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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이브] "16세기 함경도 주민 '국적 포기' 많아"

입력 2014-03-04 13:11 수정 2014-03-0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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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JTBC 정관용 라이브 (11:40-12:55)
■진행 : 정관용 교수
■출연진 : 한명기 교수

◇정관용-최근 안현수 선수 빅토르 안 선수 때문에 귀화 문제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죠. 그런데 저희가 통계를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 지난해에만 하루 평균 55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입니다. 저출산에다가 국적 포기까지 인구 감소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죠. 그런데 역사 속에서도 이렇게 국적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는 사례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해서 오늘 역사 라이브 시간을 통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명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 나오셨어요. 어서 오십시오.


◆한명기-안녕하십니까?

◇정관용-하루 평균 55명이라는 숫자에 놀라셨어요? 저는 상당히 놀랐거든요.

◆한명기-저는 처음 들었습니다. 1989년에 여행 자유화가 시작되면서 외국으로 국적을 바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하루에 55명이라는 얘기는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정관용-그렇죠. 이 정도 될 줄은 정말 저도 예상을 못했어요.

◆한명기-1980년대 중반 이후로 치면 50만 이상이 사실 국적을 포기했다는 통계가 있다고 합니다.

◇정관용-그리고 조금 더 내용을 뜯어보니까 우리나라에서 국적을 버리고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미국, 일본, 캐나다, 뉴질랜드 이런 이른바 선진국으로 가요. 그런데 반대로 외국 분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국적을 갖게 되는 경우 있잖아요. 그분들은 중국 동포들이 제일 많고 그다음에 베트남, 필리핀 이런 분들. 결혼 이민이나 이런 분들 많고 이것도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시지 않습니까?

◆한명기-아무래도 한국이 좀 좋다고 생각하는 중국 동포분들이나 필리핀, 베트남 분들은 이제 한국으로 귀화를 하시고 국적을 옮기셨는데 사실은 요즘은 추세가 줄어들고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 한국인 중에서 국적을 포기하는 숫자는 늘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으로 귀화하는 사람의 수는 줄고 있다, 이런 통계가 있어요.

◇정관용-그만큼 우리를 떠나서 선진국으로 가는 분들. 그리고 여기가 살기 어려우니까 좀 기회를 찾아서 이렇게 봐야 할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한명기-아무래도 여러 조건이 있겠지만 아까 조금 전 뉴스에서 생활고나 문제 때문에 자살하시는 분들 말씀이 나왔는데 아무래도 자기 나라 국적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간다고 하는 것은 뭔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뭔가 아쉬움 때문에 그런 이유가 우선 크다고 봐야겠습니다.

◇정관용-그런데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그런 사례들이 많다면서요? 살기 힘들어 다른 데로 떠난다, 이런 사람들.

◆한명기-조선 시대의 경우를 보면 16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1560년대, 70년대의 기록을 보면 함경도나 평안도의 북방지역에 사는 사람 중에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가서 당시에 여진지역으로 귀순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정관용-그래요, 왜 거기로 갔죠?

◆한명기-여러 가지 사연이 있겠습니다마는 대체로 당시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함경도나 평안도의 변방지대는 농토도 좁고 토질도 척박해서 우선 농사를 지어서는 먹고살기 힘듭니다. 그래서 농업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생계를 꾸려야 되는데 대표적인 게 뭐냐 하면 산에 가서 산삼을 채취한다든지 아니면 짐승을 잡아서 그 가죽인 모피를 얻어서 판매해서 먹고살아야 하는데 문제는 이 산삼을 쾌거나 사냥을 통해서 짐승을 잡는 사람들에 대한 지방관들의 수탈. 그리고 거기에 대한 세금, 이런저런 학대가 상당히 크니까 심지어는 어떤 사람들은 산에 산삼을 찾았는데 산삼을 캐서 내려서 가면 산삼 캐는 것보다 더 많은 수탈이 다가오니까 그럴 바에 아예 여기 산삼이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포기하고 내려가고.

◇정관용-그 정도예요?

◆한명기-그런 문제가 생기니까. 오히려 그런 일이 생기니까 어떤 문제가 생기냐 하면 여진족들이 조선족 지역으로 넘어가면 산삼이 오히려 많다, 그래서 조선 사람들이 캐지 않고 포기한 산삼을 여진족들이 몰래 강을 건너와서 캐가다가 양쪽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생기거나 하는 그런 문제도 설명이 되고 있는데 바로 그런 조건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여진 쪽으로 넘어가는 거죠.

◇정관용-산삼을 캐면 산삼보다 더 많은 돈을 갖다 바쳐야 된다? 상상이 안 돼요. 그냥 산삼을 갖다 바치는 게 더 나은가요?

◆한명기-중앙정권의 고위 관료라든지 부자들 가운데는 산삼에 대한 수요가 많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이게 수작업으로 채취를 하다 보니까 요구하는 것만큼 물량을 못 대죠. 그러니까 산삼 캐는 심마니들한테 이런저런 부담이 너무 큰 거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그럴 바에 아예 이거 포기한다, 그래서 워낙 지방관들의 부담을 의식을 하니까 유몽인이라는 사람이 뭐라고 얘기를 했냐하면 오히려 그런 부담 때문에 아들이 태어나면 국방부담도 크고 또 관리들한테 시달리니까 평안도나 함경도의 오지에서는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죽여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사람이 쓴 표현을 보면 아침에 어떤 집에서 애 우는 소리가 들려서 출산이 이루어진 줄 알았는데 저녁때면 상당히 조용해진다,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인륜, 천륜을 무시하면서까지 애를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정관용-그게 1560년경에 기록들이라고 하셨는데 이때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있기 전이라는 말이에요. 임진왜란이나 이런 시절은 어땠습니까?

◆한명기-그러니까 전쟁 같은 큰 격변이 일어나면 평화로울 때에는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의외의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니까 왜란 중에도 뜻밖에 일본인들한테 붙어서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물론 그들 중에는 애초부터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이전에 조선의 정치에서 뭔가 문제의식을 느끼고 피해를 본 사람들이 적군이 들어왔을 때 거기에 붙는 케이스가 있는 거죠. 또 아주 극단적인 예는 현대 한국인들은 매국노 그러면 대체로 이완용을 연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면 당시 지식인이나 관료들에게 제일 문제가 많은 매국노가 누구냐 그러면 이제 서슴지 않고 국경인이라는 인물을 예를 듭니다.

◇정관용-국경인?

◆한명기-이름이 특이하죠? 그런데 이 사람은 함경도 회령으로 왜란 당시 귀양 와 있던 인물인데 이 인물이 1592년에 가토 기요마사라는 일본군이 함경도로 들어왔을 때 당시 함경도에 들어와 있던 왕자 임해군하고 수나군을 붙잡아서 일본군에게 넘겨버립니다.

◇정관용-왕자들을?

◆한명기-우리가 기존의 알고 있기에는 그냥 왕자 임해군과 수나군이 일본군에게 애초부터 포로가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일본군이 잡은 게 아니라 이 지역에 귀양 와 있던 사람이 잡아 넘긴 거죠.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아무래도 왕좌다 보니까 구중궁궐에서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호의호식하다가 전쟁 중에 변방으로 가다 보니까 먹을 거라든지 잠자리 같은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그런 불만을 다 주변에 하층민들에게 민폐로 전가를 했고 그러다 보니까 민심이 사나워지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 바로 그런 어떤 상당히 매국적인 그런 행동을 드러내는 것이죠.

◇정관용-결국, 그러니까 나라가 살기 힘들어지고 특히 왕이 됐던 지방관리가 됐던 폭정과 학정을 하고 못 견뎌서 떠나는 거군요.

◆한명기-그러니까 아무래도 자기 나라에서 뭔가 피해를 보고 상처를 받았던 것이 결국 이제 국적을 포기하는 상태까지 이끌게 되는 거겠죠.

◇정관용-그런데 이게 우리뿐만 아니라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로 넘어가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청으로의 이른바 귀화 이런 게 있었다는 사례가 있더라고요?

◆한명기-그러니까 이게 역사 속에서 불가사의 중의 하나가 사실은 상식적인 기준으로 놓고 보면 명나라가 청나라에 망한다고 하는 건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정관용-왜요?

◆한명기-왜 그러냐 하면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반의 명나라의 한족 인구는 대략 1억 5,000만을 넘습니다, 이미. 그때 당시 청나라의 만주족 인구는 대략 150만에서 200만 정도 사이거든요.

◇정관용-100분의 1이네요.

◆한명기-그렇습니다. 인구비율로 보면 100분의 1인데 그렇게 100배나 인구가 많은 명나라가 그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청나라에 망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무렵에 굉장히 많은 고위관료나 지방의 군사지휘관들이 바로 이 청나라 쪽으로 귀순한 거 하고 상당히 관계가 있죠. 명나라는 16세기 중반 무렵에 오면 조선과 마찬가지로 몽골과 접경하고 있던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이 지방관리들의 학정이나 세금 수탈을 견디지 못하고 무리를 지어서 몽골지역으로 넘어가서 아예 판승이라고 불리는 집단 거주지를 만들어서 거기서 살았던 경험이 있거든요.

◇정관용-집단이주로군요.

◆한명기-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집단 이주한 사람들을 통해서 내부 정보라든지 새로운 기술 같은 게 당연히 몽골 쪽으로 넘어가게 되니까 이게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 추세가 아주 결정적으로 되는 것이 17세기 초에 이번에는 이제 만주지역의 지휘관이라든가 뭔가 명 조정으로부터 문제가 있었던 고위관료들이 바로 만주 쪽으로 대거 귀순을 하는데 그냥 가는 게 아니라 휘하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가거나 아니면 최신무기를 가져가거나 또 어떤 굉장히 중요한 국가정보를 가져가니까 이게 이제 소수민족인 청나라에는 굉장히 중요한 명을 칠 수 있는 일종의 무기가 되는 셈이죠.

◇정관용-그때 그럼 명의 왕조가 그만큼 폭정과 학정을 했습니까?

◆한명기-그러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예를 들어서 당시 만주지역을 지키던 지휘관들은 뜻밖에 조정으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죠. 재정이 시원찮아서 지원을 안 해주고. 지원군을 보내주는 것도 아니고 충분한 군량이나 군수물자를 대주는 것도 아닌데 일단 지휘관이 폐하기만 하면 그 지휘관은 무조건 참수를 한다든지 해서 아주 극단적으로 처벌을 하죠. 그런데 이런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은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그것은 청으로 귀순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데 아무래도 귀순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지역에서 뭔가 대접을 받으려면 그쪽에서 요구하는 무언가를 가져가야 되니까 무기를 빼간다든지 정보를 갖다 바친다든지 바로 그런 현상이 부메랑이 돼서 다시 명을 치는 흉기로 작동하게 되는 겁니다.

◇정관용-그러니까 아무런 지원도 보내지 않으면서 무조건 지켜라, 지면 죽인다. 이 얘기는 나가라고 떠민 거네요?

◆한명기-그러니까 전혀 퇴로를 마련해주지 않은 상태의 엄벌주의라고 하는 것이 결국 변방의 지휘관들 상당수를 절망케 했던 것이죠.

◇정관용-그렇게 넘어가면 만주족들은 극진히 대접을 했습니까?

◆한명기-이번에도 비유가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빅토르 안이 금메달을 3개나 따니까 푸틴 대통령까지 나서서 엄청난 포상을 했다고 하는데.

◇정관용-자동차에 아파트에 다 줬다고 해요.

◆한명기-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 당시 조선을 침략했던 청나라 황제의 태종이라는 사람의 경우에는 1633년에 명나라 장수 공유덕이라고 하는 인물이 귀순을 해 왔는데 이 친구는 그냥 온 게 아니라 당시 청나라는 전혀 갖고 있지 못했던 병선 수백 척하고 거기에 수군을 싣고 왔거든요. 그러니까 육군 전력은 엄청나게 이미 셌는데 거기 수군까지 갖게 되니까 홍타이치 태종황제는 굉장히 고무된 겁니다. 그래서 이 공유덕이라는 인물에게 뭐라고 약속을 했냐하면 어떤 큰 죄를 지어도 무조건 사면해 준다. 그리고 자손들에게 부귀영화를 계속 상속 지켜준다, 그래서 심양에 어마어마한 저택을 지어주고 또 하나 놀라운 건 데리고 온 명나라 병사들을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재량권까지 주죠. 그러니까 공유덕이 보기에는 가혹하고 엄벌주의에 빠져 있는 명나라 현실에 비하면 청나라는 상대적으로 그야말로 자유롭고 천국으로 다가온 거죠. 그런 공유덕 이후에는 점점 그런 사람들이 숫자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조건입니다.

◇정관용-명나라의 사례를 보니까 자칫하면 그러다가 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드네요.

◆한명기-망했다고 볼 수 있겠죠.

◇정관용-오늘의 우리 현실 하루 평균 55명이 국적을 포기한다, 이걸 가지고 우리가 나라 망할 걱정까지 해야 되는 겁니까?

◆한명기-그 정도는 되면 안 되겠습니다마는 좀 우리가 심각하게 고려해 볼 그런 수치라고 봅니다.

◇정관용-우리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되면 사실 안 갈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숙제죠. 역사적 교훈을 얻었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한명기-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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