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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범벅 환자가 끝없이…시민군·계엄군 구별 않고 돌봐

입력 2020-05-21 21:34

5·18 40주년 연속기획|그때 그 사진 속 그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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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0주년 연속기획|그때 그 사진 속 그들③


[앵커]

5.18 민주화운동의 사진 속 인물들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당시 광주의 병원은 다친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헌신적으로 치료에 나섰던 간호사들은 총탄이 날아오는데도 환자가 먼저였습니다.

정진명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간호과장 오경자 씨는 1980년 5월 21일 후퇴하는 계엄군의 구호 소리를 들었습니다.

잠시 뒤 병원 6층에 총탄이 날아들었습니다.

총탄 속에서 환자들을 대피시켰습니다.

[오경자/5·18 당시 조선대병원 간호과장 : 매트리스 여유분을 전부 벽에다가, 유리창에다 환자들 총 안 맞게 다 놓고…]

27일 아침 전남도청에서는 수많은 시신을 목격했습니다.

시신은 바닥에도 창가, 화단에도 있었습니다.

다친 학생들을 병원에 숨겨주기도 했습니다.

[오경자/5·18 당시 조선대병원 간호과장 : (학생들을) 층마다 내리면서 간호사들에게 빨리 옷 갈아입혀서 선생님한테 말해서 링거라도 꽂아라.]

수간호사였던 곽명자 씨는 시내에서 들린 총소리 이후 밀려든 환자들을 잊지 못합니다.

피범벅이 된 총상 환자들은 끝이 없었습니다.

[곽명자/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수간호사 : 엉덩이도 맞았고, 옆구리도 맞았고, 입도 맞았고 굉장히 다발적으로 맞아가지고 애는 죽는다 했었는데…]

치료할 공간도 부족했습니다.

[곽명자/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수간호사 : 현관에서부터 저쪽에 매트리스를 쫙 깔아놨어요. 환자 오면 바로 들어서 거기다 내리고 내리고 내리고…]

전쟁터 같은 처참한 상황이었지만, 누구도 병원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민군, 계엄군 구별하지 않고 다친 사람은 모두 돌봤습니다.

[곽명자/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수간호사 : 병원에 들어오면 환자다. 우리는 환자는 무료로 해준다, 그런 마음으로 안심을 시키고 치료를 하고…]

그날의 간호사들은 진실이 제대로 알려지길 바랐습니다

[오경자/5·18 당시 조선대병원 간호과장 : 이러한 일들을 다 알려서 역사가 바로 서게 해야 되고…]

10명의 간호사가 남긴 구술증언록은 10여 년 만에 책으로 빛을 보게 됐습니다.

또 하나의 생생한 5.18 기록입니다.

(화면제공 : 5·18기념재단·광주기독병원)
(영상그래픽 : 박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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