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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외줄'에 몸 맡긴 노동자 실태, 1년 지나도…

입력 2020-11-24 21:10 수정 2020-11-24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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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줄 하나에 매달려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건물 바깥벽을 페인트로 칠하거나 보수 공사를 합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인지, 저희가 1년 전에 둘러봤을 땐 그렇지가 않았는데요. 1년 만에 다시 살펴본 지금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사고도 여전합니다.

밀착카메라 서효정 기자입니다.

[기자]

22층 아파트 벽에 사람이 보입니다.

스프레이를 들고 양옆으로 움직입니다.

아파트에 색을 칠하는 작업입니다.

옥상에서 만난 노동자.

[A씨/외벽 도색 노동자 : (오늘 바람이 좀 불길래) 오늘은 그래도 이 바람은 부는 것도 아니야.]

매듭을 묶을 곳이 없어 아파트 굴뚝에 줄을 묶었습니다.

다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주변을 살핍니다.

점검을 돕거나 지켜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각자 일을 하느라 바쁩니다.

엎드려 몸을 돌리고 한 발씩 발을 내린 뒤 줄 하나에 묶여 허공에 달린 의자에 오릅니다.

스프레이 작업을 시작합니다.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발 하나, 몸을 직접 잡아주는 줄은 없습니다.

현행법은 위급 상황을 대비해 두 줄이 필요합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엔 노동자의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구명줄을 설치하라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습니다.

[B씨/외벽 도색 노동자 : 이 줄은 절대 안 끊어져요. 이게 1톤을 견디는 무게예요.]

두 줄을 내려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일이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B씨/외벽 도색 노동자 : 그렇게 하면 일이 되게 번거로워요. 그거 또 옮기고 또 같이하고 바람 불면 꼬이고 막…]

또 다른 현장도 역시 줄이 하나뿐입니다.

생명 줄을 추가로 준비하는 시간보다, 빠른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C씨/외벽 도색 노동자 : 어제도 비 와서 못 했다고. 우린 비 오면 못 하니까.]

13년 차 노동자의 하루를 따라가 봤습니다.

작업을 준비하는 심규영 씨, 줄을 내릴 때도 안전을 체크하느라 시간이 걸립니다.

녹색줄이 안전줄입니다.

심씨도 처음부터 안전줄을 허리에 걸어 이용한 건 아닙니다.

[심규영/경력 13년 차 로프공 : (동료가) 외줄 하나 내려놓고 줄 타다가 그냥 밑으로 빠지셨어요. (그 뒤로 일을) 5개월 쉬었어요.]

오늘(24일)은 이렇게 매듭을 묶은 줄을 타고 내려가면서 환기 구멍에 환기 캡이라는 장치를 부착하는 작업입니다.

한 번 내려갔다 올라오는 데 15분 정도가 걸린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조금 더 걸린다고 합니다.

[심규영/경력 13년 차 로프공 : 시공을 잘못했나 구멍이 작더라고요. 캡이 안 들어가서 망치로 다 부수면서 내려가고 있는 거예요.]

옥상에 걸터앉아 발판을 줄에 묶고 일을 시작합니다.

발을 딛고 줄을 당겨봅니다.

고정이 잘된 것 같습니다.

망치로 구멍을 크게 만든 뒤 환기 캡을 부착하고 실리콘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렇게 10층까지 내려온 심씨, 여기서부터는 안전줄을 빼고 일합니다.

[심규영/경력 13년 차 로프공 : 제지도 없고 하다 보니까 그냥 이렇게 하는 거예요. (10층이면 그래도 높은 건데) 10층이면 떨어지면 죽죠.]

날이 저물고, 줄을 걷어 올립니다.

[심규영/경력 13년 차 로프공 : (끌어올리고 나면) 한겨울에 그냥 옷 다 벗고 싶어요. 힘들고 땀도 많이 나고.]

내일이면 끝날 일이지만, 시공이 잘못돼 있어 며칠 더 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심규영/경력 13년 차 로프공 : (그럼 이것에 대해서 돈을 더 받으세요, 혹시?) 돈 더 안 줘요. 뭐 잡혀 있는 금액이 이거다 보니까 어쩔 수 없다…]

지난해 취재진이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육해근/경력 19년 차 로프공 : (인터뷰 나가고 나서) 업계에선 좀 싸늘했죠. 줄 하나만 가져가도 힘든데 두 개 내려야 된다고, 너 때문에 더 힘들어졌다…그때 당시에만 그랬고, 1주일 2주일 지나고 나선 다시 싹 없어졌어요.]

전문가에게도 변한 게 있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정진우/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고용노동부도 잘못 적용하고 있다는 걸 좀 인정을 했고요. '장관한테도 보고하고 올해 개정하겠다' 이렇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변화는 없습니다.

[정진우/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 담당자가 바뀌면 유야무야되고…이러다 보니까 과연 산업 산재 예방 행정에 발전 전망이 있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용노동부는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답합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 법 개정 말씀하시는 거죠, 규칙 개정. 저희 지금 하려고 준비하고 있고요.]

실제 진행된 상황에 대해선 답을 돌립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 개정안 착수를 하면요, 입법 예고 같은 것 진행을 하잖아요. 그럼 그 과정에서 의견 수렴이 되죠. (그러면 지금은 일단 아무것도 안 된 상태인 거네요.) 네네.]

고용노동부는 내년 3~4월 개정을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는 사고는 계속 발생합니다.

지난 8월엔 대구에서 로프 작업을 하던 50대가, 9월엔 포항에서 외벽을 칠하던 40대가 떨어져 숨졌습니다.

이번 달에도 언론에 나온 사고만 두 건입니다.

1년 뒤 다시 와본 현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외줄에 안전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 적절한 규정을 만들고 지키는 것 외엔 타협할 지점이 없습니다.

(영상취재 : 김진광 / VJ : 최진 / 영상그래픽 : 이정신 / 인턴기자 : 황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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