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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만나니 숨통이 틔는 것 같았어요"

입력 2012-03-09 21:26 수정 2012-03-14 13:17

JTBC '아내의 자격', 중년의 위험한 사랑 서정적으로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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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아내의 자격', 중년의 위험한 사랑 서정적으로 그려


"그사람 만나니 숨통이 틔는 것 같았어요"



"이 동네에 와서 숨이 막혀 지내고 있는데 그 사람 만나니 숨통이 틔는 것 같았어요. 너무 무서워 죽겠는데 그 사람을 거절할 수 없었어요."

1996년 '애인', 2002년 '거침없는 사랑' 등을 잇는 중년의 명품 러브스토리가 또 하나 등장했다.

김희애, 이성재 주연의 JTBC 수목극 '아내의 자격'(극본 정성주, 연출 안판석)이다.

수식어를 다 떼어내면 결국 중년의 불륜이지만 '아내의 자격'은 같은 이야기도 어떻게 접근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보여주고 있다.

지난 8일까지 4회가 방송된 '아내의 자격'은 영화처럼 깔끔한 영상과 시적인 여백, 철저한 조사에 바탕을 둔 현실감 넘치는 스토리, 배우의 명연기 등이 어우러져 초반부터 시선을 확 잡아끈다.

특히 장면장면 적절히 삽입되는 '데이드림 빌리버(Daydream believer)' '턴 턴 턴(Turn turn turn)' '바컨틴 인터루드(Barkentine interlude)' '아이 츄스 해피니스(I choose happiness)' '다운 바이 더 샐리 가든(Down by the sally garden)' 등 추억의 올드팝은 이제는 지나가버린 듯한 아련한 기억과 감성들을 다시 끄집어내게 하며 드라마가 내미는 손을 선뜻 잡게 한다.

◇"내가 미쳤나 봐요.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초등학생 아들을 둔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주부 서래(김희애 분)는 이렇게 말하며 가슴 떨려 한다. 무서워서 떨리고 설레어서 떨린다.


"그사람 만나니 숨통이 틔는 것 같았어요"



그는 외동아들의 교육을 위해 시댁의 도움을 받아 교육 1번지라는 대치동으로 이사를 왔고 자식 교육을 위해 올인한 상태다.

남편은 유망한 방송사 기자고 그는 현모양처가 '아내의 자격'이자 역할이라 생각하는 착하고 성실한 40대다.

하지만 어느날 그의 일상 속으로 한 외간 남자가 갑자기 뛰어들어왔다. 그리고 불과 한두 번의 만남 속에서 둘은 마음을 빼앗겼다.

서래는 그 남자 생각에 손을 부들부들 떨고 순간순간 넋이 나간 상태가 되는 속에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남자의 등장과 존재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반듯한 치과의사 태오(이성재)는 최고의 사교육 선생으로 추앙받는 능력 있는 아내와 유치원생 딸을 두고 있다.

따뜻한 심성으로 평소 의료 봉사활동에 매진하는 그는 빈틈없는 자신의 아내와는 다른, 티없이 맑고 연약한 서래를 보며 잊었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된다.

그는 도망치려는 서래에게 천천히 한 발짝씩 다가가며 자신의 감정을 피하지 않는다.

분명히 불륜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들의 위험한 사랑을 서정적으로 그리며 사랑이라는 감정 본연에 충실한다.

앞뒤 돌아볼 겨를 없는 격정적인 사랑이 시작됐지만 관록의 정성주 작가는 한 템포씩 쉬어가는 리듬감과 조용한 여백의 미를 통해 불륜의 지저분함을 걷어내고 그 사랑의 순도를 높였다.

◇공포영화 같은 사교육 현실 그리고 상류층의 위선

'아내의 자격'은 불륜을 둘러싼 장치로 강남의 사교육 열풍을 충실하면서도 무섭게 그리고 있다.

그 속에서 상실되어가는 인간성과 인간애를 그리며 어쩌면 불륜은 차라리 인간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드라마 속 서래를 둘러싼 모든 여성은 자녀 교육에 올인한 중산층 이상의 주부들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이들은 사교육에 목숨을 걸었고 자녀의 성적에 따라 친구관계며 사회관계를 이어가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자녀는 아침부터 밤까지 철저하게 짜인 시간표 속에서 '악'소리 나게 기계적으로 공부한다. 아빠들도 출퇴근 시간 전후로 아이들과 영어단어를 공부하는 등 아내가 시키는 대로 자녀 교육을 돕는다.

드라마가 그리는 현실은 너무 사실적이라 살벌하다. 그래서 때로는 공포영화같은 두려움마저 안기는데, 이 같은 장치가 서래와 태오의 불륜을 에워싸며 스토리를 땅에 붙이게 하는 한편 풍성하게 한다.

드라마는 또한 상류층의 위선과 가식에 메스를 들이댔다. 서래와 태오의 불륜을 추적하는 서래의 콧대 높은 시누이가 사실은 십수 년 남편의 두집살림을 까맣게 모르고 지내는 '허당'이라는 점, 더구나 그 불륜의 상대가 자신이 매일 붙어 다니는 절친한 친구라는 점은 시청자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또 손자의 교육에 감 뇌라 배 놔라 하며 손자의 성적에 신경을 집중하는 서래의 고상한 시부모도 알고 보면 속물이고, "서민들은 계몽해야 한다"고 당연하다는 듯 거만하게 말하는 상류층이 가면 뒤 온갖 위선과 더러운 욕망을 숨기고 산다는 사실을 하나둘씩 까발리며 또 다른 드라마적 재미를 준다.

◇'이런 얼띤 양반이 무슨 연애를 한다고…'..김희애 명연기

'내 남자의 여자' '마이더스' 등을 통해 화려하고 대찬 카리스마를 선보였던 김희애는 서래를 맡아 180도 변신,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고 착한 주부를 연기한다.

'아내의 자격'은 그런 김희애의 미세한 표정 하나, 몸짓 하나를 따라 예민한 '생물'처럼 움직인다. 시청자는 그런 그의 언행에 금세 감정이입돼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그를 좇게 된다.

앞서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친구의 남편을 노골적으로 탐해 취하는 적극적인 불륜 연기를 펼쳤던 김희애는 이번에도 역시 불륜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연기를 통해 시청자를 홀린다.

일밖에 모르고, 술 취해 인사불성인 상태로 술집여자 대하듯 아내를 취하려는 남편을 보며 "나도 인간이고 여자야"라며 벽에 대고 눈물짓는 서래.

"이런 얼띤 양반이 무슨 연애를 한다고…"라는 소리까지 듣는 서래는 맑고 투명하다. 백치미까지 보여주는 그는 지금껏 현모양처로 열심히 살아왔고, 그래서 그가 난데없이 빠진 일탈을 시청자는 손가락질하기 어렵다.

정성주 작가의 내공 있는 담백한 대본과 김희애의 명연기가 어우러진 드라마는 그로 인해 불륜임에도 '막장'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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