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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스크린도어 노동자' 19살 이 군의 하루

입력 2016-06-08 22:23 수정 2016-06-0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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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뒤에는 역시나 각종 부정과 부조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고가 날 때마다 대책이 발표되지만 희생은 되풀이되고 있죠. 탐사플러스는 숨진 김 군처럼 스크린도어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김 군의 동료, 19살 이모 군의 하루를 따라가 봤습니다. 김 군을 죽음으로 몰고 간 노동현실, 그리고 죽음 만큼이나 많은 사람을 아프게 했던 김 군 가방 속 컵라면. 김 군 동료의 하루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이호진 기자입니다.

[기자]

오후 1시, 충정로역 은성PSD 사무실을 나서면 곧바로 개찰구 안쪽으로 이어집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살 이모 군은 이 일을 시작한 지 7개월째입니다.

등에는 구의역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가방을 메고 있습니다.

작업 서류나 간단한 소지품을 넣으라고 지급된 가방입니다.

이날은 3개 조 중 오후조에 배정돼 밤 10시까지 4호선 혜화역에서 수유역까지 6개 역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시로 들어오는 장애 신고를 처리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출근 전 이미 사고가 접수된 수유역으로 갑니다.

전동차 기관사가 스크린도어 개폐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인 HMI가 고장났다는 신고입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해 보니 정상입니다.

이어서 들어온 쌍문역 장애 신고도 HMI 고장이었습니다.

역시 가보니 정상, 대부분 장애들은 이처럼 부품이나 장치들이 노후화되며 발생합니다.

[이 군 (가명) : 저희도 그때마다 달라가지고 이런 건 아마 1, 2, 3, 4호선 다 합치면 꽤 날 거예요.]

일일점검은 전기가 끊길 때 전원을 공급하는 UPS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보고, 역무실에 있는 종합제어판을 확인해야 합니다.

선로로 들어갈 일이 없기 때문에 2인 1조가 아니라 혼자서 하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책임자급 역무원이 작업에 나선 이 군을 불러 세웁니다.

[A역 역무원 : 매스컴에 다 나왔었잖아. 일일점검이 항상 2인 이상이지 1인이 어딨어.]

사고가 일어났지만, 역무원들도 관련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 군이 해명해도 서울메트로와 은성PSD에 전화해 교육을 제대로 시키라고 얘기합니다.

돌아가라는 역무원의 지시에 결국 이 군은 이 역을 점검하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6개 역사 일일점검이 끝나니 저녁식사 시간입니다.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화장실 앞에 있는 UPS실에서 동료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3평 남짓한 공간에는 간이의자 3개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거나 쉽니다.

하지만 밥을 먹기로 한 동료가 장애 처리로 오지 못하게 됐습니다.

결국 혼자 밥을 먹으러 나가는 이 군. 그런데 식당으로 가는 길에 또 장애 신고가 들어옵니다.

[이 군 (가명) : (제일 힘들 때는?) 거의 그냥 밥 먹을 때 장애가 나가지고 중간에… 사람이 많을 때라서 그런 것 같아요.]

신고가 접수되면 1시간 내로 가서 점검을 해야 합니다.

[이 군 (가명) : 한 시간 안에 가야 해요. 안 가면 아마 페널티가 있는 것 같은데. 문이 열린 상태로 쭉 있으면 빨리 와달라 전화하거든요.]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퇴근시간대에 장애가 폭증해, 끼니를 제때 챙기기 쉽지 않습니다.

숨진 김 군이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니는 이유입니다.

서울메트로 자체 조사 결과, 퇴근 시간대 장애율은 18.13%로 첫 열차 운행 때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습니다.

[설치업체 관계자 : (눌러야 열리는 해외 스크린도어 기술이) 우리나라로 오면서 한국에 토착화가 된 거지. 그 기술이 한국형(자동)으로 바뀌어 버린 거죠. 원래 (승객) 스스로 열고 닫는 게 해외에 스크린도어 형태라는 이야기입니다.]

장애는 같은 도어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4호선 창동역 계단 앞 스크린도어는 오늘만 벌써 세 번째입니다.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센서가 과부하가 걸리는 겁니다.

[동료 : 내가 들어갈까? 아니, 넌 가만히 있어. 넌 거기 있어.]

이 군을 도우러 온 직원은 아슬아슬하게 스크린도어를 붙잡고 센서를 닦습니다.

부품 교체 작업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 새벽에 이뤄지지만, 자주 발생하는 센서 장애는 발생 즉시 이뤄집니다.

숨진 김 군도 이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지난해 8월 2호선 강남역에서 발생한 스크린도어 사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CCTV 화면입니다.

선로 쪽에 사람이 들어가 있지만 열차가 그대로 들어옵니다.

스크린도어가 잇따라 부서지고, 사람들이 놀라 물러섭니다.

당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28살 조모 씨가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구의역 사고처럼 상습적으로 일어나는 센서 장애를 점검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난 사고였습니다.

구의역 사고로 숨진 김 군의 입사 동기 25명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16명입니다.

[이 군 (가명) : (많이 걱정하세요?) 많이. (안전한 거냐?) 관두라는 말이 많아요. (그만두라고?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생각 좀 하겠다고.]

저녁 9시 반, 이 군이 점검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합니다,

그런데 같은 문에서 다시 신고가 접수됩니다. 돌아가서 확인해보니 이번엔 문이 아예 열려있습니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불안한 눈초리로 쳐다봅니다.

[동료 : (이런 게 계속 발생하면 수리를 해요?) 저희가 하는 건 (선로 측 센서를 닦거나 전원을 다시 키거나) 이런 것밖에 없어요. 문제는 그거거든요. (센서?) 예.]

메트로 측은 사고 이후 2인 1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작 인력은 보충되지 않아 업무 부담은 훨씬 더 늘었습니다.

김 군과 함께 입사했던 이군, 김 군의 죽음에 대해 묻자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이 군 (가명) : 말이 안 되고. CCTV가 있는데, 애가 그걸 하고 있는 걸 모를 수가 있나 싶어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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