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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6회] "한국 바닥 봤다", 중국인 저가 관광

입력 2014-03-23 23:12 수정 2014-05-3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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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중국 관광객의 숫자가 사상 처음으로 일본관광객 수를 앞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 한국을 다녀간 중국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다시는 오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한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흔들리는 한국 관광의 현실, 탐사플러스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화창한 서울의 봄날 오후. 중국인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이들이 내린 곳은 서울의 대형백화점 내 면세점. 첫날이어서인지 모두들 설레는 모습입니다. 평소 좋아하던 한류 스타의 얼굴도 확인하고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한 상품 목록도 꼼꼼히 챙깁니다.

그런데 면세점 화장품 코너를 잠시 둘러보는가 싶더니 한 시간도 안 돼 나오는 관광객들. "뭐 마실 거예요?" 잠시 뒤, 서울 시내를 달려 관광버스가 도착한 곳은 서울의 한 건강식품 판매점입니다. 중국 관광객들은 건물 지하에 마련된 매장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점원은 제품 홍보에 열을 올립니다. 한 마디로 '만병통치약'이라는 설명.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집니다. 가격은 얼마일까? 약 백 만원돈입니다. 비슷한 상품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절반도 안 되는 가격. 이번이 아니면 살 수 없다며 구입을 강권합니다.

[건강식품 판매원 : 드셔보세요. 정말 효과가 확실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나요?) 그럼요. 드셔보세요.정말 효과가 확실합니다.]

가이드 말은 온통 제품 설명 뿐입니다.

[관광가이드 : 뭐든지 믿고 먹으면 효과가 있는 거고 안 믿으면 효과가 없는 거예요.]

다시 찾은 곳도 역시 비슷한 건강식품점입니다. 이곳에서도 아리송한 제품 설명은 계속됩니다.

[건강식품 판매원 : 2시간 전에 000캡슐을 넣었는데 2시간이 지나니 (콜라) 첨가물이 완전히 가라앉았습니다. 술 드시자마자 000 2알을 드시면 술이 해독되는 효과를….]

콜라에 있는 카라멜하고 같이 반응해 침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헛개수가 가지고 있는 알코올성 간손상의 기능을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덧 해는 넘어가고.

[관광 가이드 : 도착했습니다.]

[중국인 관광객 : (남산타워는) 안 올라가나요?]

[관광 가이드 : 지금은 공사중이어서 안 돼요.]

그러나 이날 남산타워는 정상 운영 중이었습니다. 일행이 하루를 마감하며 들른 곳. 남산 초입에 위치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입니다. 가이드는 처음으로 한국의 역사에 대해 말문을 엽니다.

[관광 가이드 : 안중근이 누구냐면 중국 동북3성에서 일본군에 대항해 도시락 폭탄을 만든 사람입니다. 일본 관원들이 부임하는 것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도시락 폭탄을….]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헷갈렸나 보다, 생각하는 순간, 더 어이없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관광 가이드 : 사실 안중근 이런 사람들은 요즘으로 말하면 조선족입니다. 식민지 시절에 생존을 위해 또는 항일 운동을 위해 넘어간 사람들입니다.]

항일 독립투사를 중국인으로 뒤바꾸려는 중국의 역사관을 그대로 얘기한 겁니다. 어느덧 어두워진 밤. 숙소로 돌아가는 관광객들은 온통 쇼핑 얘기뿐입니다. 보고 들은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관광버스는 이미 쇼핑백들로 꽉 찼습니다. 서울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가고. 자정이 다 된 시간. 경기도 시흥에 있는 숙소를 찾아갑니다. 면세점에 명동과 남대문, 그리고 건강식품점까지. 몸은 지칠대로 지치고 양손은 쇼핑백들로 무겁습니다. 5천 년 역사와 문화, 한류, 눈부신 경제 발전. 이들에겐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었던 하루였습니다.

[앵커]

임진택 기자, 취재한 영상을 보니까 창피스럽고 황당하고 그런데, 우리나라에 보여줄 게 참 많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황당한 일이 계속 되고 있는 겁니까?

[기자>]

네. 기본적으로 중국 정부가 상품 구성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쪽으로 넘겨주는데요. 이 과정에서 극심한 경쟁이 생기다보니 우리나라 여행사가 손해를 보면서 영업을 하고 있던 겁니다. 이 손해는 상품 강매를 통한 이익으로 바뀌는 그런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앵커]

네, 취재 영상이 상당히 좋은데 잠입취재를 하려다 보면 상당히 어려웠을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기자]

네. 그렇습니다. 중국관광객들이 왜 이렇게 실망을 하는지 저희가 서울과 제주 일정을 함께 하면서 그 현장을 직접 취재했습니다. 그 내용을 함께 보시죠.

중국 최고의 커뮤니티 사이트. 한국을 다녀간 한 네티즌이 최근 올린 글이 화제입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제목이 '한국으로 단체관광 가실 분들은 주의하세요. 제 글을 안 보시면 5일 동안 후회하십니다' 이런…."

'한국 관광 주의보' 어떤 내용인지 꼼꼼히 뜯어봤습니다.

1. 관광지는 모두 상품 강매?
"관광지들이 따지고 보면 다 강매하는 곳들이다."

2. 숙박, 음식 엉망?
"숙소가 굉장히 멀고 먹을 것도 저렴하고 싸구려 음식으로 시켜줬다. 침대 시트가 더러웠고 굉장히 어두웠다."

3. 면세점이 훨씬 싸다?
"면세점에서 물품을 사는 게 가이드가 데리고 간 쇼핑센터보다 훨씬 싸다."

취재팀은 실상 파악을 위해 실제 중국 관광객들과 하루 일정을 함께해보기로 했습니다. 관광 둘째 날. 첫 코스는 제주도의 명소 성산 일출봉입니다. 중국인들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관광객들만 화장실로 향할 뿐 대부분은 버스 주변을 떠나지 않습니다. 관광객의 개인 행동을 꺼리는 눈칩니다. 채 10여 분도 되지 않아 관광버스는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10만 년 전 바다속에서 폭발한 희귀한 볼거리, 성산일출봉. 이들에겐 휴게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버스는 민속 마을을 그대로 지나치더니 점심 식사 장소에서 멈춥니다. 오늘의 메뉴는 고추장 삼겹살. 제주도의 대표 먹거리인 해물 뚝배기나 은갈치 조림, 흙돼지 구이 등은 일정표 식단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물었습니다.

[중국 관광객 : (여행상품 구입 가격이 얼마였어요?) 850위안(약 14만 원)이요. (850위안이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싸죠? 농담 아니에요?) 절대 농담 아니에요. 비행기표 값도 안 되는 돈이죠.]

말로만 듣던 이른바 '역마진 관광'이었습니다. 이제 이틀째인데 중국인들은 이미 쇼핑에 지쳐 있었습니다.

[중국 관광객 : (좀 특별한 곳은 안 가셨나요?) 네 안갔어요. 4일 동안 있다가 가는 거니까요. 네. 온갖 이상한 면세점 같은 곳을 갔어요.]

식사를 마친 일행은 성읍 민속촌으로 향했습니다. 한국인 가이드는 돌하루방의 현지 풍습이라며 이런저런 설명을 합니다.

[관광 가이드 : 아들 낳고 싶으면 코를 만지고 예쁜 공주 낳고 싶으면 입을 만지고 장수하고 싶으면 귀를 만지고 부자가 되고 싶으면 배를 만지고….]

이제 본격적으로 제품 판매에 나설 시간. 먼저 꿀입니다. 다음은 말뼈 분말. 오미자도 빠지지 않습니다. 묶어 팔기와 끼워 팔기도 많습니다. 선뜻 구매에 나서지 않자 중국인 가이드도 거듭니다. 무심코 나온 가이드의 혼잣말. 속마음이 묻어납니다.

[관광 가이드 : 젊은 아이가 계속 사진만 찍고, 위험해가지고….]

다음 행선지는 시내 쇼핑센터입니다. 한국의 역사 문화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던 가이드가 한마디를 합니다.

[관광 가이드 : 한국은 예전에 중국의 속국이었죠. 그래서 한국 문물에는 중국 문화 영향을 많이 받은 흔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벌꿀 매장에 발길을 멈춘 중국인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챕니다. 바가지 가격은 불과 1시간 만에 들통이 났습니다.

[앵커]

보니까 낯뜨거운 장면이 계속 나오는데 이런 행태가 계속되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정부,중국정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기자]

네, 지난해 10월 중국 정부에서는 자국민에 대한 저가 상품판매를 막는 그런 법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앞서 보신 것처럼 실질적으로 효과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저희가 또 취재했습니다.

지난 10일. 충남도청에 20여 명의 중국인들이 도착했습니다. 심양, 대련, 요령 등에서 온 정부와 언론 관계자들입니다.

"저희는 지금 이곳에서 초청을 받아 한중 관광협력 세미나를 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충남도가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마련한 자립니다. 중국도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문화 자원이 많은 한국에 관심이 높습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의 숫자는 무려 327만 명. 5년 뒤에는 약 1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중국인 방문객 숫자가 일본인 숫자를 추월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자체의 기대와 현실은 달랐습니다. 터무니없이 싼 여행 상품에 바가지 요금은 여전했습니다. 이달 초 한국 관광을 다녀온 중국 대학생 짱난을 베이징의 기숙사에서 만났습니다. 5박 6일의 일정은 실망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짱난 : 이 물건이 사고 나서 제가 정말 후회한 물건입니다. 말 뼈 가루입니다. (얼마죠?) 60만 원입니다. (60만 원이요?) 네 60만 원이요. 5000위안(87만 원)이 넘는 돈을 썼어요.]

짱난은 아직도 물건을 파는 데만 혈안이 된 가이드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짱난 : 잠든 아기를 안고 있는 아줌마에게 차에서 내려라. 반드시 가게에 들어가라고 했어요. 이 여행 상품의 본색을 드러낸 순간이었다고….]

한국의 이미지를 망치는 무자격 가이드의 실태도 심각합니다. 사실 왜곡 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은근한 비하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관광 가이드 : 중국인은 스스로 용의 후예라고 여기죠? 하지만 한국인은 자기들을 곰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흑곰.]

흑곰. 중국어 사전에 따르면 흑곰은 겁쟁이나 변변치 않은 사람을 이릅니다. 관할 당국은 이런 상황을 알까? 중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쇼핑을 강제하는 저가 해외여행 상품으로 인한 자국민 피해를 막기 위해 여유법을 시행했습니다. 서울시는 이 법으로 국내 저가 여행이 근절된 것처럼 홍보했습니다.

[채효옥/서울시 관광상품개발팀장 : 강제쇼핑은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어요. 여유법 자체가. 그러니까 이 사람들(여행사)의 그것(강제쇼핑)은 거의 완전히, 거의 다 사라졌어요. (그럼 지금 최근 상황은?) 저희가 조사한 게 없고요. 지난 11월에 조사한 바로는….]

하지만 중국 현지에서는 법 시행 몇 달 만에 각종 편법이 생겼습니다.

[중국 관광객 : 저희가 오기 전에 계약서를 썼어요. '자발적으로 쇼핑을 하고 싶다'는 의향서를 썼어요. 저희가 쓰겠다고 한 게 아니라….]

우리 정부는 관광 상품의 고급화를 해법으로 내놓습니다.

[박병우/문화체육관광부 국제관광과장 : 우리나라에서도 더 많은 돈을 쓰고 가실 수 있도록 특별히 의료관광이나 한류관광 그리고 카지노를 비롯한 레저관광….]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좀 다릅니다.

[이훈/한양대 관광학부 교수 : 전통문화를 체험한다든지 공연을 보면서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든지. 한국문화의 매력들을 높여 놓아야 …]

큰 기대를 갖고 처음 한국을 찾은 짱난은 이번 여행이 크게 실망스러웠습니다.

[짱난 : 제주도는 바다가 있잖아요. 그 아름다운 바다를 한 번도 안 데려 갔어요. 갈 시간도 안 줬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짱난 : 저희 일행들은 돌아오면서 다 그 얘기를 했어요. 앞으로 별 일 없으면 절대로 한국에 다시 가지 않을 거라고. 볼 것도 없었고.]

[앵커]

네. 우리 경제에 큰 활력이 될 수 있는 중국의 관광 수요를 계속해서 끌어내기 위해서 지금부터 장기적 안목으로 계획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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