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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입력 2017-08-24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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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프랑스의 궁정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

루브르를 들른 이라면 누구든 이 웅장하고 화려한 그림 앞에 멈춰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라면서 왜 그림 속의 장면은 왕비 조세핀에게 관을 씌워주는 모습일까…

사실 그날 나폴레옹은 대관식 도중에 교황이 들고 있던 관을 빼앗아 스스로 머리 위에 올렸습니다. 자신이 교황의 권위를 초월한 존재임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용(御用)화가 다비드는 혹여나 논란이 될까를 두려워해서 그 장면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왕관을 쓴 나폴레옹이 왕비 조세핀에게 관을 씌워주는 순간만을 그림에 담았고, 영웅의 신화는 그렇게 완성됐습니다.

하긴 나폴레옹이 유배당했던 엘바 섬을 탈출해서 파리로 입성하기 직전까지 20일동안 시시각각 변화했던 프랑스 언론들의 논조를 보면 다비드의 그림 정도는 애교일지도 모릅니다.

나폴레옹에 대한 호칭은 '살인마' '괴수' 에서 시작해서 '폭군' '약탈자'로 조금씩 순화되더니 급기야 '황제폐하께옵서는…궁전에 듭시었다'는 낯 뜨거운 표현으로까지 변모합니다.

권력에 엎드린 언론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장면이기도 하지요.

예술과 언론은 그렇게 해서 나폴레옹에게 왕관을 씌워준 것입니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신군부 우두머리의 56회 생일을 기념해 지어졌다는 송시.

"깡패 같은 놈들이라 치켜세우면 덜 죽일 것 같아서"였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던 시인은 훗날 그렇게 말했다지만 그것이 단순히 '천진'함으로 기억될 수 없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다비드의 그림 속 나폴레옹처럼. 스스로 권력이 되었던 그가 권좌에 있는 동안, 제가 몸담았던 언론의 모습 역시 나폴레옹 앞에 엎드렸던 언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당 서정주의 시 역시 그에 비하면 애교였을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37년. 언론이 외면했으며 목격자들은 가슴에 묻었던 광주의 이야기들은 다시 세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독재자에게 씌워졌던 관은 벗겨진지 오래지만, 그에게 관을 씌워주었던 언론에게도 지금은 참으로 처연한 계절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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