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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브카, 6m 10cm를 넘던 날…인간에게 '날개'를 달다

입력 2015-03-1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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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인간새들의 대결, 육상 장대높이뛰기. 오늘(16일)은 인간새로 처음 불린 세르게이 부브카 얘기입니다. 24년 전 오늘, 부브카는 6m10cm의 세계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아파트 3층 높이를 뛰어넘은 건데요, 우크라이나를 위해 뛰고 싶었던 소련인 부브카, 소련을 위해 뛰어야 했던 우크라이나인 부브카.

그 이야기를 오광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지난해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프랑스의 르노 라빌레니가 6m16의 바를 뛰어넘고선 머리를 감쌉니다.

그리고 관중석에서 이를 바라보며 박수를 쳐주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세르게이 부브카,

라빌레니는 장대높이뛰기 전설 부브카를 깨웠습니다.

'1981년부터 2001년까지 37번의 세계신기록 경신'
'6연속 세계선수권 제패'
'부브카는 점프하지 않는다 그저 하늘을 날 뿐이다'

장대높이뛰기에서 마의 기록으로 불렸던 6m를 돌파한 게 1985년.

부브카는 6년 만에 지구촌에서 가장 먼저 6m10까지 다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소련체제가 해체된 1991년, 아무도 넘볼 수 없다고 여겨졌던 벽을 부브카가 뛰어넘은 겁니다.

[최규정 박사/한국스포츠개발원(장대높이뛰기 담당) : 부브카의 최대 장점은 조주(도움닫기) 동작에 의한 속도가 감속되지 않고 장대의 탄성에너지로 비축시킬 수 있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났다는 거죠.]

냉전시대 미국과 경쟁하던 소련.

미국은 더 빠르게 달리는 스프린터 칼 루이스를, 소련은 더 높이 날아오르는 부브카를 내세웠습니다.

[김정효 박사/체육철학 전공 : 부브카는 결국 냉전시대의 산물이었습니다. 소련인으로서 부브카는 허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의 빨간 유니폼을 벗어던지고서도 부브카는 최고를 찍었습니다.

특히 1991년부터 4년간 실내와 실외를 막론하고 신기록만 15번을 갈아치웠습니다.

[김정효 박사/체육철학 전공 : 아무리 소련체제가 붕괴가 되고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자기 정체성은 결국 장대높이뛰기 선수로서 정체성이었던 거죠.]

그러나 부브카도 올림픽에선 맘껏 뛰어오르지 못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소련에 금메달을 안긴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92년, 96년, 2000년 올림픽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따내지 못했습니다.

[중계캐스터/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 올림픽 챔피언 부브카의 경기는 여기까집니다. 타이틀을 지키지 못하네요.]

장대높이 뛰기는 빠른 질주, 힘찬 비상, 아름다운 낙하가 어우러집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습니다.

부브카는 그 욕망을 충실히 따르고, 또 실현했습니다.

그 누구를 위해 뛰고 날아오른 건 아닙니다.

다만, 부브카로 인해 냉전시대 소련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빛났고,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국제사회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라빌레니가 6m16의 실내 세계신기록을 세웠지만 우리는 여전히 부브카를 기억합니다.

부브카의 삶은 소련, 그리고 러시아 우크라이나로 얽히고 설킨 역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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