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취재수첩] 진도 팽목항의 5월

입력 2014-05-08 15:12 수정 2014-05-08 15:17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취재수첩] 진도 팽목항의 5월

"집에 있을 때보다 더 꼬박꼬박 세끼 잘 챙겨먹고 있는 것 알잖아요."

지난 1일
장례를 치르고 안산에서 다시 진도를 찾은 '희생자 가족'들이 위로를 건네자
'실종자 가족'들은 오히려 "괜찮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이의 시신을 먼저 찾았다는 이유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곳이
이곳 진도 팽목항의 5월 입니다.

그렇다고 이곳이 거대한 슬픔의 공간만은 아닙니다.
항구를 따라 수 백 미터 늘어선 자원봉사 천막은
언뜻 동네 장터를 연상시킬 때도 있습니다.

즐거웠던 때가 떠오르는 듯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미소 짓거나
평온하게 대화를 나누는 실종자 가족들도 종종 보입니다.

사고 발생 23일.
한 달 가까운 이 시간은, 팽목항이 원래 이런 곳이었던 것 마냥
우리들을 적응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에게 이 익숙함은 곧 두려움입니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다시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목이 다 쉰 실종자 가족 한 명이 말했습니다.

"맨 마지막까지 총리님도 자리 지켜주세요.
언론의 관심도 떨어질 것이고, 그 때 남은 가족들이랑도 자리를 지켜주세요."

실종자 가족들을 괴롭히는 것은
지금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조차 모른다는 공포,
누군가는 마지막 '실종자 가족'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던 겁니다.

그럼에도 이곳에선
슬픔과 공포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석가탄신일 밤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연등 날리기 행사도 그 중 하나입니다.

바다 속에 있는 실종자 수보다도
더 많은 불빛이 밤하늘에서 별처럼 환하게 빛났습니다.

"얼른 나와. 추운데서 뭐해. 엄마 말 안 들을래."

그 불빛 하나 하나가 내 아이인양
가족들은 지난 스무날을 거치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겨우 포개어 놓았던 슬픔을 밤 바다에 소리치며 또 내뱉었습니다.

후진국형 참사.
이번 사고를 이렇게 부릅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묘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마치 '우리처럼 잘 사는 나라에선 일어나지 않을 사고인데
이례적으로 일어났다'는 착각 말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착각했던 일이
눈 앞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후진국형 참사'가 아니라 '한국형 참사' 아닐까요.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천막이 하나, 둘 걷히고 팽목항은 또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될 겁니다.
또 우리는 착각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잊지 말자는 겁니다.
슬픔과 위로를 강요하는게 아니라,
이 슬픔과 위로를 어떻게 보관할지 정도는,
그래서 또 착각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함께 고민하자는 겁니다.

JTBC 사회2부 이가혁 기자
사진=중앙 포토DB

관련기사

[취재수첩] 현장 기자의 말을 잊게 한 학생들 [취재수첩] '사고 소식에 포기하려 했지만..' 단원고 탁구부 눈물의 우승 [취재수첩] 세월호 참사와 닮은 열차 브레이크 납품 비리 [취재수첩] "의원님 집들이 중"…'애도 국회'에서 무슨 일이? [취재수첩] '18인승 버스, 3~4개 좌석 늘린 셈' 세월호 증축 의문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