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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어른들 술판으로 전락한 '학교 운동장'

입력 2016-10-1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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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18일) 밀착카메라는 담배꽁초에 술병이 나뒹구는 학교 운동장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 운동장이라기엔 영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요. 생활 체육시설이 부족하다보니까 학교 담벼락을 허물고 운동장이나 체육관을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한 학교가 많은데요.

아이들 운동장을 빌려쓰는 어른들이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지, 밀착카메라 박소연 기자입니다.

[기자]

축구 유니폼을 입은 남성들이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종이컵에 서로 따라주는 건, 술입니다. 소주부터 막걸리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들이 술을 마시고 있는 곳은 서울의 한 중학교입니다.

학교 운동장 펜스에 붙어있는 안내판입니다. 이 학교 시설은 학생과 지역 주민들의 복리를 위해 개방하고 있다고 이렇게 개방 시간을 평일과 주말로 나눠 자세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축구장과 농구장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지켜 운동장을 이용한 것까진 좋았는데 학내에서 금지된 행동을 하는 게 문제입니다.

비슷한 시각 이 학교 실내 체육관에서는 농구 연습 경기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운동복을 입은 남성들이 체육관 입구에 앉아 담배를 피웁니다.

학교 시설은 모두 금연구역입니다. 그런데 건물 뒤쪽 재활용품 수거장을 보니 바닥에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고, 휴지통 안쪽에는 막걸리병과 담뱃갑도 버려져있습니다.

수업이 없는 주말이라고 해서 학생들이 학교를 찾지 않는 건 아닙니다.

[중학생 : 운동장에서 (운동회 연습) 하려고 했는데, (주민이) 축구 하셔서 그냥 여기로(주차장) 왔어요.]

결국 갈 곳을 잃은 학생들은 주차장에서 운동회 연습을 해야만 했습니다.

같은 날 서울 중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도 축구 동호회가 차지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초등학교 이름이 적힌 간이 의자에서 술판이 벌어졌습니다.

학교 안 휴지통에도 주민들이 먹은 걸로 보이는 컵라면 용기와 과자 봉지가 한가득입니다.

이렇게 주말 내내 몸살을 치른 학교는 월요일에 어떤 모습일까.

지난 주말 마을 축제가 열렸던 한 초등학교를 찾았습니다.

운동장 한쪽에 있는 벤치입니다. 쓰레기가 한가득 쌓여있습니다. 나무 꼬치며 컵라면 용기며 어제 축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한켠에서는 나무를 태운 흔적과 소주 병뚜껑, 중국집 전단지 등이 눈에 띕니다.

아이들이 뛰어놀 모래판 위에는 담배꽁초가 나뒹굴고 있습니다.

축제 관계자는 민망해합니다.

[축제위원회 관계자 : 야시장, 먹거리 장터가 있었거든요. 음식들 먹으면서 아마 담배도 피우고 그랬나 봐요.]

지난 2001년부터 주민 편의를 위해 학교를 개방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부작용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서울시의회는 학생들이 없는 주말과 평일 밤엔 사실상 의무적으로 학교를 개방하도록 하는 조례를 통과시켰습니다.

학부모들은 지금도 부작용이 심한 만큼 학교를 강제 개방하게 해선 안 된다고 반발합니다.

[김성옥 회장/서울 ○○초등학교 학부모회 : 외부 범법자와 흡연, 음주, 화재로 인한 사건 등 안전에 관한 문제를 가장 걱정하고 있습니다.]

학교 관계자들은 조례 통과로 운동장 사용료가 더 낮아진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서울 ○○초등학교 관계자 : 여름철에 냉방도 시원하게 못해주고 있는데 아이들 교육비도 부족한 상황에 주민에게 혜택을 돌려준다는 건 무리가 있지 않은가 싶고…]

뒤늦게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측이 운동장 개방을 거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수정안을 시 의회에 제출했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휴식 공간이 부족한 도시에서 학교 운동장이 근처 지역 주민들에게 소중한 체육시설입니다. 하지만 운동장을 나눠쓰기에 앞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 바로 학교 운동장의 주인은 아이들이란 점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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