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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우후죽순' 낙서에 병드는 대나무 숲

입력 2017-01-0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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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계 곳곳의 유적지마다 선명한 한글 낙서들은 안타깝게도 낯설지가 않지요. 얼마 전엔 태국 산호초에 이름을 새겨 논란이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이 '낙서 본능'을 어떡하면 좋을까요. 편히 쉬려고 찾은 대나무 숲도 얼룩지고 있습니다.

밀착카메라 손광균 기자입니다.

[기자]

이곳은 전남 담양의 죽녹원입니다. 축구장의 40배 면적에 대나무를 심어 15년째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곳에 있다고 합니다. '우후죽순'이라는 표현 처럼 대나무를 뒤덮은 이 낙서들입니다.

연인끼리 사랑을 약속하는 말부터, 장난스런 문구나 로봇 그림까지 내용도 다양합니다.

눈으로만 봐달라는 안내판이 곳곳에 걸려있지만 성한 대나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곳의 대나무들은 보통 10m 넘는 길이로 자라는데요. 낙서는 대부분 이렇게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나 팔이 닿는 곳까지 집중되어 있습니다. 또 끝이 날카로운 열쇠나 돌멩이를 사용해 파놓은 듯한 흔적이 가장 많이 보입니다.

겨울철인 요즘은 비수기에 단체 관람객이 줄면서 낙서도 뜸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껍질이 다시 자라지 않는 대나무에는 언제 새겼는지 알 수 없는 자국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공원 관계자 : 양해를 구해요. 하지 말아 달라고… (그러면) 가시는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 또 안 보는 사이에 다시 완성해놓고…]

방문객들은 깨끗한 대나무를 찾다 이내 포기합니다.

[황영록/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 당황스러웠어요. 저도 찍으려고 했는데 '나도 글을 쓰고 찍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고 근데 또 그러기에는 여기는 관광지인데….]

이렇다 보니 SNS에 올라오는 이른바 '인증샷'에도 낙서 없는 대나무숲 사진은 보기 어려운 상황, 보다 못한 누리꾼이 대나무를 보호하자고 호소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식물 뿐 아니라 수백 년 된 문화재도 낙서의 표적입니다.

한쪽 벽면이 낙서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가려져 있는데요. 관광객들이 다녀갈 때마다 이곳이 낙서판으로 변하는 탓에 이렇게 매번 황토로 덧칠을 해주고 있는 겁니다.

소쇄원은 담양군청이 선정한 10대 명소 중 하나로, 2008년 문화재청이 국가문화재로 지정한 명승입니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정원으로 400년이 넘었지만 연말마다 낙서를 가리는 작업이 반복됩니다.

이마저도 중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철이 돌아오면 소용이 없습니다.

[소쇄원 관리인 : 황당한 낙서로는 '용용 죽겠지'. 바로 지울까 하다가 사람들이 보고 어떤 생각을 가질까 관찰을 하기도 했습니다.]

소쇄원 맞은편으로는 이렇게 성인 허리 높이로 울타리까지 만들었는데요. 관광객들이 이곳까지 내려와 낙서를 남기자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겁니다.

CCTV까지 설치하고 수시로 둘러봐도 관리인 두 명이 하루 2000명에 달하는 방문객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이 시설을 관리하던 직계 후손 한 명은 횡포를 부리는 관람객들과 갈등을 빚다가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추억을 남기려는 마음에, 또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이 아름다운 대나무숲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잘 보존된 문화재와 자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건 너무 큰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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