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피해자들은 30년 전에 벌어진 형제복지원 사건을 지금도 지옥 같은 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JTBC 취재진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봤습니다.
박소연 기자입니다.
[기자]
[박경보/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 숟가락을 분질러서 삼켜요. 병원 나가려고. 병원에 나가야 도망갈 기회가 있잖아요.]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들은 지금도 당시 기억이 생생합니다.
[박경보/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 밤에 잘 때도 머리 위에 칼을 놓고. 박 원장이 자기 잡으러 올 거니까. 자기는 칼을 놓고 자야 한다고.]
잊으려고 해도,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종선/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 '야, 한종선!' 이런 고함치는 소리. 이게 지금도 가끔 잠결에 생생하게 들려요. 그러면 저도 모르게 '네!'하고 깨는 거죠.]
1984년. 9살이던 한종선 씨는 작은 누나와 부산의 한 파출소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다 형제복지원에 끌려왔습니다.
[한종선/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 기상 첫 시작부터, 그리고 취침 때까지 맞는 거예요. 이유 없이.]
500명이 넘는 의문의 죽음, 실종된 사람들의 행방 또한 알 길이 없습니다.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형제복지원 피해자 지원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지 30년이 지났지만 진상 규명도, 피해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국회에 법안이 상정됐지만 통과될지 미지수입니다.
[진선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 : 피해자를 중심으로 그 가족들이 여전히 부랑아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그것이 현재 진행되고 있거든요.]
과거 형제복지원 터에는 이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30여 년 전 벌어진 사건, 사람들은 잊고 있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한종선/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 3900명이 넘는 수용자들의 가정이 깨져버린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와 누나를 찾기 위해 온 가족이 생계를 포기하면서 찾으러 다녔던 사건이고, 어떤 사람은 국가에 의해 무연고자가 돼서 평생 자기 가족을 찾을 수 없게 돼버린 사건이에요.]