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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대안학교 생겼지만…탈북 청소년들의 '상처'

입력 2014-04-0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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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서슬퍼런 북한의 감시를 뚫고 한국으로 온 탈북청소년들이 2천명에 달합니다. 목숨을 걸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으면서 남쪽으로 왔지만, 이곳에서의 생활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탈북 청소년들을 위해 부산에 세워진 대안학교에 이지은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먼저 보도 보시고, 자세한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기자]

지난 14일, 부산에서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첫 입학식을 준비하던 아이들은 교가 부르기와 선서 연습에 마냥 신이 났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가슴 깊은 곳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한국에 온 지 1년이 된 18살 정현이(가명). 조금만 오래 앉아있으면 온몸이 쑤시고 머리가 아파옵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다 다시 북한으로 붙들려간 뒤 고문을 받아 생긴 후유증입니다.

[이정현(가명)/탈북 청소년 : 한국 가려다가 잡히면 무조건 정치범 수용소로 가요. 보위부에 들어가자마자 따귀를 맞고 발로 걷어차였고요. 누우려면 멍든 자리가 까맣게 변해 너무 아프고요. 못을 삼켰어요. 죽으려고….]

이렇게 며칠간 학대를 당한 뒤, 정현이는 다른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이정현(가명)/탈북 청소년 : 제일 추운 곳이 백두산 밑인데 발가락도 얼고 완전히 꽃제비였어요. 일을 아예 안시키고 하루 3분의 2 정도를 앉아있게 하고 머리도 45도 각도로 두게 하고요. 더는 못살겠다 싶어서 다시 중국으로 가기로 했어요.]

지옥과 다름없는 1년 간, 소녀가 겪어야 할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또래 미영이(가명)도 마찬가지입니다.

2011년 가을, 함경북도 김책에 살던 미영이는 한국으로 먼저 떠난 아빠를 찾기로 했습니다.

미영이는 혼자 힘으로 김책에서 길주로, 청진에서 혜산으로 조금씩 그리고 몰래 숨어 다녔습니다.

반년에 걸쳐 겨우 압록강에 도착한 미영이는 얼음이 언 강을 건너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김미영(가명)/탈북 청소년 : 중간 쯤 뛰었는데 얼음이 꽝 하고 깨지는 거예요. 눈이 엄청 많이 왔고 (강 건너 산을) 올라가는데 계속 미끄러져 내려가고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됐어요.]

중국 단둥에 도착해서도 고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중국인 브로커를 따라 단둥에서 심양으로, 베이징으로 감시망을 피해 다녔고, 급기야 중국 국경을 넘어 라오스와 태국까지 머나 먼 길을 가야 했습니다.

[김미영(가명)/탈북 청소년 : 다 해서 거의 서너 달 걸렸죠. 중국에서 그곳까지 가는데 한 달 넘게 걸렸고요. 브로커와 연락이 안 되면 못 가는 거니까. 브로커가 저를 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팔아버릴 수도 있어서요.]

우여곡절 끝에 한국 땅을 밟았지만, 탈북 아이들에겐 기대도 잠시 뿐입니다.

이번엔 남한 친구들의 놀림과 따돌림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2년 전 한국에 온 15살 영수는 또래보다 키가 20cm나 작고 몸무게도 35kg 정도 밖에 안됩니다.

작은 체구와 말투 탓에 놀림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의 스트레스가 심해졌고, 결국 한 학기만에 심각한 원형 탈모가 찾아왔습니다.

[김미영(가명)/영수 누나 : 처음에 조금 빠져서 원형 탈모가 되다가 힘들었던지 계속 빠져 집 안에 머리카락이 천지였어요.]

비슷한 시기에 남한에 온 현수도 비슷했습니다.

[정현수(가명)/탈북 청소년 : 반 아이들이 먼저 허세를 부려도 참고 참았는데…저도 모르게 혼내주려고 하다가 (그 아이의) 턱이 부서졌어요.]

하지만 함께 탈북한 엄마의 보살핌 덕에 깊이 반성했고 대안학교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어린 나이에 사선을 넘어야 했던 청소년들이 남한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게 학교 측의 바람입니다.

[이은미/장대현 학교 교사 : 한국도 알고 북한도 아는 학생들이 통일 세대의 인재들로 자라나 각자의 분야에서 리더로 설 수 있으면 좋겠어요.]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결실을 맺을지 주목됩니다.

[앵커]

어른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데, 아이들이 이렇게 탈북하는 걸 보니 정말 안쓰럽습니다. 그런데 리포트를 보니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탈북하지 않고 혈혈단신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요.

[기자]

네. 대부분 따로따로 탈북을 한다고 합니다.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 인근에 거주하면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기가 조금 낫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국경지대로 가기까지 수십 여개의 초소를 지나며 주민 통행증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이렇게 움직였다간 북한 보위부에 즉각 발각돼 큰 고초를 겪을 수 있습니다.

또 수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주민들이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신고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엄마나 아빠가 먼저 중국에 장사를 하러 간다고 한 뒤 돈을 모으고요.

브로커를 고용해 아이들을 데려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안타깝게 다시 북한에 끌려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렵게 한국에 왔지만 정신적인 고통 속에 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하지만 한국에 도착하면 아이들의 고통스런 기억도 좀 치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기자]

그게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탈북 아이들을 조사해 봤더니, 대부분 헤어진 가족과 친척에 대한 죄책감에 힘들어했고요.

또 식량 부족이나 심한 추위로 생명의 위협을 겪거나, 다른 사람이 공개 처형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경우, 무엇보다 탈북 과정에서 북한이나 중국 군 당국에 검열을 받으며 극도로 긴장한 경우에는 불안정한 심리가 계속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얼마 전 이곳 아이들은 집과 나무, 사람을 그리면서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검사를 받았는데요.

무언가에 쫓기고, 억압받는 마음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지붕의 벽돌무늬, 나무에 그려진 빗금이 불안한 심경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시죠.

[이유현/미술심리 치료사 : 대부분의 그림이 죽고 싶었다, 외로웠다, 나를 바라보는 무서운 시선이 너무 싫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감추려고 늘 웃고 괜찮은 척 했다는 부분이 있고요. 힘든 정서들을 참을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 나타납니다.]

[앵커]

그렇군요. 탈북 아이들이 다시 밝은 모습을 찾으려면 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심리 치료도 병행돼야 할 것 같은데요.

[기자]

네. 앞서 보신 장대현 학교는 부산에선 처음으로 탈북 청소년을 위해 지어진 곳인데요.

이 학교는 아이들의 인성 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임창호/장대현 학교 교장 : 국정 교과서를 중심으로 일반 학교와 동일하게 수업이 진행되고요. 상처들이 많기 때문에 치유되는 프로그램을 하고. 아이들이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감을 얻게 해서 한국 사회에 들어가서 부딪히면서 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재단법인 북한인권과 민주화 실천운동연합이 설립한 이 학교는 연 예산 2억 원 가량을 가지고 운영되는데요.

현재 총 13명이 교육 받고 있습니다.

아직 교육부에서 인정한 정식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이곳 학생들은 검정고시를 봐야 고등학교나 대학 진학이 가능한데요.

곧 관련 서류를 제출해 인가를 받겠다는 계획입니다.

현재 미인가 탈북 대안학교는 전국에 10여 곳 정도 되는데요.

이들 학교가 제도권에 하루속히 진입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겠죠.

이렇게 힘겹게 사선을 넘어온 아이들에겐 이 대안학교처럼 편견 없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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