 시각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에도 승승장구 하다 검사장 승진 못해 첫 고비

1년여만에 청와대행 '전화위복'…막강 권력 행사하다 다시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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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엘리트주의에 적(敵) 많아…보수정권 연장에 걸림돌 시각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에도 승승장구 하다 검사장 승진 못해 첫 고비

1년여만에 청와대행 '전화위복'…막강 권력 행사하다 다시 추락

우병우의 흥망성쇠…'잘나가던' 그는 왜 타깃이 됐을까


박근혜 정부 집권 후반기 사정라인을 틀어쥐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넥슨과의 수상한 땅 거래 등 각종 의혹 당사자가 된 배경을 놓고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음에도 사면초가에 처한 그를 거들거나 변호해주는 인사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잘나가던' 그는 왜 일시에 '공공의 적'으로 전락했을까.

우선 평소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 적(敵)을 너무 많이 둔 우 수석의 성품이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진영 주류들이 1년 5개월여 남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 수석이나 새누리당내 친박근혜계를 정권 재창출의 최대 걸림돌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우 수석 감싸기를 하고 있지만, 그가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 2002년 8월 우 수석은 당시 서울지검 동부지청 부부장 검사로 있다가 춘천지검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다. 서울대학교 4학년 재학시 '소년급제'를 한 만큼 다른 동기들에 비해 지청장이 일찍 된 것이다. 때마침 영월지청에는 우 수석의 대학동기가 평검사로 근무하고 있었고, 이 검사는 우 수석이 지청장으로 부임하자 허물없이 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온 건 우 수석의 험악한 반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22일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대학동기인 평검사를 아주 험악하게 조졌다는 얘기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라며 "우 수석이라는 사람이 그런 상황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받아줄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검찰 내에서 우 수석은 한마디로 "똑똑하지만 인색한 사람"으로 통한다. 검찰총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우 수석이 검찰 일선에 있을 때 일을 시켜보면 '입안의 혀'처럼 했었다"고 전했다. 소년급제인데다 능력까지 갖춘 만큼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했던 것이다.

그러다 대검찰청 중수1과장이었던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당시 검찰 수뇌부는 노 전 대통령 기소 여부를 놓고 한달간 줄다리기를 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결국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초유의 사태를 자초하게 된다.

당장 검찰 책임론이 불거져 수사에 관여했던 대부분 검찰 관계자들이 사실상 인사조치를 당했다.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은 사표를 냈고,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지방으로 전출됐다. 그러나 이처럼 엄중한 상황에서 우 수석은 살아남았다. 평소 우 수석을 신임했던 당시 김준규 변호사가 검찰총장으로 지명됐기 때문이었다. 김 총장은 자신의 인사청문회준비팀에 우 수석을 합류시켜 비전팀장을 맡겼다. 자신의 검찰총장 임기 2년간의 기본 설계를 우 수석에게 모두 맡긴 셈이다. 총장이 된 후에는 대검 범정기획관 1년에 이어 수사기획관까지 1년을 더 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부천지청장까지 보내준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엔 노 전 대통령 사태로 우 수석이 코너에 몰리는 분위기였는데 김 총장 체제에서 잇따라 중용되면서 본인은 드디어 살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되짚어 생각해보면 받아야 할 고통은 받고 넘어가는 게 나중을 위해서는 더 나았었다"고 떠올렸다.

이 관계자의 발언은 그로부터 3년 뒤 우 수석이 검사장 승진을 못하고 끝내 옷을 벗었던 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채동욱 검찰총장 체제에서 발표된 박근혜 정부 첫 검사장 승진 명단에 우 수석의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검찰 고위 간부였던 한 인사는 "우 수석의 경우 일을 잘 하는 반면 조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나 공감 능력이 좀 떨어진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더라도 검사장을 시키려고 하면 시킬 수 있었겠지만 당시 법무부나 검찰 수뇌부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위험을 감수할만큼 우 수석에게 마음의 빚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2012년 당시 분위기로는 야당의 비판을 많이 의식하고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따라서 우 수석을 승진시키면 전체 검사장 인사가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노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인사상 불이익이라도 받았다면 마음의 빚이 있어 챙겼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도 없었으니 굳이 그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킬 필요가 없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3년 전 '기회'가 검사장 승진이라는 결정적 순간에 도리어 우 수석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하지만 검사장 승진을 못하고 옷을 벗은 지 1년여 만에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전격 발탁 된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그 같은 상황이 다시 전화위복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법조계 안팎에선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명재 대통령 민정특별보좌관이 추천했을 것"이란 말이 많이 돌았다. 우 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한 후 김 실장이 그를 유난히 아낀다는 소문이 나면서 김 실장 지원설은 더욱 힘을 얻었다. 특히 김 실장이 청와대를 떠나면서 우 수석을 민정수석에 앉히고 현 정부 집권 후반기 사정라인을 장악토록 하면서 시중에 떠돈 얘기가 단순히 낭설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 우 수석은 지난해 2월 민정수석이 된 후 검찰 인사 개입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 과정에서 김수남 검찰총장과의 갈등설이 시중 정보지를 통해 제기됐고, 최근에는 우 수석이 김 총장을 낙마시키려 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떠돌았다.

심지어 정치권에선 우 수석이 '자신이 청와대까지 오게 된 건 자력으로 한 일이지 누구의 도움도 받은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우 수석 발언이 김기춘 전 실장의 심기를 상당히 불편하게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고 권력이 막강해지다보니 본인이 잘나서 그 자리까지 갔다고 생각하는 거겠지'라는 얘기를 김 전 실장이 했다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우 수석이 넥슨과 수상한 부동산 거래를 하는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진 시점은 지난 4월 총선 당시 새누리당내 친박계와 청와대가 공천에 개입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된 시점과 묘하게 겹친다"면서 "우 수석이나 친박계의 독선으로 점철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정권 연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보수진영 이너서클이 내리면서 문제 있는 인사들부터 정리하는 수순으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넥슨과의 땅거래 사실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된 후 검찰에서든, 정치권에서든 누구 하나 우 수석을 두둔하는 사람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검사장 출신의 다른 변호사는 "우 수석은 거짓말은 잘 안하고 곧이곧대로 직선적으로 얘기를 하는 똑똑한 사람인데다 개발 상황에 대한 분석이나 쟁점을 잘 집어낸다"면서 "그러나 평생을 엘리트 지상주의로 살아서 남의 입장 잘 생각 안하는 편이고 틀린 얘기를 하는 건 아닌데 독하게 말하고 과도하게 지적해서 사람을 많이 잃는 편"이라고 전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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