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꼭 20년 전 오늘(21일) 서울 성수대교가 무너져내렸습니다. 오늘은 붕괴사고 20주년을 맞아 성수대교 북단 위령탑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제가 열렸습니다. 20년 전처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유가족 2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1979년에 세워진 성수대교는 성장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 뒤…성수대교는 양적 성장만을 추구하던 한국사회가 한순간에 퇴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상징물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극적이게도 그 시작은 단지 몇 개의 부실한, 혹은 모자랐던 볼트였습니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너무나 비극적인 이런 인재들은 세월호까지도 모두 닮아있습니다.
서복현 기자입니다.
[기자]
1994년 10월 21일 아침, 믿기 힘든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칼로 자른 것처럼 48m의 다리 상판이 싹둑 잘려 그대로 한강에 처박혔습니다.
다리를 달리던 버스 등 차량 6대는 피할 새도 없이 추락했습니다.
사망자 32명에 부상자 17명, 희생자 가운데는 등굣길 무학여고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1979년에 세워져 성장의 상징이었던 성수대교 붕괴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비극의 시작은 구조물을 잇는 몇 개의 볼트였습니다.
제 위치에 박히지 않은 데다 억지로 끼워 넣는 바람에 헐거워져 있었고 개수도 설계도보다 적었습니다.
이음새의 용접도 엉망이었지만 사후 관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예견된 인재였던 겁니다.
하지만 당시 업체 현장소장과 서울시 공무원 등 3명에게만 실형이 선고됐을 뿐, 관련자 14명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습니다.
'안전 불감증'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성수대교 붕괴.
20년이 흘렀지만 세월호와 환풍구 사고 등 대형 참사 앞에 대한민국은 여전히 안전을 걱정하는 나라에 머물러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