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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실제 인물 "노무현 강력 변론, 되레 가족이 걱정"

입력 2013-12-31 16:35 수정 2014-01-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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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 '변호인' 장안의 화제입니다. 500만을 넘어섰네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는 것 아닌 것 같은데, 그 사건이 바로 부림사건입니다. 그 피해자 가운데 한 분을 전화로 연결해 만나보죠.

부산 거성중학교 고호석 선생님. 안녕하세요?

Q. 영화 '변호인' 보며 든 생각은?
- 두번 봤다. 시사회에서 한 번 보고 개봉한 이후에 한번 봤다. 시사회에서는 사건의 배경을 했다는 사전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와 영화와 비교가 되어서 몰입이 안 됐다. 복잡해서 개봉한 이후에 다시 보러갔다. 두번째로 영화로 봤는데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디테일에서는 각색이 아주 많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사실을 따라갔다고 생각한다.

Q. 1981년 '부림 사건'이란?
1981년 사건으로 79년 부마항쟁이 있었고 그 직후 10.26 사태가 있었다. 전국민의 민주화 열망이 터져나온 상황에서 정권을 잡다보니 정통성도 없고 불안정했었다. 그래서 안정화 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사건을 만든다. 부산은 부마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들고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찍어놨던 사람들을 일망타진하듯 잡아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직이 있었던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숫자도 애매하다. 저와 함께 재판 받은 사람은 16명이었고 그 이후 이호철 씨등 3명이 두번째로 재판을 받았고, 넓게 보면 주변에서 시위를 하다 잡힌 사람, 독서모임 하다가 군대에 강제징집되어 있다가 탈영해서 들어갔던 소설가까지 다 합치면 20여명 된다.

Q. 모두 알던 사람들인가?
- 많은 부분은 '좋은 책 읽는 모임'이 있었다. 그 구성원과 학교 안에 비공개적인 학내 독서모임이 있었다. 정식명칭도 없는 독서모임이 있었는데 그 두 구성원들을 축으로 해서 묶다보니 법정에서 처음 얼굴 본 사람들도 꽤 있었다. 저는 당시 80년 3월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했고 막 방학이 시작된 시기였다. 숙직하다 집에 돌아오던 길에 덩치 큰 사람에게 눈을 가린채 끌려갔다. 구속 영장 떨어질때 까지 만 36일간 갇혀있었다.

Q. 끌고 가서 어떤 것을 물었나
- 처음에는 데리고 가서 가만히 두었다. 오래 기다려야하냐 물었더니 두목을 다르다며 구석으로 데려가 두들겨 팼다. 그러더니 취조실로 끌고가 군복으로 갈아입히고 계속 때렸다. 진술서를 쓰면 계속 두들겨 팼다. 몇일 지나니 "너 공산주의자이지? 김일성 지시 받았지" 이런 식으로 나왔다. 전혀 사실을 아닌 것을 얘기하라고 하니 그것 때문에 또 맞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죽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했다. 사람이 아니었다.

Q. 실제로 영화 장면같은 고문을 받았나
- 전기고문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물고문, 통닭구이 고문, 몰매가 주를 이루었다. 저는 1심에서 7년 징역을 받았고 항소심에서 6년으로 되어 대부분 확정이 되었고, 실제로는 2년 반 살고 83년 12월에 석방되어 나왔다.

Q. '부림사건' 피해자들, 지금은?
- 저는 교사였기 때문에 복직을 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Q. 노무현과의 인연은?
- 다른 인권 변호사는 매우 점잖게 했다. 모두 무죄는 안난다고 봤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권 변호는 그동안 안했기 때문에 불법 감금과 폭행에 대해 대단히 분노했다. 저희에게는 대단히 고마웠지만 가족들이 볼 때는 저러다 형량이 더 높아지는 것 아닌가하고 걱정을 더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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