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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잡일까지…'돈 없어' 차별받는 정신질환자들

입력 2016-06-3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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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신 질환은 요즘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병입니다. 초기에 대응만 잘 하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소득층이어서 정부 지원을 받는 환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일부 병원에선 환자가 배식과 청소, 설거지 등 온갖 잡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태영 기자가 그 실태와 원인을 취재했습니다.

[기자]

국내 최대 규모의 한 정신병원입니다.

병실 내부를 들여다보니 환자 10여 명이 바닥에 누워 자고 있습니다.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얇은 매트리스와 이불 한 장이 전부입니다.

[홍혜란 지부장/OO정신병원 노조(지난 14일 국회 토론회) : 보험 환자는 동절기에 두꺼운 이불이 제공됩니다. 보호(급여) 환자는 사계절 얇은 이불을 계속 덮고 있습니다.]

잠자리 외에도 온수가 제공되는 시간, 식단, 환자복까지 차별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홍혜란 지부장/OO정신병원 노조 : 밥도 소량 줄 뿐만 아니라, 전날 먹은 밥을 모아서 다시 쪄서 올려줘요. 그럼 밥이 노란색으로 돼요. 환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주가 안 되고 있는 거죠.]

모두 생계가 어려워 정부로부터 의료비를 지원받는 의료급여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차별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커다란 봉투를 들고 줄줄이 어디론가 향합니다.

마대자루를 든 두 여성은 무거운지 잠시 쉬어갑니다.

병원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은 이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병실에서 나온 쓰레기와 세탁물을 옮기고 있는 겁니다.

이들은 배식과 청소, 설거지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병원 이사장이 키우는 개를 관리하는 일까지 이들 몫입니다.

정신보건법에 따르면 정신질환 환자들에게 의료나 재활 목적 외에는 노동을 강요하지 못하게 돼있습니다.

병원 측은 치료 목적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병동에서 직접 환자들을 돌보던 간호사들의 말은 다릅니다.

[홍혜란 지부장/OO정신병원 노조 : 환자나 보호자에게 다 동의도 얻고 치료계획서도 있어야 해요. 그런데 그게 하나도 돼 있지 않죠.]

최근 들어 이 병원은 두 달새 200명 넘는 환자를 퇴원시켰습니다.

표면상 이유는 병동 리모델링입니다.

하지만 속내는 다릅니다.

[OO정신병원 행정부원장 : 의료급여 환자가 83% 차지하는 입장에서는 아마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되는 이러한 일이 되지 않을까.]

의료급여 환자들이 재정 적자의 원인이 된 겁니다.

보호자들은 리모델링이 끝나면 다시 입원할 수 있다는 말만 믿고 퇴원했습니다.

[김모씨/OO정신병원 퇴원 환자 보호자 : '재입원도 가능한 겁니까' 하니까 가능하다. 리모델링은 보통 1년 생각하고 '1년 후엔 가능한 겁니까' 하니까 예,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고.]

하지만 병원 리모델링 계획에 따르면 병상 수는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일부 환자는 퇴원을 강요당하기도 했습니다.

[권모 씨/OO정신병원 입원 환자 보호자 : 리모델링 때문에 환자를 자기네들이 수용할 수 없대요. 그래서 무조건 퇴원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냐…]

경기도의 또 다른 정신병원에선 진료 횟수에 차별을 둡니다.

[A씨/△△정신병원 간호사 : 보험 환자 같은 경우는 매일매일 회진 시간이 있어요. 보호(급여) 환자들 같은 경우는 일주일에 한 번만 나와요. 그것도 의사들이 세미나에 참여한다면 2주도, 3주도 건너뛸 수 있고.]

치료가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정영철 이사장/대한조현병학회 : 조기 정신질환 시기에 집중적이고 아주 양질의 어떤 치료를 제공해야 되는데, 제약이 있고 한계가 있는 거예요. 부작용이 적은 고가 약물도 못 쓰죠.]

차별은 관행처럼 굳었습니다.

[B씨/◇◇정신병원 간호사 : 보호자들도 여력이 없는 것도 있고. 사실 그것을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병원이) 악용하는 거죠. 더 신경써주고 더 챙겨줘야 하는데 신경 안 쓰니까 좀 더 이렇게 하겠다, 그런 거죠.]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급여 환자 사이의 차별은 의료 수가의 차이에서 비롯됐습니다.

다른 진료과목과 달리 정신의학과는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환자의 입원비가 다릅니다.

의료급여 환자의 하루 진료비 역시 2770원으로 건강보험 가입자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이영문/전 국립공주병원장 : 최근 8년 동안에 정신장애인 의료급여수가는 하나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건강보험에 비해서 입원비용이 너무 낮다 보니까 병원의 사정에 의해서는 차별을 많이 해요.]

전체 정신의료기관 병상의 83%가 의료급여 환자입니다.

문제는 내년부터 정부가 의료급여 환자들이 오래 입원할 경우 병원에 지원하는 진료 입원비를 낮추겠다고 발표하면서 병원들이 의료급여 환자들을 더욱 기피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초기 집중치료를 통해 정신질환 환자들의 빠른 사회 복귀를 유도하기 위한 거라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 생각은 다릅니다.

[김소윤 부원장/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원 : 본인의 고향이나 지역사회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병원으로 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진정한 의미의 탈원화라고 보기 어렵고 그냥 이건 눈 가리고 아웅에 불가한 거죠.]

의료급여 수가를 건강보험 수준으로 인상하고, 현재 300여 개에 불과한 사회복귀시설을 확충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영문/전 국립공주병원장 : 외국에선 인구 15만 명에서 20만 명당 하나의 센터가 만들어지는데 그 센터의 규모가 굉장히 커요. 하나의 정신보건센터가 있다면 이 정신보건센터를 중심으로 해서 최소한 10개 정도의 특별한 사회복귀시설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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