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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플러스] 주유기 조작 '7초면 뚝딱'…82억 챙겨

입력 2014-03-13 09:29 수정 2014-03-1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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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기름 양을 속여 팔아서, 2년 동안 82억 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주유소들이 적발됐습니다.

주유기를 조작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했기 때문인데요, 한영익 기자의 보도 먼저 보시고 자세한 얘기 해보겠습니다.

[기자]

한 남성이 주유기 사이를 바쁘게 오갑니다.

정해진 양보다 기름이 적게 들어가도록 주유기를 조작하는 겁니다.

[단속 경찰관 : 458㎖가 모자란 겁니다. 그렇죠? 한 번 더 해볼까요?]

주유기 제작 업체에서 일했던 59살 김 모 씨는 단 7초 만에 주유기를 조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단말기를 주유기에 연결한 뒤 빨간색 버튼을 누르면, 주유량을 속이는 프로그램이 순식간에 입력되는 겁니다.

이 프로그램을 주유기 1대당 200만 원씩에 설치해 줬습니다.

[김모씨/프로그램 설치업자 : 보통 3% 정도를 속일 수 있게 해달라고 많이 하시죠. 주유소 업자가 먼저 알고서 '그런 것 있느냐'고….]

수도권과 충청도에 있는 주유소 20곳이 이 프로그램으로 2년간 82억 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습니다.

차량 1대가 휘발유 60L를 넣는다면 274만 대가 피해를 입었을 양입니다.

취재진이 조작된 주유기로 직접 휘발유 20L를 넣어봤습니다.

계기판엔 20L가 들어갔다고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한참 못 미칩니다.

[신동석/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지능1팀장 : 전부 다 이식한 경우도 있고, (주유기) 10개를 운영하면 4개 정도를 이식해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있습니다.]

경찰은 프로그램 제작자 김 씨 등 5명을 구속하고, 주유소 대표 등 31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앵커]

이번 사건 취재한 한영익 기자 나와 있습니다.

한 기자, 그러니까 멀쩡한 주유기가 불법 기계로 둔갑하는데 단 7초면 된다는 거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기계를 주유기의 메인보드에 연결한 뒤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7초 만에 불법 프로그램이 설치가 되는 겁니다.

일단 프로그램이 설치되고 나면, 조작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업자들은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 주유소 사장들이 원하는 숫자를 설정해 줍니다.

예를 들어 '00'이나 '1004' 같은 고유 번호를 만들어 놓는 건데요, 이 번호가 바로 불법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만약 제가 5만 원을 주유해달라고 얘기하면, 주유소 직원은 주유기에 5만 원을 찍습니다.

그런 다음에 미리 설정해 둔 숫자 '00'이나 '1004'를 입력하면 프로그램이 가동하면서 정해진 양보다 기름이 적게 들어가는 겁니다.

아까 리포트 초반부에 주유소 직원이 여러 대의 주유기를 왔다갔다 하면서 번호를 누르는 장면을 보셨을 텐데요, 이것도 미리 설정해둔 숫자를 입력하기 위해서 돌아다녔던 겁니다.

당시 단속을 나갔던 경찰의 얘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보시죠.

[신동석/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지능1팀장 : 소장이나 대표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금액을 누를 때 3번을 누르고 금액을 눌러라. 000을 누르고 금액을 눌러라. 주유기마다 다 다릅니다. 0을 누르는데도 있고 1004를 누르는데도 있고, 3 하나만 누르는 데도 있기 때문에 주유원들에게 주입을 시켜놓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주유원들은 그 내용을 모르죠. 하라고 했기 때문에 누르는 것 뿐입니다.]

[앵커]

조작 수법이 날로 진화하는 것 같습니다.

[기자]

이번 수법은 조금 다릅니다. 그동안 주유량 조작은 그 수법이 조금씩 변화해 왔는데요. 화면과 함께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 보시는 게, '엔코더'라고 하는 주유기 제어 장치입니다. 이걸 조작하는 게 1세대 수법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정품과 불법 조작된 엔코더의 모습이 약간 다릅니다.

표시가 나다 보니 엔코더는 집중 단속의 대상이 됐습니다.

다음 보시는 화면은 메인보드에 별도의 장치를 부착한 모습입니다. 2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검은색 박스가 바로 불법 장치인데요.

덩치가 크다 보니 주유기를 뜯어보기만 하면 이것도 쉽게 적발이 됩니다.

그 다음으로 나온 3세대는 아예 메인보드의 메모리 칩을 갈아끼우는 방법입니다.

거추장스러운 장치는 없지만, 보이는 것처럼 하얗게 납땜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앞선 2가지보다는 발전했지만 이 역시 기계를 뜯어보기만 하면 적발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적발된 일당은 이런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불법 프로그램을 설치했습니다.

프로그램 이식용 단말기를 주유기에 잠깐 연결하기만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범행 수법이 더욱 교묘해진 겁니다.

[앵커]

단속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겠네요?

[기자]

네, 맞습니다. 예전에는 단속을 나가서 주유기만 뜯어 보면 조작 여부를 확인할 수가 있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기계를 뜯어보더라도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짜 석유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가짜 석유 등을 공급하던 사람들이 기름의 양을 속이는 쪽으로 갈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분석인데요.

그러다 보니 범행 수법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교묘해지고 있는 겁니다.

현재로서는 몰래 소비자인 척 하고 기름을 직접 넣어본 뒤 양을 측정해서 단속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담당 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석유관리원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박준덕/한국석유관리원 특수사업팀장 : 지금은 (주유기가) 전자 장비이기 때문에 전자로 신호를 받아서 계산하는 식이 표현되는 걸 보게 되는데 검사하는 기관들이 그런 걸 발견해 낼 때마다 불법 행위들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기자]

네, 그래서 한국석유관리원은 오는 7월부터 '석유제품 수급보고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쇠고기 이력 추적제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말 그대로 기름이 정유 공장에서 나갈 때부터 소비자에게 갈 때까지 판매량과 품질 등 모든 이력을 보고받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업주가 보고를 허위로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주유기 조작 업자들 이렇게 2년 동안 82억을 챙겼다고 하니, 20곳 따져 보면 한 해에 2억 정도 부당이익을 챙긴 것 같은데 이렇게 해서 살림살이 얼마나 나아질 건지, 그렇게 해서 또 좋을지 그게 의문입니다. 업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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