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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미 9·11 사태 vs 세월호…1년 뒤 비교 하니

입력 2015-04-16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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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떤 조치를 취해야하나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됐던 게 미국 9.11 사태였습니다. 사고의 성격 자체는 다르지만 진상조사나 국가 차원의 개조 방안을 마련하는 것. 그 당시 미국을 참고한 바가 많은데요. 그렇다면 9.11 발생 1년과 세월호 참사 후 1년은 어땠을까요? 여러 시사점이 있을 거란 판단으로 오늘(16일) 팩트체크에서 이 부분 짚어보겠습니다. 김필규 기자가 꽤 공들여 이 부분을 준비했는데요.

김필규 기자, 9.11 테러와 관련한 전문가들, 또 당시 유가족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고 하죠? 그 당시 미국사회도 지금 우리 같은 어떤 갈등이 없진 않았겠죠? 당연히 있었겠죠?

[기자]

예, 9.11 후속대책과 관련한 전문가로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의 필립 쉐넌이라고 있는데, 팩트체크와의 전화통화에서 9.11 발생 1년 후 미국, 그리고 지금 한국의 모습,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직접 들어 보시죠.

[필립 쉐넌 전 기자/뉴욕타임스 : 9.11 진상조사위원회를 세우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국에서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는 것이 놀랍지만은 않습니다. 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도 전면 조사에 대해 우려하고 있을 겁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에 방해가 된다면서 거부하는 바람에,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세우는데 1년 2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나마도 위원장의 중립성 논란, 예산 논란이 상당했는데요.

우리의 경우 참사 발생 1년이 채 안 돼서 특별조사위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여러 논란이 있으면서, 또 세월호법 시행령 문제로 현재 출범조차 못하고 있으니 9.11 당시 미국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앵커]

예산 문제라던가 중립성 문제라던가 다 비슷한 얘기들이 미국에도 겹치게 나오네요. 그런데 문제는 구성이 된 다음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어땠습니까?

[기자]

9.11 조사위의 경우 중립적인 위원장으로 교체됐습니다. 그 이후 새롭게 구성돼서 1년 8개월 동안 활발한 활동을 펼쳤는데, 그 기간동안 120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고, 총 12차례의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부시 대통령 비롯해 딕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까지 전현직 고위 정부인사가 모두 증언대 앞에 섰습니다.

[앵커]

현직 대통령도 섰단 얘기군요?

[기자]

일단 백악관으로 간 제한적인 부분이기 했는데요, 그렇게 해서 당시 인상 깊었던 백악관 대테러 수석보좌관의 청문회 장면 한번 보시죠.

[리처드 클락/당시 백악관 대테러 수석보좌관 : 제가 마침내 9.11 테러 희생자의 가족과 연인들에게 사과드릴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청문회에 기쁜 마음으로 임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TV로 보고 계신 여러분, 우리 정부가 여러분을 실망시켰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모든 사실이 드러날 때 여러분의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앵커]

이 장면 사실 조금 오래되긴 했습니다만, 굉장히 유명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미국 드라마에도 나왔었다면서요? 이 장면이. 아무튼, 솔직한 고백이 유가족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줬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저 장면이 얘기되곤 합니다. 당시 현직 대통령 부시 대통령이 청문회장에 섰다고 하는데, 물론 본인이 직접 갔던 것은 아니라고 했죠?

[기자]

부시 대통령의 경우 조사위원들이 백악관에 가서 증언을 들었고, 또 선서를 거부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런 과정을 통해 결국 567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낼 수 있었고, 진실에 상당히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직 외교관 출신으로 9.11 후속조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피터 데일 스콧 교수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는데, 세월호와 관련해 "가장 시급하게 조사돼야 할 것이 왜 구조활동이 지연됐느냐 하는 부분"이라면서 "진실이 특권 위에 존재하기 위해선 모든 사람의 증언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앵커]

참사 1주기. 우리가 오늘 세월호 참사 1주기니까요. 그 사람들의 참사 1주기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기자]

오늘 우리와 마찬가지로 당시 미국 곳곳에서도 1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는데요.

진상조사에 소극적이던 부시 대통령도 당일엔 아침 일찍 추모예배를 마친 뒤, 국방부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비행기가 추락했던 펜실베니아 생스빌에서 유족들을 만난 뒤, 오후에 뉴욕으로 건너가 그라운드 제로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밤 9시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뉴욕에서 대국민 연설을 함으로써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앵커]

유족들과 만나는 장면이 나왔는데, 당시 유족들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기자]

워낙 사망자가 많았던 터라 모두 어땠다 말하긴 쉽지 않지만, 정부와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남편을 잃은 부인들이 '저지 걸'이라고 해서 워싱턴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유족들의 활동이 있었는데, 미국에서도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 심지어 유언비어도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상황하고도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결국 나중에는 조사위가 제대로 구성되고, 많은 이를 증언대에 세운 것도 이들의 공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9.11 때 아들을 잃었던 한 유가족과 전화 통화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탈랏 함다니/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 유가족회 : 가능한 한 많은 정치인들에게 직접 가서 말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유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직접 보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슬프고 불행한 일이지만, 이것이 힘 있는 자들을 움직이게 할 유일한 방법입니다.]

또 인터뷰 한 9.11 유가족들은 한국의 세월호 유가족에게도 관심이 많았는데,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어보시죠.

[로빈 번스타인 (9.11 테러로 어머니를 잃음) : 9.11 이후에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좀 지나면 나아질 거야'라고 말했어요. 저는 많은 아픔을 겪고 있었고, 그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죠. 우리가 작은 변화를 만들 때마다 우리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하려는 일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다시는 그런 실수, 사고가 없도록 하는 일은 치유 과정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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