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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1일…'출격 대기' 문제의 그날 짚어보니

입력 2017-08-23 22:00 수정 2017-08-24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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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부에서 전해 드린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23일) 1980년 5·18 당시 공군 전투기들이 광주 출격을 준비했다는 저희 JTBC 보도와 관련해서 특별조사를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1부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 바로 5월 21일이다. 어제하고 그제 저하고 인터뷰 했던 두 사람의 예비역 장성들은 5월 20일이나 21일을 얘기했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저희들이 여러 가지 추론을 해 본 결과 5월 21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왜 5월 21일이 그만큼 중요한 날인가 하는 것을 지금부터 이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하고 있는 유선의 기자와 함께 다시 한 번 짚어드리겠습니다.

물론 1부에서 나온 내용과 중복되는 내용이 있을지라도 그 5월 21일이 왜 중요한가 하는 것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여러분들께 정리해서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이 이후에 있을 국방부의 조사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유선의 기자, 이번 조사의 핵심이 되는 날이 5월 21일이다, 이 내용을 앞서 전해 드린 바가 있는데 이날 본격적으로 그러니까 군 투입이 이루어졌던, 그러니까 병력도 굉장히 증강이 됐던 그런 날이기도 하죠?

[기자]

육군 20사단 병력이 이날 새벽에 광주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헬기의 동원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당시 자료를 좀 보겠습니다.

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작전조치사항을 보면 5월 21일에 UH-1H 그리고 공격형 헬기인 500MD 헬기가 동원이 되는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저 UH-1H 헬기는 얼마 전에 퇴역한 헬기인데 월남전에서 가장 주력으로 쓰였던 헬기이기도 하고.

[기자]

맞습니다.

[앵커]

500MD는 그보다 조금 몸체는 작지만 공격용 헬기죠.

[기자]

경공격용 헬기로 분류가 돼 있습니다. 이 헬기들에 대해서 작전대기 명령이 내려진 것이 바로 오전 10시입니다. 그러니까 수원 제10전투비행단 조종사가 출격대기명령을 받았다, 이렇게 증언한 시간과 일치합니다.

[앵커]

그저께 저희들이 보도해 드렸습니다.

[기자]

맞습니다. 월요일에 보도한 그 조종사의 증언을 잠깐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모 씨/5·18 당시 공군 전투기 조종사 : 오전 한 10시쯤, 11시쯤 지시가 떨어져서 준비해서…준비해서 있었는데 그날 오후 한 4시, 5시 무렵 퇴근 시간 가까이 됐을 때 해제가 됐어요.]

[앵커]

그러면 이 헬기 출동과 기총사격 그리고 저희들이 지금 이틀째 보도해 드리고 있는 사실 3일째죠. 전투기 출격. 이 여러 가지 사안들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

[기자]

지금까지 나온 조종사들의 증언 그리고 어제 공개한 합참업무철 등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해 보면 상당한 유사성이 보입니다.

헬기 사격을 봤다는 목격자 진술들이 종합된 시간이 바로 오후 1시 30분에서 오후 5시 사이입니다.

[앵커]

21일.

[기자]

네, 헬기가 철수한 오후에, 오후 5시 무렵에 전투기 출격대기도 바로 이 시간에 해제가 됩니다.

[앵커]

헬기사격과 전투기 출동대기가 함께 이루어졌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얘기를 종합하면.

[기자]

그런 정황입니다.

[앵커]

그러면 21일 오후에는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가 있었던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원래 최초 사격은 21일이 아니라 그보다 하루 전인 20일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집단 발포가 있었던 것은 바로 다음 날인 21일 오후였고요.

[기자]

네.

[앵커]

그게 어떻게 기록이 돼 있습니까?

[기자]

집단 발포 그리고 조준사격이 있던 것이 그날 오후 1시로 기록이 돼 있습니다. 기록을 좀 보겠습니다.

제11특전여단 전투상보입니다. 오후 1시부터 폭도들이 계엄군을 향해 사격을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시간이 사실은 1995년 검찰 조사 결과 그리고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된 바로는 집단 발포, 조준사격이 계엄군에 의해서 있었던 것으로 확인이 된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계엄군이 사격을 해 놓고 시민을 폭도로 칭하면서 시민이 사격을 한 것으로 나와 있는 겁니다. 어쨌든 사격은 역시 21일 오후에 있었습니다.

[앵커]

저희가 1부에서 이 내용을 전해 드린 다음에 제가 잠깐 고민을 해 봤습니다. 뭐냐 하면 지금 이 화면에 나와 있는 '13시부터 폭도들 사격함' 이렇게 돼 있는데. 이거 글자 그대로 뽑아낸 겁니까?

[기자]

네, '13시부터 폭도들 사격함'. '폭도들은' '사격함'으로 지금 보이고 있는데요. 지금 글자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희가 핵심만 뽑아서 이렇게 보여드린 겁니다.

[앵커]

'폭도들은' 이렇게 돼 있으면… 왜냐하면 '폭도들 사격' 하면 '폭도들을 사격했다'는 얘기로도 해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정확한 글자를 지금 물어보는 겁니다.

[기자]

정확한 글자는 지금 여기 보기에도 '폭도들은'으로 확실히 보이고요.

[앵커]

그렇습니까?

[기자]

이 부분은 정확하게 그 당시 특검 1995년 검찰 조사 때도 계엄군이 작성한 문서인데 폭도들이 사격을 했다라고 기록이 돼 있습니다.

[앵커]

물론 폭도는 그들이 지칭한 광주시민입니다.

[기자]

맞습니다.

[앵커]

그래서 아까 이 내용은 사실 짚고 넘어가야 되는데 이게 왜곡됐거나 아니면 허위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 13시부터 집단 발포가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을 상대로 발포를 발포한 것이지, 시민들이 사격한 것은 아닙니다. 그건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죠. 그래서 이 기록이 허위거나 왜곡이다.

[기자]

네, 그럴 가능성이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서 제기가 되고 있습니다.

[앵커]

검찰 조사에서 나왔으니까요, 95년에. 우리가 지금 의문을 제기하는 그 모든 일이 5월 21일 하루에 일어났던 그런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기자]

그 상황을 조종사들의 증언 그리고 지금까지 확인된 자료들을 토대로 상황을 정리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5월 21일 상황인데요. 21일 오전 10시에 육군 헬기가 작전대기를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에 수원 그리고 사천비행단에서 출격 대기명령이 내려진 것으로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오후 1시에는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를 하고 이 시기를 전후해서 헬기 사격도 목격했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시민들이 집단 발포를 당한 다음에 일부 무장을 하기 시작하니까 계엄군이 오후 5시에 도청 앞에서 일시 철수를 하는데요. 그리고 나서 시민들이 도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에 비슷한 시간에 육군 헬기가 철수를 하게 되고 공군전투기 조종사들의 출격대기도 오후 5시를 전후해서 해제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날 육군의 움직임 그리고 육군 헬기, 공군 전투기의 대기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일자뿐 아니라 시간대까지 대체로 일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21일에 이루어진 이런 움직임들에 대한 조사가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시간들이 겹친다, 이런 얘기잖아요. 알겠습니다. 유선의 기자와 함께 잠깐 다시 한 번 정리해 봤습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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