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선 전무후무한, 스피드스케이팅 전관왕이 탄생했습니다. 육상으로 치면 100m 우승자가 마라톤도 우승한 셈인데요. 그 주인공은 빙상의 살아있는 전설, '에릭 하이든'입니다. 그런데 하이든의 라이벌이 우리 선수였다면 어떨까요.
35년 전 빙판 위로, 함께 가시죠. 온누리 기자입니다.
[기자]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500m 금메달 모태범과 1만m 금메달 이승훈.
두 사람이 종목을 서로 바꾼다면 어떨까요.
[제갈성렬/스피드스케이팅 해설위원 : 꼴찌를 할 거라는 건 당연하고. 아마도 모태범 선수가 장거리를 탄다면 중간에 타다가 나올 것이 분명하고.]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선 그 말이 안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의 에릭 하이든은 다음날 5000m에서도 금메달을 땄습니다.
[김관규 전무/대한빙상경기연맹 : 모태범 선수가 1만m에서 우승한 것과 같죠. 이승훈 선수를 이기고.]
사흘 뒤 1500m에선 또 다시 금메달,
[에릭 하이든/1980년 올림픽 직후 : 600m쯤 안쪽 레인을 돌면서 크게 미끄러졌는데 다행히 재빨리 회복해 달릴 수 있었죠.]
이어 1000m에서도, 만m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건 하이든은, 스피드스케이팅 전관왕이 됐습니다.
[에릭 하이든이 올림픽에서 기록을 세웠습니다.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놀라운 사나이입니다.]
[김관규 전무/대한빙상경기연맹 : 앞으로 5관왕이라는 기록은 절대 나오기 힘듭니다.]
전무후무한 기록의 주인공 하이든은 미련 없이 은퇴했습니다.
그 때부터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습니다.
사이클로 종목을 바꿔 투르드프랑스에 출전했고, 스탠퍼드 의대에 진학해 새로운 인생을 개척했습니다.
정형외과 의사가 된 하이든은 미국 빙상대표팀 닥터로 동계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에릭 하이든/미국 대표팀 닥터(2010년 밴쿠버) : 저는 미국 스피드스케이팅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이 스포츠에 빚을 갚을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스포츠에서, 인생에서 승승장구하는 비결이 뭘까.
[에릭 하이든/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관왕 : 챔피언이 되고 싶다면, 챔피언처럼 훈련해야 합니다. 지름길은 없습니다.]
하이든과 함께 기억할 또 한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추억 속의 아련한 이름, 1976년 세계스피드스케이팅 주니어선수권 종합우승의 주인공, 이영하입니다.
하이든은 이 대회에서 이영하에 밀려 준우승했습니다.
스케이트 구경도 힘들던 시절, 열악한 현실을 딛고 쓴 쾌거였습니다.
[이영하/1976년 세계주니어선수권 우승 : 내가 270mm인데, 발이. (스케이트는) 280mm가 온 거예요. 솜을 넣고 시합을 나간 거죠. 전부 기적이죠. 말도 안 되는.]
남북이 치열하게 대치하던 그 시절, 이영하의 우승은 북한 선수단의 기권까지 부를 정도였습니다.
이영하는 이후 500m부터 만m까지, 빙상에 걸린 한국기록을 51차례나 갈아치웠습니다.
올림픽 메달 기대감도 치솟았는데, 레이크플래시드에선 왜 에릭하이든을 저지하지 못했을까.
[이영하/1976년 세계주니어선수권 우승 : 대회 첫날, 본 레인에 들어가지 말라고 바로 막아놔요. 사람이 앞에 있기에 피하다가 코를 찧었죠. 그러니 시합이 (제대로) 됐겠어요.]
허망하게 놓친 인생의 기회, 이후 지도자로서 놓쳤던 꿈을 보상받았습니다.
[이영하/1976년 세계주니어선수권 우승 : 김윤만 선수가 (제가 1992년 대표팀 감독일 때) 제가 못 딴 메달, 금은 놓치고 은메달을 따게 해줬죠. 그때가 저는 가장 행복했어요.]
전설, 이제는 의사로, 지도자로 후배들의 꿈을 북돋워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