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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찌라시'요? 기자들도 안 믿어요"

입력 2014-04-14 10:58 수정 2014-04-14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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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찌라시'요? 기자들도 안 믿어요"

[찌라시(ちらし) : 광고를 목적으로 뿌리는 종이 전단 등을 뜻하는 일본어]

정치권이 찌라시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새누리당 선거를 총괄하고 있는 홍문종 사무총장이 검찰에 악성 찌라시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면서부터인데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찌라시는 정치권, 그리고 저 같은 기자들에게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영역(?)이 돼버렸습니다.

찌라시와 기자. 어떻게 보면 유통하는 방식만 달랐지 정보를 먹고 사는 측면에선 상통하는 부분도 있는데요. 사실 찌라시 내용의 상당수가 기자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정보 보고를 끌어다 만들어진다는 점에서도 떼어놓고 보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기자들이 수집한 정보가 찌라시의 중요한 소스(source)가 되는가 하면 가끔은 기자가 찌라시의 주인공이 돼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도 쉽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자도 찌라시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4년 전쯤 대권 후보로 본격 행보를 시작했던 유명 정치인, 그리고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식사 중에 언급됐던 내용들이 그대로 찌라시에 올라 난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 내용들이 어떻게 찌라시로 흘러 들어갔는지는 오리무중입니다.

찌라시가 만들어지는 장소 또한 여의도 국회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의도엔 국회와 금융기관 등 정보를 필요로 하는 기관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도 볼 수 있겠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회 후생관(편의시설 밀집지역) 주변의 야외 휴게실과, 밤에는 술을 팔고 낮에는 커피 등을 파는 국회 주변 노래주점 등에서 정보가 오고 간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가 불거진 이후 정보기관의 국회 출입이 어려워지면서 최근엔 장소가 더 은밀한 곳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들리네요.

찌라시는 카카오톡과 네이트온 등 SNS의 등장으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사설 정보업체에 돈을 내는 일반 기업과 기관 등에게만 제공하던 정보지들이 SNS를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전파되면서 찌라시의 영향력도 그만큼 커졌던 거죠. 하지만 이러한 무분별한 영향력이 다시 찌라시에 칼이 돼서 돌아오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탤런트 최진실 씨의 자살 사건이었습니다.

2008년 10월 고 최진실 씨가 자살을 결심하기 전 찌라시는 확인도 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퍼나르기 시작합니다. 여기엔 최진실 씨의 친한 친구였던 개그우먼 정선희 씨와 그의 남편인 고 안재환 씨의 자살과 관련된 이야기도 들어 있었습니다. 근거도 없는 소문에 괴로워했던 최 씨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되고 찌라시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찌라시에 있는 내용을 사내 게시판에 올려 소문을 확산시킨 한 직장인은 처벌을 받게 됐고,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나경원 전 의원의 주도로 '사이버 모욕'을 금지하겠다며 '이른바 최진실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찌라시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유통되는 찌라시의 양과 내용이 모두 현저하게 줄어들게 됐던 거죠. 하루에도 몇 건의 찌라시를 여러 경로를 통해 받던 저도 찌라시 보기가 어려워졌을 정도였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 찌라시가 다시 정치와 사회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영화로도 제작이 됐고 선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저도 최근 다시 심심치 않게 들어오는 찌라시를 읽어 봤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한 마디로 '조악한' 수준이었습니다. 상당 부분이 이미 기사화 됐던 내용을 정리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기사화되지 않았던 내용들도 몇일 전 또는 몇주 전 이미 회자됐던 오래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도 상당히 많더군요.

그렇지만 이런 찌라시들이 선거에선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기 동네에서 누가 나오는지도 잘 모르고 투표해야 하는 기초선거에선 특히 그렇지요. 누군가에 대한 칭찬보다 욕하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찌라시에 관심을 가진 분들께 한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기자들도 찌라시 잘 안 봅니다."

JTBC 정치부 구동회 기자
사진=중앙일보 포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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