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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와 고문 '아픈 상처'…남영동 대공분실, 시민 품으로

입력 2018-12-26 22:17 수정 2018-12-2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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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70~80년대 국가폭력의 상징이자  민주열사들을 고문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이 달라집니다. 세로로 길고 좁은 창에 방향감각을 잃게 만드는 나선형 계단, 그리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으로 스러져간 509호 조사실. 아픈 역사를 딛고 '민주인권 기념관'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오선민 기자입니다.

[기자]

+++

영화 <남영동 1985>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여기가 남영동입니까?"

1976년 '천재 건축가' 김수근 설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김명식/건축가 : "심문을 받는 사람이 5층에서 뛰어내리지 못하게끔 한다든지, 꽉 막힌 공간감을 갖게 한다든지…"]

'죽지 않을 만큼' 기술적인 고통

전기고문과 물고문…스러져간 민주 열사들

확인된 피해자만 391명

1985년 515호
두 아이의 아버지, 고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1987년 509호
4평 짜리 방에서 스물두 살 박종철 군 사망

영화 <1987>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답니다."

분노한 시민들…6월 민주항쟁 촉발한 도화선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

다시 마주하기 두려운 공포

고문 피해자 4명 중 1명 '자살시도'

[김순자/1979년 남영동 고문 피해자 : "말 안 한다고 때렸는데, 신었던 신발을 벗어가지고 얼굴, 머리, 손 책상에 올려놓으라 해서 (때리고)"]

민주화 이후 대공분실의 탈바꿈 시도

2005년 10월 '경찰청 인권센터'로

그러나 계속되는 논란

국가폭력의 주체인 '경찰'이 아닌, '시민' 품으로 돌려달라는 요구

13년만에…남영동 대공분실 이관식

["독재와 공포정치의 상징 남영동 대공분실을 국민의 품으로"]

[박종부/고 박종철 열사 형 : "(아버지가) 마지막까지도 저한테 물었던 질문이 그렇습니다. (대공분실을) 언제 돌려받노 언제 돌려받노"]

다시 열린 2중 철문

그대로 시민 인권의 상징이 될지…

(영상디자인 : 이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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