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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현장 기자의 말을 잊게 한 학생들

입력 2014-04-22 10:28 수정 2014-04-2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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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엿새째 안산의 한 장례식장.

오후 5시쯤입니다. 단원고등학교 교복은 아닌 것으로 보아 아마 중학교 동창,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랜 친구사이였을 겁니다.

이 또래 친구들에게 장례식장은 익숙치 않은, 그런 곳일 겁니다. 그래도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용기내어 온 게 틀림없습니다. 빼빼 마른 남학생 한 명과 큰 뿔테 안경쓴, 바가지 머리를 한 남학생 한 명.

이 둘은 장례식장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빈소 현황이 나온 스크린을 말 없이 쳐다봤습니다. 한참을 서있던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건넨 한마디는 지난 6일간의 취재 때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도 아렸습니다.

"2층부터 갈래, 3층부터 갈래."

이들이 3층짜리 장례식장에서 작별 인사를 해야할 친구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던 겁니다.

[취재수첩] 현장 기자의 말을 잊게 한 학생들


온 나라가 울고 있습니다. 취재하는 기자들도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이 큰 슬픔 뒤에 벌어질 상황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화가 납니다.

합동수사본부가 배를 몰았던 사람들의 책임을 따지고 있습니다. 몇 시에,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 배를 몰기만 했지, 승객은 책임지지 않은, 해야 할 일을 다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다른 전문가들은 배의 구조적 문제점을, 또 다른 전문가들은 매뉴얼을 따지고 있습니다.

참 중요한 일들입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따지고, 분석했던 게 처음이 아닙니다. 매번, 이런 사고 때마다, 우리는 따졌고, 분석했고, 있던 제도를 고치고, 없던 규칙을 또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화가 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번 사태도 제도를 고치고, 없던 규칙을 또 만들면서 마무리가 될 겁니다. 그 규칙을 설명하는 책자 수만부가 만들어지고 전국 각지로 배포될 겁니다. 언론 보도자료도 대대적으로 뿌려질 겁니다. 이 사태의 마무리 모습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고개를 숙이는 국정 책임자 사진으로 끝날 수도 있겠습니다.

지난 십수년간 보아왔던 그런 수순대로 끝날 까봐, 그래서 벌써부터 또 소름이 끼칩니다.

그래서 지금의 슬픔을 우리는 머리와 가슴에, 아프게 심어놓아야합니다.

쭈뼛거리며 장례식장에 찾아와 한숨 지어야했던 바가지 머리 '고딩'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명 조끼를 다 입어놓고도, 너무 착해서, 안내방송 지시를 그대로 따랐던 우리 아이들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JTBC 사회부 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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