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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필리버스터 때 할 수 없는 것?…자세히 보니

입력 2016-02-29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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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23일부터 시작된 필리버스터, 국회 무제한 토론이 이레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의원 시절 5시간 19분 연설을 한 게 1964년, 그러니까 52년 만에 다시 등장한 건데, 그러다 보니 여러 궁금한 점도 있고 일부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29일) 팩트체크에서 이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보도록 하죠.

김필규 기자가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잘 지내고 왔습니까? (네) 특히 토론 내용과 관련해서는 본회의장에서 논란이 많이 되기도 했습니다.

[기자]

바로 이 장면인데요. 먼저 잠깐 보겠습니다.

[홍철호 의원/새누리당 : 지금 토론자가 테러방지법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은수미 의원/더불어민주당 : 열심히 잘 들어보세요.]

[홍철호 의원/새누리당 : 제재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또 권은희 의원이 법원 판결문을 읽은 것, 강기정 의원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것 등을 두고도 여당 측에선 "의제와 상관이 없으니 그만하라"는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필리버스터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선 이런 논란이 없습니다. 잠깐 화면 보실까요?

[테드 크루즈/미 상원의원 (2013년 9월) : 박스 안에서도 싫고 여우랑 먹기도 싫어요. 집에서도 싫고 쥐랑도 먹기 싫어요. 저는 여기서든 저기서든 먹지 않을 거예요. 어디서든 먹지 않을 거예요.]

현재 미국 공화당의 대선주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3년 전 21시간 연설을 했을 때 모습인데, 지금 읽고 있는 내용이 '녹색 달걀과 햄'이라는 동화책입니다.

당연히 의제와는 상관이 없고 1957년에 24시간 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운 스트롬 서몬드 의원은 성경책을 읽었는데, 요리책을 꺼내 레시피를 읽은 의원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국회법 102조에 '모든 발언은 의제를 벗어나선 안 된다'는 규정이 있어 새누리당 소속 정갑윤 부의장이 "규정된 의제 외의 발언은 금해 달라"고 강조를 했던 겁니다.

[앵커]

의제와 관련이 있느냐를 없느냐를 누가 판단하느냐는 것이 때로는 관건이 되기도 하더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민주 소속 이석현 부의장은 "그런 규정은 있지만 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내용도 발언 가능하다"고 해석을 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진행을 맡고 있는 의장이 관련성 판단을 하게 되는 건데, 그렇다면 영 상관없는 이야기를 계속한다고 판단해 의장이 발언을 중지시키고 내쫓을 수 있느냐라는 질문도 나올 수 있는데요.

국회법 145조 상으로 의장이 회의의 질서유지를 위해 의원 발언을 금지시키거나 퇴장시킬 순 있다고 돼 있는데 이는 물리적 충돌, 심한 모욕을 했을 때 얘기지, 의제와 상관없는 발언 정도로 적용할 순 없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입니다.

[앵커]

아무튼 필리버스터에 관한 한 한국 국회가 미국 국회보다 훨씬 더 까다롭다 이렇게 봐야 되는 건 맞군요.

[기자]

이 부분을 보면 의제를 지켜야 된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런데요. 꼭 그렇게만 보기는 힘든 게 바로 또 이 장면입니다. 한번 보시죠.

[이석현/국회부의장 : 서기호 의원님, 필요하시면 여기 본회의장에 딸린 부속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시죠. 3분 이내로 다녀오시면 좋겠습니다.]

[서기호 의원/정의당 : 미리 준비를 완벽히 다 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앵커]

중간에 연단을 비울 수 있느냐 없느냐 이 문제죠?

[기자]

그렇습니다. 일단 미국의 경우 필리버스터 중 연단을 벗어나면 발언이 끝난 것으로 간주해 절대 화장실도 다녀올 수 없고 자리에 앉을 수도 없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최장 기록을 세운 서먼드 의원도 발언 전 사우나에서 땀을 쫙 빼고 옆에 소변 볼 양동이도 갖다 놨습니다.

이후 의료용 튜브를 사용해 소변을 빼낸 의원도 있고 우주비행사용 용변대를 찬 의원도 있었는데, 한국의 경우 이와 관련한 규정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부의장 말대로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와도 사실은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앵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겁니까?

[기자]

미국에서 원래 "필리버스터가 필요하다" 해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18세기 26명 의원으로 처음 미국 상원이 소집됐을 때, 상원의사규칙이라고 해서 의원이 발언을 신청하면 의장은 이를 허용해야 하고 다른 의원은 방해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 점을 파고들어 필리버스터가 등장한 거죠.

이후 여러 논란은 있었지만 소수 의견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제도 자체는 유지가 됐습니다.

연단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거나 앉지 못하게 하는 등의 제한은 이후 의회 관례로 정해졌는데, 반면 한국은 필리버스터란 제도를 중간에 새로 도입하면서 구체적인 규정이 정립되지 않은 겁니다.

[앵커]

그러면 어쩌면 지금 의원들이 하고 있는 것들이 쌓여서 새로운 한국식 필리버스터의 규정이 될 수 있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또 나왔던 궁금증 중 하나가 과연 이렇게 백시간 넘게 진행되는 토론 내용이 다 기록되고 있느냐 하는 건데, 이게 앞서 본 은수미 의원 발언 당시 속기록입니다.

김용남 의원이 "그런다고 공천 못 받아요"라고 하니 '"어머?" 하는 의원 있고, "어허!" 하는 의원 있음' 이렇게 단어 하나에 분위기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기록이 앞으로 대한민국 의정사의 선례로 남으며 계속 주목될 거란 점, 본회의장에 있는 의원 모두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앵커]

오늘 저희가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은 다루기는 했지만 사실 본질은 이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왜 이 문제가 필리버스터링까지 오게 됐느냐. 그렇죠?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기도 하고 또 그걸 보도해 드리기도 했습니다마는. 사실 상당수의 언론들이 너무 이 문제를 흥미 위주로만 다뤘다는 그런 비판, 여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필규 기자였습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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