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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위아래 없는 이웃싸움 '층간소음'

입력 2014-03-24 11:09 수정 2014-06-0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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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청자 여러분, 지금 어디서 이 방송을 보고 계십니까. 대부분은 집 거실이나 안방에서 편안하게 보고 계실 텐데요. 그런데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마치 고문을 받는 고문실 같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층간소음에 시달린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인데요. 지난 14일에도 서울 상도동에서 아랫집 사람이 윗집에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탐사플러스가 이웃을 원수로 만드는 현장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기자]

대전의 한 아파트. 불 꺼진 거실을 텔레비전 화면만이 밝히고 있습니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안방과 거실을 오가고, 언뜻 보기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가족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실에 등장한 여성이 신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하이힐. 하이힐을 신고 거실을 활보하더니, 심지어 제자리에서 두 발로 뜁니다. 잠시 후 공을 가지고 다시 등장한 여성. 농구연습을 하듯 바닥에 공을 튀깁니다. 옆에 앉은 남성은 아령처럼 보이는 물체를 바닥에 굴립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번에는 텔레비전마저 꺼져 있어 잘 보이진 않지만 귀를 기울여보면.

"드르르륵~ 드르르르륵"

다 큰 어른이 바퀴 달린 밥상에 올라타 발로 밀며 다니고 있습니다.

[세상에 진짜. 어우 나 진짜 저 인간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진짜.]

공동생활을 하는 아파트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윗집 사람들의 행동. 도대체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취재진은 이 영상을 찍은 아랫집을 찾아가봤습니다.

[주모씨/아랫집 : 우린 정말 분해서 잠을 못 잤거든요. 정말 막 완전히 제가 죽기 직전이었어요. 밥도 못 먹고.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 나는데….]

제보자 부부에 따르면 윗집의 소음이 심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봄이었습니다. 처음엔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거나 집을 뛰어다니는 듯한 소리가 전부였지만, 아랫집이 관리사무소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수록 오히려 윗집 소음은 더 크고 다양해졌다고 합니다.

[주모씨/아랫집 : 오죽하면 나중에 (관리실 직원에게) '아저씨 도대체 가서 뭐라고 했길래 저 위층이 더 난리냐' 내가 이런 말까지 했다니까.]

윗집과의 감정만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는 상황.

[관리사무소 직원 : 밑에 집에서 시끄럽다고 하니까 얘기는 또 해줬는데 (윗집은) 했어도 안 했다 그러고 이런 식이죠.]

아랫집 남편 김씨는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캠코더를 들고 나섰습니다.

[김모씨/아랫집 : 갑갑했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방법도 모르고, 순서도 모르고. 실제 그렇게 (촬영)해 본 사람도 없었고요.]

김씨 부부는 윗집의 모습을 처음 본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주모씨/아랫집 : 저 그냥 주저앉았어요. 어머 일 났구나.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위층에서 이렇게 악의적인 마음을 가졌다는 게 너무 소름 끼쳐서.]

이때부터 김씨 부부에게 층간소음은 매일 밤 찾아오는 고문의 시간이었습니다.

[주모씨/아랫집 : 공을 튀긴다거나, 아령으로 바닥을 친다거나. 그렇게 하면 자기네들은 자면 그만이지만, 아래층 사람들은 그 시간부터 잠을 못 자요.]

결국 윗집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김씨 부부.

8개월의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은 지난달 10일 윗집이 아랫집에 2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김영진/대전지법 공보판사 : 공동주택 거주자들이 참아야 할 한도를 넘어서는 소음이라고 인정될 때에는 위층 거주자는 아래층 거주자에게 손해배상 판결을 질 수도 있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하지만 소송에서 이겼다는 안도감도 잠시뿐.

[김모씨/아랫집 : '백만매택 천만매린'이라고. 이웃 잘 만나는 것이 좋은 집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거.]

층간 소음으로 김씨 부부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이모씨/층간소음 피해 호소 : 보통 집이라고 하면 사람이 밖에서 생활하고 들어가서 편하게 쉬는 공간이잖아요. 근데 집이 더 불편해요. 집에 있으면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펑펑 날 정도로.]

집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윗집 소음에 시달린 이후부터 카페를 내 집 삼아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모씨/층간소음 피해 호소 : 다세대 살면서 밤늦은 시간까지 애가 뛰는데 내버려두는 게 잘못 아니냐고 했더니 그러면 저보고 '다세대주택 살 자격이 없다'면서 저보고 이사하래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이모씨/층간소음 피해 호소 : '오셔서 중재 좀 해주면 안 되느냐' 이랬더니 자기들은 층간소음 같은 건 취급을 안 한대요. 사건이 터지면 간대요.]

결국 집을 팔려고 내놓은 이씨. 층간소음은 이제 마음속에 두려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모씨/층간소음 피해 호소 : (누군가 저에게) 공짜로 관리비도 내주고 살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에 위에 집이 시끄럽다. 그러면 안 가요. 저는 진짜….]

수년에 걸쳐 층간소음에 시달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층간소음으로 발생한 방화나 살인사건도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모씨 : 아래층에서 올라갔을 때는 한 번 화가 나서 올라가진 않았을 거란 말이죠.]

[이모씨 : 나 같아도 저렇게 했을 것 같다….]

[손모씨 : 진짜 참 극단적인 생각도 들죠.]

이들에게 윗집 사람들은 이웃사촌이 아닌 철천지원수였습니다

[김모씨 : 지금 뭐 악마하고 산 것 같아요. 위층에 누가 있는데, 그게 굉장히 불쾌한. 사라졌으면 좋을 정도로.]


[앵커]

네,윗집에서 하이힐을 신고 돌아다니고, 아령을 굴리고 그러면 아랫집이 얼마나 시끄러울까 싶은데 문제는 지금 앞에서 본 것처럼 소송을 해도 별로 얻는 게 없다면서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방금 전 사례처럼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이상 소송을 하기도 쉽지 않고,승소는 더욱 어려운데요. 실제로 저희가 최근 4년간 판결을 찾아본 결과 배상까지 이어진 건 단 2건에 불과했습니다.

[앵커]

말로 해도 안 되고 소송을 가도 별로 얻는게 없고 그러다보니까 이렇게 극단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자]

네, 실제로 층간소음이 원인이 된 살인이나 방화 같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극단적인 사례였던 지난 해 서울 면목동 살인사건 현장을 취재진이 다시 가봤습니다. 함께 보시죠.

하이힐을 신은 채 거실을 걸어 다니고, 농구 드리블하듯 공을 튀기거나 밥상을 끌고 다닐 경우. 이렇게 발생하는 소음들이 아랫집에는 얼마나 크게 전달될까? 층간소음 체험실에서 재현해봤습니다.

먼저 발을 구르거나 뛸 경우 50데시벨이 넘습니다. 하이힐을 신고 걸으면, 바깥에서 듣는 구두소리가 아랫집에서도 들립니다. 골프공이나 축구공을 바닥에 튀길 때는 60데시벨. 가벼운 가구를 옮길 때도 70데시벨에 달하는 불쾌한 소음이 아랫집에 전달됩니다. 이런 소음이 지속되면 신체적인 고통은 물론, 자신도 모르게 공격적인 성향이 표출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오재국/이비인후과 전문의 : (소음이) 감정 중추를 자극하게 되면 이런 것들이 분노 조절 장애라든가 감정을 전혀 조정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되게 되고 이런 것들이 뇌의 기질들을 자극하면서 우울증까지 올 수 있게 됩니다.]

지난해 설 연휴기간 서울 면목동에서 층간소음 때문에 벌어진 살인사건이 이 같은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아래층 김모씨가 명절을 맞아 부모님을 방문한 윗집 형제와 시끄럽게 했다는 이유로 다투다가 흉기를 휘둘러 둘 다 살해한 겁니다. 내내 괴로워하던 아버지마저 얼마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고 뒤 윗집과 아랫집은 어떻게 됐을까. 취재진은 현장을 찾아가봤습니다. 두 가족 모두 집을 떠났습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선 층간소음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입니다.

[이웃주민 : 뻔하잖아요. 두 집이 온전하겠습니까.]

[이웃주민 : 다들 얘기를 다 안 하니까. 그걸 들추면 안 좋으니까.]

두 아들과 남편까지 잃게 된 피해자의 근황을 알고 있다는 이웃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박씨 이웃 : 층간 소음이요? 아유 그 사람 정신병 치료 받고 얼마나 힘들게 했는데 생각을 해 봐요. 혼자 남아있는데. 사람들이 뭐라고 인사도 못 하게 해요. 안 됐다, 그것도 절대 못 하게 해요.]

아랫집 사람은 무기징역이 확정돼 경북 청송의 교도소에 수감돼 있습니다. 취재진은 윗집을 파멸로 몰고 간 아랫집 가해자의 심경을 들어보기 위해 면회를 신청했지만
교도소측은 그가 거부했다고 밝혔습니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과 교수 : 신체를 막 자극하는 저주파 소음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아주 스트레스 열 받게 만든다는 거죠. 막 그냥 죽이고 싶은 아니면 살리고, 이런 이상한 생각까지 치달을 수 있는...]

면목동 사건을 겪으며 우리 사회에 층간소음으로 인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지난 14일 서울 상도동에서도 층간소음을 이유로 윗집에 흉기를 휘두르는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아랫집에서 살던 권모씨가 흉기를 옷에 숨긴 채 윗집 문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허모씨 : (흉기가) 여기로 왔어요. 여기로 가다가 본능적으로 뒤로 목을 젖히는 바람에 한 치 앞을 찔렸어요.]

층간소음이라는 건 정말 억울하다고 주장합니다.

[허모씨 : 저는 여기 살면서 발뒤꿈치도 들고 다녔어요. 조심조심. 그런데도 층간소음이라고 하니까 지금 생각으론 걸어 다니면 안 되고 날아다녀야 해요.]

경찰 수사에선 또다른 요인도 지목됐습니다.

[경찰관계자 : 우리가 봤을때 신경적으로 좀 예민하다 부모도 그렇고. (키가) 173cm 정도인데 몸무게가 48kg이에요 남자가.]

취재진은 아랫집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권씨 부모는 윗집에 보내는 편지로 마음을 대신 전했습니다.

'잘못된 행동을 한 아이의 부모로서 한없이 죄송할 뿐'이라고 사과한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웃 간의 감정 싸움이 누적된 경우가 특히 위험하다고 분석합니다. 층간소음이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손석한/정신건강의학 전문의 : 어쩔 수 없이 층간소음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결국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혹은 '나를 무시하기 때문에' 소음을 냈다는 판단이 들면 그것이 곧 피해의식으로 발전하는 거죠. 그런 피해의식이 결국 분노로 발전해서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층간 소음 시비가 한 번 벌어지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이유입니다. 윗집에서 소음이 날때마다 막대기로 천장을 때려 아예 구멍이 뚫렸다는 백모씨는 소음이 줄었지만 여전히 고통을 호소합니다.

[백모씨/경기도 남양주시 :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그 사람들은 나보고 별나다, 그러고 한 번 바꿔서 생활해보고 싶더라고요. 오죽하면.'

위층 사람들도 답답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모씨/경기도 남양주시 : 청소기요, 3일에 한 번 돌려요. 많이 돌리면 이틀에 한 번 이구요. 그 아줌마 때문에... 모든 행동이 그 아줌마한테 맞춰있어요.]

상황이 나빠지면 소송을 생각하지만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이주헌 변호사/이웃 분쟁 전문 : '내가 이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걸 입증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피해를 받더라도 소송으로써 해결하기 힘든….]

취재진은 극심한 층간소음 분쟁의 상당수가 사소한 갈등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소송까지 갔던 대전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주모씨/아랫집 : 위층에서 (이불을) 털 때 우리가 싫다는 말을 했어요. 그래서 내가 한 번 베란다 문을 쳐다보며 '아저씨, 여기 거실 정문인데 거실에 대고 털면 되느냐'고. 근데 그거 때문에 감정이 상했는지]

여기에 누수 문제까지 겹치며 갈등의 골은 깊어졌습니다.

[이모씨/윗집 : 처음부터 층간소음이 아니고 감정싸움이거든요? 누수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고….]

윗집은 고의적으로 소음을 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오죽 화가 났으면 그랬겠느냐며 자신들도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모씨/윗집 : 신랑 회사에다 전화해서 그런 직원이 회사에 다니면…. 한 번도 아니고 지점에서나 본사에서나 회사 쫓아오고.]

이쯤되면 층간 소음 문제는 몇 데시벨이냐 하는 차원을 넘어서게 됩니다.

[차상곤/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 : 층간소음이라는 것이 감정문제에 접어들다 보면 이것이 끝나도 끝나는 게 아니에요. 감정이라는 게 얽매여 있다 보니까 소리에 대해서 이 오해는 풀렸지만 남아있는 응어리라는 건….]

따라서 층간 소음 분쟁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당사자들이 직접 해결하는 것보다 관련 기관 등 제3자의 도움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차상곤/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 : 하나의 층간소음 문화를 만들어줘야 됩니다. 이 아파트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뛰어서는 안된다 이런 설명회를 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자치조직을 만들어서...]

궁극적으로는 단절된 우리의 이웃 관계를 복원해가려는 사회적인 노력이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손석한/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 서로 단절된 이웃 간의 교류가 적어지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거죠. 완전히 남남처럼 취급하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정말로 공격한다고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앵커]

층간 소음. 이제 더 이상 이웃간의 분쟁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그리고 또 위험한 사회 문제가 돼 버렸습니다. 우리 사회가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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