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HIT AND HOPE, 공을 찬 뒤 행운을 바란다는 뜻인데, 요즘 유럽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를 비꼬는 말입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은퇴 이후 맨유가 추락하면서 퍼거슨 감독에 대한 그리움도 커지고 있습니다.
김진일 기자입니다.
[기자]
투명한 상자 속의 씹던 껌, 경매에서 호가 7억원을 기록해 화제였는데 퍼거슨 감독이 씹었던 껌입니다.
퍼거슨 감독에게 껌은 빼놓을 수 없는 상징물입니다.
씹고, 또 씹고, 경기를 보면서도 씹고, 인터뷰를 하면서도 씹고, 떨어진 건 주워서 씹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첫 우승 때도, 리그와 컵대회, 챔피언스리그까지 트레블을 달성했을 때도, 맨유 통산 20번째 리그 우승 때도, 껌은 껌처럼 퍼거슨에게 붙어 있었습니다.
[윤영길 교수/한국체대 스포츠심리학 : 징크스화 됐을 경우죠. 그런 행위를 하지 않으면 불편해지고 그 불편함이 경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7년간 세계 최고의 축구팀 맨유에서 폭군으로 군림했던 그도 껌에 의존해야 할 만큼 한계를 가진 인간이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지독한 냉혈한입니다.
2003년 당시 최고스타 데이비드 베컴에게 축구화를 집어던진 뒤 방출했고, 7년간 아꼈던 박지성 역시 다른 팀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인간적 연민으로 팀을 망치는 일 같은 건 애초부터 퍼거슨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속마음까지 차가웠던 건 아니었습니다.
박지성에게 직접 썼던 사과편지는 퍼거슨의 숨은 면모를 보여줬는데,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 것 때문에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니다.", "내 손자는 가장 좋아하던 선수 박지성을 다른 팀으로 보내자 아직도 내게 말을 하지 않는다." 구구절절 퍼거슨의 심적 갈등이 묻어납니다.
[박성종/박지성 아버지 : (퍼거슨이) 편지도 보냈지만 그런거에 대해서, 아무튼 그때 위로도 많이 받았고 직접 퍼거슨 감독한테 끝나고 나서 가족들도.]
에릭 칸토나부터 로이 킨, 베컴, 라이언 긱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그리고 웨인 루니까지 세계 최고선수들을 휘어잡은 비결은 카리스마와 그 속에 숨겨진 인간미였습니다.
한국의 퍼거슨으로 불려 별명까지 '학범슨'인 김학범 성남FC 감독은 맨유 연수 시절 만난 퍼거슨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김학범 감독/성남FC : 가볍게 손을 터치하고 불러서 소곤소곤대면서 선수들의 심리를 중간중간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전하는 힘이 굉장히 크다고 느꼈습니다.]
[정윤수/스포츠평론가 : 어, 너 잘했어. 넌 좀 아쉬웠어. 이런 식으로 면전에서 선수들에 대해 개인적인 평가는 절대 안 한다. 잘했더라도 개인을 불러서 뭐라고 칭찬하거나 해서 선수들 사이에 약간의 감정이 흔들리도록 하는 것은 평생 하지 않았다.]
2013년 5월 9일 맨유 감독직을 내놓은 퍼거슨, 맨유에겐 재앙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모예스가 맡은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7위로 주저앉았고 19년 만에 챔피언스리그에도 못 나갔습니다.
[신문선 해설위원/축구 : 퍼거슨의 눈빛, 퍼거슨의 입을 보고 뛰었던 선수들이 모예스의 큰 소리 모예스의 몸짓에도 집중되지 않은 것이 맨유의 추락으로 이어졌다.]
루이스 판할이 모예스 후임을 맡은 뒤 조금 나아졌지만 그 위력적이던 퍼거슨 맨유와는 거리가 멉니다.
맨유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방법, 퍼거슨의 은퇴연설이 답일지 모릅니다.
[알렉스 퍼거슨/은퇴 연설 : 여러분이 얼마나 잘하는지는 입고 있는 유니폼을 보면 알 수 있죠. 맨유 유니폼의 의미는 다릅니다. 절대 좌절하지 마세요. 희망은 꺾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